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쓸신잡

읽어봤자 쓸모없는 신변잡기적인 잡문 2

by 김민

껌에 관한 단상


오랜만에 편의점에 껌을 사러 갔더니 찾던 상품이 없었다. 껌이 진열되어 있던 계산대 아래 공간은 젤리가 채워져 있다. 가짓수도 많이 줄었다. 검색해 보니 껌 판매량이 급감했단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언제부터 껌이 사라지기 시작한 걸까. 도대체 이유가 뭘까? 껌을 씹는 모습이 이미지를 망치기 때문이라고? 고작 그런 이유로? 예전에는 폭력배들의 상징이었던 타투조차 너그럽게 바라보는 요즘인데? 껌을 씹으면 턱이 커진다는 도시 전설 때문이라고? 몇 초면 전문가의 의견까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볼 수 있는 지금? 젤리 종류가 늘었기 때문에? 물론 젤리 종류가 다양해지긴 했지만 예전에도 군것질 거리는 충분히 있었는데? 코로나의 영향이 있기는 했겠다.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껌을 씹을 수는 없으니까.

스마트폰의 등장과 카드 사용이 증가한 까닭도 있으리라. 심심풀이 땅콩처럼 껌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수단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껌을 씹었고 약속 시간을 기다리면서 껌을 씹었다. 뭔가 먹기 애매한 시간에는 식욕을 달래려 씹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터치 몇 번이면 심심함 따윈 금방 잊을 수 있으니까. 이제는 심심함 따윈 허락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IMF전에는 무조건 현금이었다. 버스비를 내려면 잔돈이 있어야 했다. 만 원짜리를 내면 한 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했다. 한 소리 듣고도 모자라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버스 안내양처럼 차비를 대신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내버스 정류장에는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 껌과 음료수, 복권 따위를 팔았는데 아마 그것만 팔아도 제법 쏠쏠했으리라. 음료수를 들고 타기는 애매하고 복권이나 긁고 있기에는 눈치 보이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껌을 샀던 거다. 나 역시 그렇게 산 껌이 수백 통은 넘으리라.

아메리카노의 대중화도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커피 하면 자판기였다. 짜고 매운 음식을 먹고 달콤한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입이 텁텁하기 마련이니 너도 나도 껌을 찾았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입가심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줄어든 영향도 크지 않을까. 흡연 인구가 80퍼센트에 육박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하다 피우러 가고 공부하다 피우러 갔다. 버스에서 피우고 식당에서 피웠다. 담배를 피우러 갔던 사람들은 냄새를 지우려 껌을 씹었다. 흡연자들이 우르르 담배를 피우러 가면 남은 사람 중 한 명이 껌을 꺼내 이거 씹을래? 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성인 흡연율이 20퍼센트가 넘지 않는다니 꽤 설득력 있는 가설 아닌가? 텔레비전만 틀면 껌 광고가 나왔고 아이들은 CM송을 따라 부르며 놀았다.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었던 쥬시 후레쉬, 후레쉬 민트, 스피아 민트가 있었고 여성은 향기로 말한다 외치던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카시아 껌이 있었다. 싼 물건을 보면 껌값이라고 하던 시절이었지만 작은 회사를 굴지의 재벌 그룹으로 만들어주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껌의 전성시대였다.

그때는 껌 종류도 엄청났다. 어린이는 풍선껌을 씹고 어른들은 은단껌을 씹었다. 만화가 들어있는 껌이 있었고 껌이 들어있는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껌 안에 들어있던 스티커가 동네 전봇대마다 붙어 있었다. 지금이야 다툰 연인들은 각자 스마트폰이나 쳐다보면 그만이지만 그 시절 연인들은 괜히 죄 없는 은박지를 벗기고 뭉치고 눌러야 했다. 껌 종이를 종류별로 모으는 사람들도 있었고 저마다 좋아하는 껌이 있었다. 커피 맛, 홍차 맛부터 온갖 과일 맛까지 세상의 모든 맛이 껌 안에 들어 있었으니까. 아버지는 개운한 후라보노 껌을 좋아했고 나는 상큼한 아세로라 껌을 좋아했다. 동생은 풍선껌을 좋아했고 엄마는 스피아 민트 껌을 씹었다.

껌의 약진은 계속되었다. 졸음 껌이 출시되더니 반만 열어서 에지 있게 씹는 고급 껌까지 나왔다. 양치 대신 씹으라던 껌 종류가 많아진다 싶더니 자일리톨로 정점을 찍었다. 온 국민이 휘바휘바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면 요즘 아이들은 믿어줄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란 말이 사람들이 껌 좀 씹던 시절로 바뀌진 않을까. 어린 시절 호주머니 안에 껌 하나쯤은 있었고 가난했던 청춘의 가방 안에도 껌 한 통쯤은 들어 있었다. 껌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있었건만 어느새 사라져 간다. 물론 영영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내게는 이미 저문 풍경이다.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지금도 무언가가 멀어지고 또 사라져 가고 있겠지. 당연했던 풍경이 낯선 장면이 된다. 글을 쓰다 동생에게 무슨 껌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틴에이지 풍선껌을 좋아했단다. 그러면서 사진을 잔뜩 보낸다. 직접 만든 체크무늬 상자 안에 껌 종이를 종류별로 모아 놓았다. 미백 껌, 이브 껌. 세이 영 껌. 깜찍이 버블 껌. 제로 껌. 체인징 칼라. 청포도 맛 아하 껌. DHA껌. 와우. 오리온 샤워. 엔돌핀 껌. 센스민트. 프라미스. 정신집중 껌. 둘리의 배낭여행까지. 맞다. 이런 껌도 있었지 감탄하며 보다가 식당마다 있었던 마카리안 껌을 보고 괜히 또 울컥하고 만다.


누이는 모처럼 추억의 상자를 여는 것이 즐거웠는지 이게 왜 자기한테 있냐며 대학 학생증 사진까지 보내온다. 촌스러운 니트를 입고 머리를 기른 스물의 내가 그곳에 있다. 그래,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추억은 이곳에 있다. 소중히 여기는 만큼 오래 내 곁에 머물러 줄 것이다. 함께 세월을 건너온 사람과의 대화 안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사진 한 장에 떠오르는 하루가 있을 것이며 엽서 하나에 실려 온 계절이 있을 것이다. 사라져 간 것들을 서러워하는 대신 내 안의 추억을 아껴주어야 할 테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꼭 껴안아 준 다음 보내야겠지. 아직 밤은 길고 내겐 새로이 다가올 아침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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