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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Aug 03. 2020

물폭탄 장마의 꿉꿉함도 날려주는 칼칼하고 쨍한 김치찌개

여름 김장으로 한 배추 맛김치가 다 떨어졌다. 아이들이나 남편이 배추김치를 좋아해서 다른 김치보다 유독 배추김치가 먼저 떨어진다. 얼마 전 아이들만 집에 두고 나갈 일이 있어 미역국을 한 솥 끊여놨는데 아이들 잘 먹는 김치가 없어서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김장김치 한 포기만 주십사 부탁드렸다. 우리 집에도 김장 김치가 있긴 있다. 친정 엄마가 해주신 김치인데 김치가 먹을 수 없을 만큼 물러서 손을 댈 수가 없다. 찌개를 끓인다 하더라도 주재료인 김치가 맛있어야 찌개를 끓여도 맛있다. 무른 김치를 어찌 사용할 방법을 몰라 우선은 김치냉장고에 보관 중인데 가을쯤 고등어를 넣고 자글자글 지져먹어볼까 한다.


남편에게 퇴근길에 김치를 가져오라고 했다. 한두 포기 부탁드렸건만 김치통 하나를 통째로 주셨다. 내가 가야 먹을 만큼만 덜어서 가져오는데 남편은 주시는대로 다 받아온 것 같다. 


김치는 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였는데 좀 짰다. 이전에 김치가 너무 심심해서 더 그런가 싶어 남편과 아이들에게 한쪽씩 맛을 보게 하니 다들 너무 짜다고 했다. 이 많은 김치를 어떻게 다 먹을까나....


김치찌개를 끓여야겠다.

멸치와 디포리를 섞어서 구수한 멸치 육수를 냈다. 큰 아이가 친구 만나러 나갔길래 들어올 때 돼지고기 한 근 사 오라는 부탁도 했다. 

맛있는 버무림 김치가 쉬어서 만든 김치찌개와는 많이 다르다. 묵은 김치는 그 쨍한 맛이 뼛속까지 쩌릿하게 만든다. 그런 김치로 만들면 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아도 진짜배기 김치찌개를 만들 수 있다.


김치가 좀 짜서 멸치 육수를 좀 넉넉히 끊였다. 맛김치가 좀 쉴 때쯤 김치찌개를 끓였을 땐 김치를 미리 맛있게 볶아내고 공을 들였으나 김장김치를 그럴 필요가 없다. 육수에 김치만 넣어도 근사한 맛이 된다. 김치 대가리만 제거하고 소만 털어내어 통째로 넣었다. 겨울에 김장을 하고 배추 속에 싸 먹듯 먹을 생각이다.

딸아이에게 고기를 사 오라고 시켰는데 고기 크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가 좀 덜 내리는 틈을 타서 고기를 덩어리 째 사 왔다. 크다 싶을 정도로 숭덩숭덩 잘랐다.


찌개가 끊을 동안 고기 잡내를 잡기 위해 청주, 마늘, 참치 액젓, 고춧가루를 넣어 센 불에 볶아냈다. 찌개가 끊기 시작했을 때 볶어낸 고기를 넣고 충분히 끓이기만 하면 된다. 작은 아이와 통마늘을 깠다. 속껍질까지 깨끗하게 까지 않아도 된다 해도 꼼꼼이라 까는 시간은 보지도 않고 깨끗하게 까는 것만 열중한다. 파를 까든 콩나물을 다듬든 재료 손질할 때마다 달려와 도와주는 아이들이 있어 일이 조금 수훨해진다. 마늘을 깐 뒤 곱게 다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마늘이 보일만큼 대충 다져 넣었다. 이젠 시간만 들여 끊여내면 된다.


1시간 이상 푹 끊여냈다. 진짜 원하는 맛이었다. 돼지고기를 2근 이상 썰어 넣었는데도 먹다 보니 고기가 부족한 듯도 싶었다. 남편과 큰 아이가 너무 잘 먹으니 매운 것 잘 먹지 못하는 작은 아이도 덩달아 잘 먹었다. 

배추 겉잎을 듬뿍 넣어 끊이니 배추가 쉽게 무르지도 않고 맛이 좋았다. 김장김치의 쨍하고 칼칼한 맛이 국물 깊숙이 스며들었다.

아삭한 김치와 큼직한 두부를 넣어 밥을 쓱쓱 비벼먹었는데 숨을 쉴 수 없는 맛이다.

매일 물폭탄 때문에 꿉꿉했던 몸과 마음에 쨍함을 주는 맛이다.

남편과 말다툼이 있는 날 이런 찌개를 끊여내면 화해의 다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오래 지내니 말은 없지만 먹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누구러졌구나 하고 말이다.


김치찌개는 맛있는 맛, 개운한 맛을 넘어 영혼의 맛, 화해의 맛 등 그 어떤 맛이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정말 적당한 표현이 안되는 어려운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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