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책이 되지 못할 이야기 - part 1
20세기 소년의 사립도서관
경상대학교 후문에 다락방이란 책방이 있었다. 일을 쉬는 날이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느긋하게 책방으로 갔다. 늘 햇볕이 드는 골목이었다. 아이를 어르는 주인아주머니가 책을 담아주면 봉투를 달랑거리며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세가 게임 랜드에서 오락을 한 판 하고 길거리 포장마차에 들러 떡볶이와 튀김을 샀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만화책을 쌓아놓고 베개를 끼고 엎드리면 더할 나위 없었다. 슬램덩크를 몰래 숨기고 보던 고등학교 시절도 좋았고 열혈강호나 용비불패 시리즈를 보던 조선소 시절도 좋았지만 유독 그 시절이 기분 좋게 기억되는 건 아마 그때가 마음 넉넉했던 시절인 까닭이리라. IMF 때문에 허덕이던 시절도 아니었고, 고된 육체노동으로 늘 지쳐있던 때도 아니었으니까. 삶을 포기했었으나 어떻게든 살아나 다시 시작하던 때였다. 긴 겨울을 지나 맞이한 봄이었다.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도 있었고 생활이 가능할 만큼은 돈을 벌었다. 미래를 위한 준비도 하고 있었지만 내일보다는 오늘을 즐기던 때였다. 일요일 오후 두 시의 풍경이랄까. 그때 말고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거나 무언가를 쫓으며 살았다. 그날의 책방 골목은 봄과 여름 사이에 머물러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정겨운 골목. 월세와 공과금을 낼 수 있고 쌀과 반찬을 살 수 있으면 충분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삼겹살이나 치킨을 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여름이면 친구 후배가 갖고 온 낡은 트럭에 여럿이 끼어 앉아 근처 계곡으로 갔다. 그날의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은 살아있는 한 잊을 수 없을 거다. 에어컨도 없는 트럭이었지만 웃고 떠들며 즐거웠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러한 일상이 내게 어울리는 삶의 형태였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거나 성공을 목표로 매진하는 건 적성에 맞는 일은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슬리퍼를 끌고 가 만화책 몇 권을 빌려보는 삶이면 충분했다. 타인이 바라는 삶을 자신이 원한다고 믿고, 타인이 나를 욕망하기를 원하고,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지극히 사소한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지금에서야 하는 헛소리인지도 모르지만.
야망이 욕망보다 대단한 건 아니다. 꿈이 오늘보다 소중한 것도 아니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건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때서. 이곳이 마땅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데. <20세기 소년>은 세기를 지나 제자리를 찾았다.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와 그날의 풍경을 즐겁게 넘긴다. 그날의 온기가 고스란히 간직된 것은 내일에 마음이 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쁨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었다.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배운 것들은 제법 있다.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떤 삶의 형태가 자신에게 적당하거나 그렇지 않은지, 무엇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견디지 못하는 일은 무엇이며 버텨서는 안 될 일은 어떤 건지. 나를 놓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삶을 붙잡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배웠다.
바둑알은 360개. 바둑판은 세로 19줄 가로 19줄 361개의 교차점을 가졌을 뿐이지만 바둑에서 둘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우주 전체의 원자 수만큼이나 많다. 도레미파 솔라시도 여덟 개의 음으로 세상 모든 노래가 만들어진다. ㄱ부터 ㅎ까지, ㅏ에서 ㅢ까지, 40개의 음운으로 쓰인 문장은 헤아릴 수 없다. 내가 써온 이야기도 마찬가지겠지. 거기서 거기인 일상이라 생각하지만 얼마나 많은 선택이 있었고 무수한 가능성이 있었을까. 그때 놓을 수 있던 최선의 수를 두어 온 거다. 그때 부를 수 있었던 가장 멋진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내가 써야만 했던 이야기를 써 온 거다.
비로소 “마크를 되찾아” 이곳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