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쓸신잡

읽어봤자 쓸모없는 신변잡기적인 잡문 4

by 김민

인연에 관한 단상


나는 그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아직 세상으로 나올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 때였다. 사람이 두려웠다. 대신 나는 한 달 치 생활비를 축의금으로 보내고 문자를 남겼다. “가는 것이 맞다.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음을 헤아려주길 바랄 뿐이다. 적은 돈이지만 지금의 내게 한 달 치의 목숨 값이다. 가난한 나는 더 보탤 것이 없어 시 한 편을 적어 보낸다. 마땅히 입을 옷도 없다. 먼 곳까지 갈 체력이 되지 않고 아직 사람 많은 곳에 갈 자신이 없다. 모든 것이 변명에 불과하지만 너를 축복하는 마음만은 진심이다. 부디 행복하게 살아다오. 그것밖에 할 말이 없다.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 통영을 다시 찾았다. 거제에서 있었던 아내의 공연이 끝나고 들른 길이었다. 우리는 순두부찌개를 주문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물 언저리로 보이는 직원이 돌솥을 상에 떨어뜨려 뚜껑이 벗겨지고 물이 쏟아졌다. 다행히 찌개가 옷에 튀는 정도였고 다친 사람은 없었다. 실수를 한 직원은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다급한 손놀림을 보니 더 큰 사고를 칠 것 같아 괜찮다고, 놀라면 더 실수하기 마련이라고 천천히 하라 말씀드렸다. 마침 그때 우리는 “그럴 수도 있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이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니까. 오늘을 망칠 만큼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허기를 채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2년간의 공백을 채우려는 듯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함께 일하던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긴 다음에는 얼마 전부터 시작했다는 러닝 이야기를 들었고 어제 다녀온 강연 이야기를 했다.

오랜만이었지만 어제 두고 간 물건을 전해주러 온 것 같은 만남이었다. 그의 아내는 그와 내가 닮은 점이 많다며 놀랐다. 귀리를 섞은 밥을 먹는 것부터,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습관, 음식 낭비를 싫어하는 것도, 미리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것도, 일에 관해서는 완벽하려는 욕심까지. 그의 아내는 이렇게 멋진 사람이라서 오빠가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고 말했지만,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아니라 그가 늘 좋은 것을 배우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배우려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때도,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도, 다시 군무원을 준비할 때도. 본받을 만한 점이 있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도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집안에 문제가 있을 때도 있었고, 불투명한 미래에 괴로웠던 시절도 있었다. 조언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나를 찾아왔었다. 위스키나 브랜디를 들고 찾아와 밤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가 잠시 차에 다녀오겠다고 하더니 선물 상자를 건넨다. 고급 브랜디가 들어 있었다. 이게 얼마만이냐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 감사함을 안다. 몸이 아프면서 그는 그렇게나 좋아하던 술을 단번에 끊었다. 3년째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영화에서나 나오는 술을 사 와도 뚜껑의 냄새만 맡아보고 거절한다. 술을 끊은 이가 술을 선물하는 뜻밖의 마음이 어찌나 귀한지. 이 술은 마음이 힘들 때가 아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따겠다고 약속했다.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다. 다음에는 내가 올라갈 일을 만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때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는 집까지 태워주겠노라 말했지만 가을바람이 좋으니 걷겠다고 말했다. 밤바다를 왼 편에 두고 걸었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을 음미하고 싶었다. 꼭꼭 씹어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다. 이제 우리는 또 어디에서 만나게 될까. 다음번에 만날 때는 식구 하나가 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곁에도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그와 내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일상을 함께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삶에 건배를 외칠 것이다.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건 웃으며 마주할 것이라는 사실, 자신에게 쌓인 세월을 한 꺼풀씩 풀어내며 밤을 지새울 거라는 사실뿐이다. 웃으며 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나의 사람들과 정답게 지내는 것 말고 삶에 정답이 뭐가 있단 말인가.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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