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쓸신잡

읽어봤자 쓸모없는 신변잡기적인 잡문 12

by 김민

빌런들에 관한 단상


집주인이 문자를 보냈다. 자신에게 집을 빨리 나가게 하는 비방이 있단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종이를 집구석구석에 붙이란다. 신발장 왼쪽, 베란다 창문 왼쪽, 작은 방 창문 아래, 안방 서쪽에 글자를 적어서 거꾸로 붙이란다. 뭐라고 적어야 하는지 물으니 이름과 생년월일을 자필로 쓴 다음 개보*라고 적으란다. ‘자필로 그런 말을 남기고 가라고?’ 마흔 넘어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처음 본다. 일단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넘겼다. 예전이었으면 무슨 헛소리냐며 비웃었겠지. 얼마 전 엄마가 빨리 집이 나가야 한다며 현관문 위에 십 원짜리를 붙이려 할 때도 쓸데없는 짓이라며 말렸을 거다. 이십 대 초반 신문에 실린 <광수생각>을 읽었다. 생명선, 두뇌선, 감정선 손금에 대해서 잘 알지만, 자신이 믿는 것은 노력으로 만든 ‘굳은살’뿐이라는 내용이었다. 곧장 신문을 오려 몇 년 동안 지갑에 넣고 다녔다. 오직 땀과 눈물만이 삶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부적이나 사주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생은 오직 나의 발걸음으로 쓰는 거라 여겼다.


뭐 나이 들어서 그런 건지. 조금은 철이 든 건지. 사람이 부드러워진 건지. 요즘은 그냥 내버려 둔다. 믿고 싶다는 사람을 굳이 설득할 필요 없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한테 ‘바보, 튜브를 잡아야지.’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그의 신념이 있는 것이다. 내게는 허무맹랑해 보이더라도 그것이 그의 삶의 방식인 것이다. 엄마가 십 원짜리를 붙인 효과일까. 강연 문의도 제법 오고 편집 일도 들어온다. 라이팅 클럽 운영도 자리를 잡아간다. 은둔형 외톨이처럼 글만 쓰다 다시 세상에 나와 보니 별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맞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당신은 얼마입니까?” 강연이나 강좌 개설을 기획하는 이들이 자주 묻는 말이다. 물론 돌려 말하긴 하지만 내용은 그거다. 말하면 그대로 줄 것도 아니면서. 차라리 “저희 예산이 이러한데 괜찮으신지?” 묻는 편이 깔끔하지 않나. 거리나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 실컷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 “돈 때문에” 하지 않는 것 같은 상황도 피할 수 있으니까. 사실 ‘얼마입니까.’는 양반이다. 일단 강의 계획서부터 보내라는 경우도 많다. 기껏 작성해서 보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부른다. 여비도 나오지 않는 금액에서 자기들 몫도 떼겠다는 곳도 많다. 정규 강좌를 기획해 보자며 전화를 걸었다가 감감무소식인 단체도 있었고 먼저 강연을 제안해 놓고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하는 단체도 있었다. 뭐 나야 상관없지만 그딴 식으로 일처리를 해도 괜찮은 걸까 싶다.


