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봤자 쓸모없는 신변잡기적인 잡문 1
SNS에 관한 단상
SNS는 질색이었다. 사람들이 도토리를 모으고 홈피를 꾸밀 때에도 관심 없었다. 페이스북이 유행할 때에도 그러려니 했다. 카카오톡이 나왔을 때에도 모른 척했었다. 우리만의 추억을 다른 사람이 본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내 모습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볼 수 있다고 상상하면 무서웠다. SNS는 그저 인생 낭비일 뿐이라 여겼다. 그러다 상실감에서 벗어나려 뭐라도 해보던 시절을 맞이했다. 스타일을 바꾸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고 운동을 시작했던 때였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던 바람 때문이었을까. 지인이 제멋대로 폰을 들고 가 인스타그램을 깔 때에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가끔 들어가 보기는 했지만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사도 어떤 기능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인간이다. 전화는 연락만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아마 꼬맹이 조카들이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잘 알 것이다. 어찌어찌 첫 피드를 올렸다. 구름 사진이었다. 외로운 사람은 하늘 사진만 찍는다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두렵고 음식이나 꽃 사진을 찍을 열정도 없다. 어쩌다 한 번씩 예쁜 구름 사진을 찍는 게 고작이었다. 구름 사진에다 책에서 읽은 글 몇 줄을 써서 올렸다. 구름 사진에 글귀를 올렸을 뿐인데 하트가 찍혔다. 생전 본 적도 없고 볼 일도 없는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몸의 변화를 체감하던 때였다. 몸무게 앞자리를 9에서 6으로 바꾸었는데 얼마나 자신감이 넘칠까. 옷을 몽땅 새로 사야 했기에 스타일이 바뀌었으니 얼마나 자랑을 하고 싶을까. 어색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빈 말인지 진심인지 몰라도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DM으로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감성적인 사진에 글귀를 써서 올리는 게 유행할 때라 좋은 글을 찾아 읽는 재미도 있었다. 나라고 쓰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내가 써두었던 짧은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해시태그가 뭔지도 모르던 때였다. 수필인지 시인지 정체성이 모호한 글들이었다. 하지만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었고 공감해 주는 댓글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서라도 문장을 다듬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글에 애정을 갖고 지켜보던 분께서 에세이 공저에 참여해 보면 어떻겠냐고 연락을 주셨다. 내가? 글을? 그것도 책으로? 과연 A4 3장 분량을 쓸 수 있을까? 술김이었을까.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백화점에서 옷을 사고 동네 사진관에 가서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공동 저자들과 단톡방에서 아이디어를 나눴다.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그저 즐거웠다.
그때가 서른일곱이었다. 열두 살의 가난, 스물넷의 사랑, 서른여섯에 다시 꾸는 꿈. 문장으로 정리한 나의 인생은 선명했다. 글에 깃든 치유의 힘을 난생처음 느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체감했다. 내 이름이 찍힌 책이 나왔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내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어떤 분은 내게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맙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어떤 분은 언니와 주고받은 문자를 캡처해 보내주시기도 했다. “이 사람 글 참 좋다. 작가로 성공할 것 같아” 어쩌면 그 말 한마디가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마중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일을 하는 틈틈이 넷북에 원고를 쓰기 시작했고 공저 에세이가 나오고 불과 두 달이 지난 후에 첫 책을 낼 수 있었다.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을 내는데 36년이 필요했지만 내 책을 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 책을 사서 인증샷을 올렸다. 걸그룹 멤버가 내 책을 언급했다. 네이버에 검색했는데 빨간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어있었다. 상상도 못 한 기쁨들을 누렸다. 곧바로 다음 책을 준비했다. 밤마다 글을 썼다. 주제를 정해 한 꼭지씩 매일 A4 두 장 이상 썼다. 그렇게 완성한 원고를 몇몇 출판사에 투고했다. 다음 날 세 군데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다음 책을 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으니 아마 초심자의 행운이었을 거다. 책 두 권을 내고 일을 그만두었다.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글을 쓰다 죽겠다는 각오였다. 해마다 책을 출간했다. 쓰다 보니 알 것 같았다. 쓰다 보니 삶은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늘 생각한 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상상도 못 한 곳에 닿을 수 있었다. 지금도 꾸준히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다. 좋아요 수가 많이 찍히지 않아도 좋다. 피드를 올릴 때마다 팔로워가 줄어들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힘을 얻었다면 그걸로 된 거니까. 나는 더 이상 SNS가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똑같은 칼이라도 누군가는 그걸로 사람을 살리고 누군가는 다치게 하는 법이니까. 그저 도구일 뿐이다. SNS를 타인의 삶을 엿보고 부러워하는 용도로만 쓰라는 법은 없다. 운동을 시작하며 인증샷을 올리고, 서툴더라도 마음을 다해 쓴 글을 공유하고, 좋았던 책을 소개하며 자신과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쓸 수도 있으니까. 예전에 선행을 찍은 한 영상에 누군가 ‘이제는 이런 따뜻한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며 아쉬워하는 글을 남기자. 어떤 이가 ‘우리가 하면 되지요. 우리가 만들면 되지요. 당신도 소중한 사람인 걸요.’라고 답을 달았다. 우리도 힘겨워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단으로 SNS를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다. “꽃잎은 날려 초록을 키우고 낙엽은 져서 봄을 부르듯 당신의 눈물은 숲이 될 테지.”라고 쓴다. 오늘이 힘겨웠던 누군가에게 닿아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