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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May 27. 2024

오늘 내가 버린 문장들

이 에피소드 역시 책이 되지 못할 이야기


몇 년 동안 탁상달력 하나면 충분했다. 까만 펜으로 운동기록을 남기고 일정은 빨간 펜으로 표시해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언젠가부터 달력이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다. 떼었다 붙이는 것도 일이었다. 라이팅 클럽 운영, 새로 맡게 된 책 편집, 글쓰기 강연이나 수업 문의까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누이에게서 수첩 몇 개를 얻었다. 수첩에 일정을 옮겨 적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제대로 된 노트나 스케치북을 가져본 적은 없다.  신문지에다 쓰고 흙바닥에 돌로 썼다. 손가락에 물을 묻혀 시멘트 바닥에 이름을 쓰고 유리창에다 썼다.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교복 왼쪽 가슴에 수첩과 펜을 넣고 다녔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악필이었다. 내가 쓴 글조차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나 많은 편지를 쓰고 글씨 연습을 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좋은 노트도 사고 형형색색 일제 펜도 샀지만 못난 글씨를 감출 수는 없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학습지 회사 같은 곳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노트와 펜으로 대충 쓰기 시작했다. 짧았던 대학 시절에는 학과 다이어리에 되지도 않을 시를 쓰고 다녔다. 군대에 가서도 수양록을 빼곡하게 채웠다. 영영 굽어진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과 수양록 몇 권이 군생활의 전리품이었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까만색 사무용 수첩에 이것저것 적었다. 나는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연인이 선물한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시크릿>의 문구를 적어 들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영원을 약속한 사람이 떠나고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봄이 끝났다. 수첩과 다이어리를 몽땅 태운 날이 있었다. 2012년의 기억은 그해 다이어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몇 년 간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았지만 그래도 메모를 했다. 수첩에는 일기를 쓰고 연습장을 쌓아놓고 미친 듯이 필사를 했다. 나의 끄적임이 시집이 되어 나왔을 때도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몰랐다. 그저 쓰고 싶었을 뿐이다. 몇 권의 책을 내고 난 후에야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나의 끄적임은 마침내 방향성을 획득했다. 오로지 쓰기만 하는, 씀을 위한 삶이 시작되었다. 글만 쓰며 몇 년을 살았다. 사람들을 만나 즐기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것은 사치였다. 두부와 바나나, 라면을 주식 삼아 그저 썼다. 휴대폰에 메모하고 노트북에 글만 쓰던 시절이었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무공을 닦는 무협지 속 주인공처럼, 내 안으로, 깊은 곳으로 잠수하던 나날이었다. 가난하지만 충만했고, 단조롭지만 고요했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쓰고 또 썼다. 무언가 떠오를 때마다 쓰고 모든 게 가라앉을 때까지 고쳤다.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 내가 생각하고 느낀 전부를 활자로 옮겼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작가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저 써야만 했을 뿐이다. 쓰지 않으면 내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쓰지 않으면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납득하지 못했다. 쓰지 않으면 나는 견딜 수 없었다.



 노트를 쌓은 높이가 허리춤 정도에 이르렀지만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 모조리 찢어 버렸다. 백 리터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울 정도의 양이었다. 인생이 하나의 이야기임을 깨달았기에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내가 앞으로 써나갈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통영으로 돌아온 후 수첩 따윈 필요 없는 삶을 살았다. 오로지 글쓰기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날들이었다. 한 자루의 펜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일곱 번째 책을 쓸 무렵이었던가.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갈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쭈뼛거리며 카메라 앞에서 북토크를 했다. 첫 강연을 나갔고 편집 일을 시작했다. 글쓰기에 깃든 치유와 성장의 힘을 나누고 싶었다. 내가 찾은 가장 찬란한 빛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이번 생의 소명이라 믿는다.


 태워버리고 찢어서 버린 수첩들이 나를 ‘지금’이라는 문장으로 이끌었다. 모조리 불태우고 찢어 버려도 한 번 쓴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독한 에움길도 가시밭길도 이곳에 이르기 위한 서사였다. 형편없는 문장도 이야기를 나아가게 했다. 버린 문장만큼 나는 단단해졌다. 어디에 쓰건 무엇으로 쓰건 상관없다. 오롯한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면. 분홍색 고구마 캐릭터가 그려진 수첩에는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까. 수첩에 쓰인 이야기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게 될까. 물론 알 수 없겠지. 그러니 상상도 못 한 곳에 이르게 되겠지. 어디로 가게 되건 나는 진실한 한 문장을 이어나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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