황당한 부탁을 받기도 했었다. 글쓰기 챌린지 참가자가 책을 쓰는 것이 꿈이라며 멘토링을 해달라고 했다. 진심으로 요청하니 받아 달라고 했다. 먼 거리지만 KTX를 타면 금방이라고 했다. 자신의 일정은 이러이러하니 언제든 괜찮다고 했다. 자신의 부탁이 무례가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연배가 있는 분이라 그냥 넘어갔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요청할 때도 먼저 일정이 어떠한지 묻는다. 내게 도움이 되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분들도 정중하게 제안을 한다. 물론 그분의 간절함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분의 말씀을 요약하면 ‘나는 책을 쓰고 싶다. 그러니 이쪽으로 와 달라. 잠깐이면 된다.’ 노동의 대가는 어디 있는가. 멘토에 대한 배려는 어디 있는가. 직접 오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보고 오란다. 이건 부탁의 탈을 쓴 착취다. 공짜로 부려 먹으려는 심산이다. 통영으로 만나러 오겠다는 분들도 말리는 판에 왕복 10시간 거리를 움직이라니. 라이팅 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니 그곳에서 한 편씩 글을 완성하면 된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 무료 봉사를 하러 먼 길을 달려오라니. 꿈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개인적인 욕심이 아닌가. 사회에 도움이 되거나 누군가를 돕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무례가 아니길 바란다지만 이 정도로 무리한 부탁은 무례가 맞다. 상당한 금액을 제시해도 보람이 없는 일이라 거절할 판에 공짜로 해달라니. 지나가는 의사한테 아프니까 공짜로 치료해 달라고 할 건가. 옆집 사는 목수한테 공짜로 집을 지어달라고 할 건가 이웃의 교사한테 우리 아이 좀 가르쳐 달라고 할 건가. 내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내가 세상 모두를 도울 수는 없다.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에 쓰기에도 모자라다. 앞으로 이분이 어떤 제안을 한다 해도 아마 응하지 않을 것이다. 쓰레기는 보석 상자에 담아도 쓰레기다. 갑질은 정중한 말로 포장해도 갑질이다. 권리를 권력으로 착각하는 이들은 사람을 헐값에 사려 한다. 학교 선생님을 가정교사로 여기고 가게 종업원을 노예처럼 부린다. 형편없는 대가를 지불해 놓고 왕처럼 대해주길 바란다. 그들 중에 자존감이 높은 이는 없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이들은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어느 집단에 가도 마음에 드는 사람만 있을 수는 없다. 꿈을 위한 모임에서도,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취미로 모인 동호회에서도, 동네 가게에서도 만날 수밖에 없다. 가족마저 그러한데 무엇을 바랄까.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이 있는 법이다. 비 오는 날이 있어야 숲이 푸르러지는 법이다. 햇살 좋은 날 빨래를 널듯이 좋은 사람들에게 집중해야지. 비 오는 날 우산을 준비하듯 흘려보내야지. 좋은 것들만 바라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나쁜 것들을 담아 둘 시간에 좋은 것을 건네야지.


글쓰기 챌린지 글감으로 당신이 만난 최악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라 한 적이 있다. 내 생에 최악의 인간은 누구일까? 거지라며 따돌리던 아이들일까? 폭력을 일삼던 선생들? 어린 나를 착취하던 고용주들? 집요하리만치 괴롭히던 군대 선임? 거칠게 문을 두드리던 깡패들? 월급을 주지 않았던 사장? 거짓말로 속였던 이? 배신하거나 이용한 인간들? 이제는 상관없는 일이다. 웃으며 이야기할 추억일 뿐이다. 그들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이들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아픔을 허락한다. 최악은 거울 속의 내가 아니었을까. 나를 돌보는 법을 몰랐던, 삶을 놓아버렸던 나였다. 애써 거울을 외면하던 무수한 밤이 있었다. 나를 속삭이던 밤이 있었다.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며 결심했었다. 한해살이 풀꽃처럼 살리라. 오늘도 거울 속 나를 보며 다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으로 죽을 수 있기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최악일 수 있음을 되새기며 살아가자고. 조금이라도 선한 일을, 조금이라도 다정한 말을,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자. 지구 밖으로 쏘아 올린 우주 탐사선처럼 나 역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하고 있지 않은가. 푸른 별에 올라탄 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여행하고 있으니까. 나는 매 순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자다. 이왕이면 즐거운 여행을 해야지. 기쁨을 탐험해야지. 삶을 모험으로 만들어야지.


어차피 그들은 나를 바꿀 수 없다. 나는 그들을 바꿀 수 없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김없이 마음을 주고 꿈을 위해 고백을 계속하는 것뿐이다. 나에게 세상을 맞추는 것보다는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편이 훨씬 쉬운 일이니까. 그는 그대로 그러하고 나는 나대로 그러한 것일 뿐이니까.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과 보라색까지.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져 세상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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