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쓸신잡

읽어봤자 쓸모없는 신변잡기적인 잡문 5

by 김민

불면증에 관한 단상


알람이 울리기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지다니. 알람을 몇 개씩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니. 원래라면 잠을 청했을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다니. 아침형 인간의 일상은 지구 반대편 나라로 이사한 것처럼 낯설다. 하루가 이렇게나 길었던가. 아침형 인간이 야행성 인간보다 낫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낯선 도시를 여행하듯 살아가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체중은 자연스럽게 줄었고 피부도 예전보다 나아졌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응급실로 실려가 어쩔 수 없이 입원했지만 얻은 것은 있다. 새벽 다섯 시면 깨고 저녁 일곱 시면 불을 끄는 병실 생활이 준 선물이다. 악몽 같았지만 잘 살펴보면 뭐든 얻는 게 있는 법이니까.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돈이 많건 키가 크건 몸이 좋건 얼굴이 잘났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플 때에도 건강한 사람을 부러워한 적 없다. 나를 돌보기에도 바쁜데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시간이 있을까. 하지만 머리만 대면 잠드는 누이는 부러웠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예민해서 자주 깨고 개운하게 일어난 적 없는 내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내 불면의 역사는 길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고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사춘기 시절부터였다. 새벽이 되어도 눈만 말똥말똥했다. 밤이 되면 세상 모든 것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잠귀가 밝아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깼다. 어릴 때 친척 집에 가서 한 번도 편히 잔 적 없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건 낯선 곳에서 잠들지 못하는 까닭이다. 익숙한 공간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잠들기 위해 몇 시간은 기본적으로 필요했다. 잠들기 위해 별 짓을 다했다. 운동은 물론이고 호흡법이나 명상, 스트레칭. 잠이 잘 온다는 차와 음식까지. 노래를 들으면 가사를 따라가고 수면 ASMR을 들으면 장면이 떠올랐다. 암막커튼에 수면 안대, 수면 유도제와 귀마개도 위로가 될 뿐 도움은 주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온다.’는 감각 자체를 느낄 수 없었다. 스며들거나 가라앉는 대신 어느 순간 끊겨버리는 느낌이랄까. 밤새 뒤척이다 일을 하러 가기 전 겨우 잠들었다 피곤에 절은 몸에 커피나 드링크를 수혈하며 하루를 버텼다. 낮잠을 시도해 본 적도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것은 ‘피곤하다.’ ‘지친다.’ ‘몸에 열이 난다.’ 정도였지 졸음이라는 감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꾸만 멍해지고 혈압은 80대 노인보다 높았다. 무엇보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 베개에 무슨 블루투스라도 연결되어 있는지 온갖 생각이 거품처럼 떠올라 머리를 두드렸다. 망상과 회상 사이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잠 따위 자지 않아도 안 죽는다며 마음을 편히 먹는 것뿐이었다. 예민한 정신을 술에 빠뜨려 재우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게 원인일 거다. 어쩌면 감나무에서 떨어졌을 때던지 아니면 골대에 머리를 부딪쳤을 때던지. 머릿속에 들어 있던 전원버튼을 어딘가 흘리고 온 게 분명했다. 거기에 늦게 끝나는 일을 자주, 오래 한 것도 한몫했을 거다. 비디오방에서는 저녁 6시부터 아침 6시 근무였다. 가게를 운영할 때는 새벽 2시가 마감이었다. 대충 정리만 하고 들어가 누워도 날이 밝아왔다. 물론 밤을 사랑하기는 한다. 어둠을 덮고 걷는 세상은 자유롭고 아늑했다. 체질적으로 안경점이나 병원처럼 지나치게 밝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란한 조명이나 반짝이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어지러워진다. 밤은 고요하고 다정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사십 년 동안 밤의 주민으로 살아봤으니 남은 시간은 다른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사춘기 전에나 느껴본 잠의 감각을 갓난아기 다루듯 소중히 안고 다닌다. 모처럼 되찾은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사는 곳을 바꾸지 않아도 사는 시간대가 변하면 전혀 다른 하루를 살게 된다. 마주치는 사람이 다르고 보이는 풍경이 다르고 밥 먹는 시간이 달라지니까. 술집이 늘어선 거리에서 섬마을 학교로 이사 온 기분이랄까. 잠자는 시간대만 달라져도 위도와 경도가 바뀌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잠이 들고 깨는 시간이 몇 시간 앞당겨진 사소한 변화지만 살아가는 세상이 바뀌었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랬다.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었을 때도,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도, 새로운 삶을 계획했을 때도 사는 곳은 그대로였지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전혀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변화는 나로부터 비롯하는 거였다. 몇 년 동안 점심 한 끼 먹자는 친구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해 왔지만 오늘은 나가봐야겠다. 내 새로운 왕국을 둘러보며 느긋이 걸어야겠다. 급할 것 없다. 아직 하루는 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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