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봤자 쓸모없는 신변잡기적인 잡문 13
옳음을 강요하지 않는 삶
얼마 전 누이 아파트 윗집에 새로 입주자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짐정리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며 웃어넘겼지만 몇 달이 지나도 우당탕탕 소리와 끽끽 가구 끄는 소리가 멈추지 않아 윗집 문고리에 봉투를 걸어두고 왔단다. 조금만 신경 써달라는 편지와 의자 다리에 끼우는 가드 스티커, 면 실내화를 넣어 두었더니 그날 바로 찾아왔단다. 문을 열어보니 낯선 남자가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서있었다고 했다. 보는 순간 모든 상황이 이해되더란다.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남자에게 조금만 조심해 달라고 부탁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단다. 그래,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저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겠지.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모인다고 고요가 깊어지지 않듯이 다수가 주장한다고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침묵 속에서 말해지며 한 사람의 생보다 무거운 정의는 없다. 무리를 짓는다고 정의로워지지 않으며 모두에게 통용되는 신념은 없다. 진실은 생략되고 삭제되고 왜곡된다. 말하는 이의 주관에 의해 축소 혹은 확대되며, 자의 또는 무의식적인 편집이 곁들여진 뒤, 듣는 이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임의적으로 해석된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함부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진실이 언어로 전해지기란 불가능함을 기억한다. 온전한 형태의 진실이 아닌 사실의 조각들일뿐이다. 깨진 거울을 나눠가지듯 각자의 진실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진실은 모호하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경험과 가치관이 다르다. 나의 정의가 타인의 정의가 될 수 없듯이 나의 상식이 타인의 상식이 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저 사람도 알고 있겠지. 내가 안다고 저 사람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나라 이름을 외우거나 시사용어를 잘 안다고 상식적인 인간이 되는 건 아니다. 자신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상식이며,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일지라도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게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상식이다. 다름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식의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 인종 차별 주의나 유아학대 옹호만 아니라면 상관없다. 그가 채식을 하건 동성애를 하건 외계인이건 머리가 두 개이건 존중할 수 있다. 그가 자신을 내게 강요하지 않는 한.
어떤 종류의 선인지에 관계없이, 선 하나로 모든 걸 재단하는 사람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지 보지 못한다. 무수한 선이 모여 그려내는 찬란한 움직임을 느낄 수 없다. 세상을 보는 시선은 다양한데 자신만이 정의라 말하는 것도 오만이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데 상대를 옳지 않은 사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하는 건 폭력이다. 유일무이한 절대선. 이보다 위험한 사상은 없다. 옳음에 대해 말하기보다 흔들리며 나아가기로 하자. 나의 신념만 옳다 여기지 않기로 하자.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지 않기로 하자.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기로 하자. 편집된 진실에 속지 않기로 하자.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세상에 옳음은 이미 너무 많아서 굳이 내 것까지 보탤 필요는 없어 보인다. 도고일척 마고일장. 옳음이 늘어나면 그릇된 존재도 많아진다. 옳음이 많아질수록 숨이 막히는 건 나뿐일까.
애초에 인간은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니 규칙에 예외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논리가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저마다의 논리를 한데 모아 가늠해 보기 위해 규칙을 만들었다고. 정의가 모여들 길을 만들어 놓은 거라고. 심판을 행하는 법 자체도 완벽할 수 없다. 사회는 계속해서 발전하는데 법이 그대로라면 오히려 시대의 전진을 방해하겠지. 그래서 입법부에서 법 개정을 하고 새로운 법을 만들고 헌법 소원을 제기하고 판례로 다른 해석을 내어놓는 거다. 법은 살아있는 인간을 다루는 일이고 사람 사이의 일에 대한 것이며 나아가 세상과 사람 사이의 일이니까. 법이 살아있지 않으면 오히려 곤란하겠지. 법을 권력의 입맛에 맞추거나 부유한 자들이 빠져나갈 수 없게 하려면 불평만 늘어놓고 있을 게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힘을 모으고 목소리를 높여야겠지. 사람을 위한 법은 오직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니까. 모두의 정의는 없어도 모두에게 정의는 있으니까.
사실 악 따위는 없다. 누군가의 선과 다른 이의 선이 만나 무언가를 그려낼 뿐이다. 선과 선이 만나 입체적인 그림을 그리듯 그들 나름의 선을 행했을 뿐이다. 믿음은 공격할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오롯한 가치를 칭하는 말이다. 독립은 홀로 오롯하되 함께 어우러지는 상태를 이른다. 독립적인 인간은 스스로 내린 결정을 확신하기에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타인의 옳음을 인정해도 자신의 정의가 훼손되지 않기에 존중이 태도로 드러난다. 보지 못한 건 말하지 않고 들었다고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믿지 않는 것은 함부로 말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정의의 깃발보다 누군가가 건넨 손수건이 위대하다고 믿는다. 정의보다 선의의 힘을 믿는다. 그러니 1퍼센트의 악에 흔들리지 않는다. 99퍼센트의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지탱하는 특별함임을 믿는다. 선량한 사람들이 지닌 힘을 믿는다. 1947년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인종차별을 딛고 화려한 경력을 쌓은 재키 로빈슨, 당시 그는 400명의 메이저 리그 선수 중 단 한 명의 흑인이었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지 않고 인내했다. 싸우는 대신 그의 일을 했다. 그저 자신의 야구를 했을 뿐이다. 그것이 그가 전쟁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그는 편견에 맞서 싸우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따랐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일은 자신을 지키는 것뿐이다. 자신을 지켜냄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신념이라 부른다. 신념은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행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