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봤자 쓸모없는 신변잡기적인 잡문 6
비디오에 관한 단상
고등학생이 되던 해 겨울. 마침내 내 방을 갖게 되었다. 비록 연탄을 쌓아 놓던 창고에 대충 벽지를 바른 게 전부였지만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처지에 나만의 공간이라니 얼마나 호사스러운가. 누군가에게 얻어온 책상과 어디서 받아온 텔레비전. 이불 한 채가 전부였지만 내게는 파라다이스였다. 지중해 파도를 새는 빗물이 대신하고 이국의 새소리를 고양이 울음이 대신하던 곳. 미닫이문 사이로 들이치는 찬바람도 기쁨을 식히지 못했다. 벽 한쪽에는 첫사랑이 준 프리지어 꽃다발을 걸어 두었고 미닫이문에는 심은하 브로마이드를 붙여 두었다. 삭아서 무너지려는 나무천장에는 테이프를 잔뜩 붙여두었지만 그것도 낭만이었다.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를 하던 날, 한 친구가 쓰지 않는 비디오 플레이어를 주기로 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볼 수 있다니. 나만의 극장이 생기는 셈이 아닌가. 로빈 윌리엄스의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며 키팅 같은 선생님이 되기를 꿈꿨다. 케빈 베이컨의 <일급 살인>을 보며 꺾이지 않는 영혼을 소망했다. 톰 행크스의 <포레스트 검프>를 보며 환호했다. <접속>을 보며 운명적인 만남을 꿈꾸었고 <편지>와 <시월애>를 보며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 프린트된 편지지에 숱한 여자애들의 이름을 적었지만 내 포지션은 <화이트 발렌타인>의 양동근이었다. 박신양과 전지현의 러브스토리에 꼽사리 끼어 있는 존재. 아는 사람이냐는 가게 주인의 질문에 알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그런 캐릭터였다. 낭만적 연애를 꿈꾸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는 불안정한 사춘기 소년에 불과했다.
그래도 신작 비디오테이프를 까만 봉지에 넣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때는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인생은 아름다워> <8월의 크리스마스> <뷰티풀 마인드> <그린 마일> 같은 명작은 물론 <이퀄리브리엄> <이레이저> <더 록> <엑스맨> 같은 액션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 <소림 축구>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색즉시공> 같은 코미디, <패컬티> <새벽의 저주> <지퍼스 크리퍼스> <위시 마스터> 같은 공포는 물론.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나 왕가위의 <중경삼림>까지. 비디오 케이스에 적힌 설명을 읽거나 가게 주인의 추천을 받아 닥치는 대로 영화를 맛보며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의 격동기를 무사히 건너왔다.
이성과 영화관에 가본 적은 있지만 내 체질이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 들어서면 숨이 막혔다. 정해진 시간 동안 옴짝달싹 못하고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이었기에 이성과 영화관에 간 횟수보다 이성과 사귄 횟수가 오히려 많다. 9년 동안 연애를 했던 그 사람과도 영화를 보러 간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사귀기 전에 DVD방에 함께 갔었다. 우리가 고른 영화는 13 고스트였다. 영화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음료수를 마셨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겁 많은 그녀를 위해 쿠션을 들어 눈을 가려주던 기억뿐이다. 그녀에게는 사랑의 시작이었다. 짓궂은 농담이나 하고 가볍게만 느껴졌던 사람이 깔끔한 옷을 입고 나와 다정하게 챙겨주는 모습에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연애를 시작한 후 영화관에 몇 번 같이 갔지만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영화관에서는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옆자리 사람의 움직임과 뒷자리 사람의 발차기.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사람들의 환호나 웃음소리도 나를 불편하게 했다.
2005년 나는 비디오방 알바가 되었다. 현진이 후배가 소개해 준 자리였다. 할 일만 제대로 한다면 공부를 하건 뭘 하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한 달 월급 60만 원에 일 매출 얼마 이상이면 보너스를 받는 조건이었다. 비디오를 틀어주는 걸로 전부는 아니었다. 영화 추천도 해줘야 했고 나간 방을 청소하고 새벽이면 가게 전체를 쓸고 닦아야 했다. 얼마나 많은 콘돔을 치웠던가. 얼마나 많은 취객들이 있었던가. 그래도 공무원이 되고 말겠다며 머리를 빡빡 밀고 각오를 다졌다. 일하는 틈틈이 공부를 했다. 자격증을 따고 단어를 외웠다. 단골들도 제법 있었다. 매번 다른 여자를 데려와 조니 뎁의 영화만 보던 남자도 있었고, 먹을 걸 잔뜩 사와 내게 하나씩 건네주던 중년 남자도 있었다. 기숙사 통금에 걸려 밤을 새우고 가는 대학생들이 있었고. 영화는 뒷전이고 서로를 만지려 애가 탄 남녀도 있었다. 내게 쪽지나 음료수를 건네던 여자들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임자가 있는 몸이었다. 그날 목표로 한 공부를 마치면 영화를 한 편씩 보았다. 그때 명작을 많이 만났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나 이병헌의 <달콤한 인생> 같은 영화들. 그때는 슬픈 영화도 잘만 봤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너는 내 운명>처럼 눈물이 줄줄 흐르는 영화도 좋아했다. <반딧불의 묘>처럼 처참하도록 슬픈 영화도 엔딩까지 볼 감정적 체력이 있었다. 그때는 꿈꾸던 내일이 있었으니까. 내일을 약속한 사랑이 있었으니까. 그때는 청춘이었으니까. 자신이 살아내는 매 순간이 얼마나 찬란한지 볼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이 세월이 지난 후에 몇 번이고 돌려 보게 될 장면임을 알지 못하는, 저마다의 삶이 영화보다 아름다운 이야기임을 깨닫지 못한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이겠지.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다 잠들어 버리는 밤이 오리라 상상도 못 했던, 뜨거웠던 청춘의 날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