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쓸신잡

읽어봤자 쓸모없는 신변잡기적인 잡문 9

by 김민

강박에 관한 단상


강박을 가진 이에게 SNS란 뭐랄까. 현관문을 열고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카카오톡 빨간 점을 내버려 두지 못한다. 업데이트든 뭐든 없애야 속이 후련하다. 읽으면 곧바로 답장을 해야 한다. 글쓰기 밴드에 알림이 뜨면 곧바로 읽어야 한다. 인스타그램은 주 6회 피드를 올려야 한다. SNS뿐일까. 타이머를 맞추고 양치질을 한다. 거실 전기 코드를 순서대로 확인하고 냉장고 문을 두 번 누른다. 주방 싱크대 꼭지를 확인한 뒤 가스 밸브를 눈과 손으로 몇 번씩 확인하고 침실로 들어간다. 그러고도 불안해서 다시 나온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담배를 피울 때라 재떨이에 물을 붓고 휴지통까지 확인한 다음에야 잠에 들었다. 외출을 할 때는 지금의 루틴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고 몇 번이고 집으로 돌아가 문이 잘 닫혔는지 손바닥을 대고 한참을 있어야만 했다. 그걸로 모자라 가스 밸브 사진과 문 닫힌 사진을 찍고서야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마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문을 잘 잠갔는지 불안해서 새벽에 다시 가게로 찾아간 적도 많다. 어릴 때는 그러지 않았다. 칠칠치 못하게 물건을 흘리고 다녔고, 털털하다 못해 지저분한 인간이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기에 불안한 거다. 마음속 두려움이 강박으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가게 운영을 십삼 년 정도 했는데 지금도 일할 때의 꿈을 꾼다. 주문서가 수십 개 밀렸는데 첫 주문을 넣지 않았다던가. 가게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꿈을 꾼다거나. 가게가 끝없이 넓어지는 꿈이라던가. 이십 대 시절 군대 악몽보다 더하다. 아니다. 어쩌면 원래 그런 성향이었는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그렇게나 많은 책을 빌려 보면서도 연체한 기억이 없다. 가스나 전기 공과금은 즉시 납부해야 했고 적금 만기 날짜에 은행에 가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뭐, 어째서인지 모르면 어떤가. 강박을 어떻게 쓸지만 알면 되는 거 아닌가. 이것도 나의 자산이 아닌가. 강박이 있었기에 십삼 년 동안 단 하루도 문단속을 빠뜨리거나 실수한 적이 없었다. 그러한 강박은 글쓰기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 독서에세이를 탈고한 것이 재작년 삼월이었다. 퇴고만 이 년째다. 같은 원고를 보고 또 보고, 구역질이 날 때까지 보기에 그나마 그때의 내겐 최선인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사실 단점이라 부르는 것은 모두 그러하지 않던가. 바라는 것을 가질 수 없다면 가진 것들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몸으로 익혀내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나보다 노래 못하는 사람은 없다. 어릴 때는 머리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 생각했다. 도레미파 음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고 음정과 박자라는 개념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음악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엔 정말로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세상에 노래를 잘 부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이성 앞에서 멋진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는 게 있는 거더라. 심지어 랩조차 박자를 맞추지 못하겠더라. 분명 머리 나쁘다는 소리를 듣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렇더라. 하지만 그렇기에 꽤 괜찮은 청중이 될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타인의 노래에 박수 쳐주는 법을 배웠다. 흥을 돋우고 신나게 노는 법을 익혔다.

방향치인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공간을 지각하는 능력이 아예 없는 나로서는 면허 따윈 따지 않는 편이 수명 연장의 비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유전적인 문제도 그저 나라는 인간의 특징일 뿐이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액취증이라던가. 허리와 치아가 약한 친가 쪽의 유전과 암 가족력. 외가 쪽의 특징인 탈모 또한 나라는 사람을 나답게 하는 요인일 뿐이다. 물론 사춘기 시절은 지옥이었으나 그랬기에 조금이나마 깔끔한 인간이 되지 않았을까. 20세기부터 제모를 하고 데오드란트를 챙기는 남자가 되었으니까. 후천적으로 얻은 질병들은 더더욱 서럽지 않다. 통풍은 내가 술을 많이 마신 탓이고 잦은 염증은 무리한 운동과 잘못된 식습관 탓인데 누굴 탓할까. 운동을 시작할 결심을 하는 데는 오래 걸렸으나 일단 시작하고 나니 강박이 도움이 된다. 태풍 경보가 내려진 날에도 나와의 약속을 어길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줄넘기를 했고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다녀온 날에도 어깨를 다친 건 아니라며 철봉을 당겼다.


삶의 전환점이 될 첫 번째 강연을 준비하는 데도 강박의 도움을 받는다. 네이버 지도를 믿지 못해 한 달 전 미리 버스터미널에 가 시간표 사진을 찍거나 허리가 아팠던 김에 자전거를 타지 않기로 한 것은 오버일지 모르지만 몇 달 전부터 골백번 연습하고 수정하는 일은 강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은 내게 강박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이라도 증거를 찾지 못할 것이다. 진짜 예민한 사람은 예민하다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강박이건, 가난이건, 고독이건 그게 무엇이 되었건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가능한 잘 살아내려 애쓸 뿐이다. 지금 나를 이루는 것들을 껴안아줄 뿐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또 다른 나를 더해가는 것이다. 일단 오늘 섬에 놀러 가는 것부터 시작하자.


연화도는 인구 200명이 되지 않는 섬이다. 12. 5km. 자전거로 40분이면 돌 수 있는 둘레에 가장 높은 연화봉이 해발 212m. 그야말로 아담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섬이다. 지난달 4일부터 통영 시민은 뱃삯이 무료였으나 가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살겠다며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고질병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기쁨을 미루며 살았다. 잠은 죽은 뒤에 자도 충분하다고. 쉬는 건 일을 모두 끝마친 후에 해도 된다고 했지만 언제나 새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사는 동안 해야 할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만 안심하고 마는 지독한 강박. 누이가 함께 가자며 권해준 덕분에 마침내 배에 오른다. 누군가 권했을 때 일단 거절부터 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나마 좀 나아진 거라 해야 할까. 누이 식구는 미수동에서 출발하고 나는 죽림에서 출발해 통영 여객선 터미널 앞에서 삼십 분 전에 만나기로 했다. 온돌이 깔린 객실에 드러누운 승객들. 바닷바람을 맞으며 캔맥주를 마시는 남자.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는 아이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섬들. 우리 동네만 한 섬부터 우리 집 크기의 섬까지. 섬들은 지금껏 지나쳐 온 기쁨 같았다.


고작 1시간 거리의 섬에 오는데 사십 년이 넘게 걸렸다. 통영에서 산 세월만 삼십 년이 넘건만 오백 개가 넘는 섬 중 어느 곳도 가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발밑의 꽃을 보지 못하고 산 날들이었다. 연화도에서 우도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 동백이 피어있는 고요한 숲을 걷는다. 돌아오는 길에 조카들과 가위바위보 게임을 한다. 주먹은 열 걸음, 보자기는 다섯 걸음, 가위는 두 걸음. 사람들은 웃으며 지나쳐 가고 동백은 빙그레 웃는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서 있다. 뭐 늦으면 어떤가. 어차피 우리는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아직 삶은 끝나지 않았고 어머니의 말처럼 마음만 먹으면 월요일에는 소매물도, 화요일에는 욕지도, 수요일에는 사량도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껏 생의 기쁨을 방해한 것은 나였다. 그러니 삶을 맛보기로 선택한 나의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당일치기로 다녀온 연화도처럼, 하루 안에도 나를 위해 준비된 기쁨이 있을 것이다. 조금은 느긋하게 걸어갈 것이다. 내게 다가온 매일을 맛볼 것이다. 해야 하는 일에 매몰되어 내게 주어진 선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니 아파트 화단에 홍매화가 피어 있다. 나무 아래 얼룩 고양이가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쉬고 있다. 이제부터는 그가 나의 롤모델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 개나 늑대의 방식만은 아닐 것이다. 배를 채우고 나면 꽃냄새를 맡고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살 것이다. 내게 다가온 하루를 섬처럼 대할 것이다. 하루살이처럼 오늘을 맛보고 한해살이 풀꽃처럼 일 년을 대할 것이다. 기쁨을 나의 일로 삼아 느긋한 걸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읽쓸신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