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봤자 쓸모없는 신변잡기적인 잡문 14
숫자에 관한 단상
사다리꼴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가 나왔을 때 생각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사다리꼴의 넓이 따위를 구할 일은 평생 없을 거라 생각했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수학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모두가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 삶의 계산에 미분이나 적분 같은 개념은 필요 없다. 이미 세상에는 지나치게 많은 계산이 있다. 사람의 가치는 숫자로 환산되고 삶의 의미는 측량된다. 나로 살기 위해 무늬만 그럴듯한 숫자에 속지 않으려 했다. 속도에 집착하지 않으려 했다. 평균에 매몰되지 않으려 했다. 순위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
세상에는 평가할 수 없는 숫자가 있다. 세상에는 비교해서는 안 될 숫자가 있다. 모두가 등을 돌려도 한 사람만 믿어주면 살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서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은 모든 수의 시작이다. 모든 수는 1의 개수로 결정된다. 1은 정체성이다. 무엇으로도 나누어지지 않는 근원이다. 상위 1%가 되지 않아도 좋다. 내가 몇 등급에 속하는지 따지며 살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 평수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연봉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1/1의 사람이 될 것이다. 나를 근거로 미지수의 영역인 내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무수한 순간의 합이자 오직 자신으로만 나눌 수 있는 존재다. 리만 가설도 페르마의 정리도 유클리드의 기하학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나를 납득할 수 있다. 교양은 부족하지만 삶을 고양시킬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나는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숫자는 만질 수 없다. 수는 개념이며 정신적 활동의 결과물이다. 숫자를 사용하고 정의하는 것은 사람이다. 물론 숫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문명은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숫자에 갇히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게 된다. 사라지지만 지울 수 없는 순간을 남기며 나아가려 한다. 숫자를 사용하되 숫자에 이용당하는 삶은 거부하려 한다. 수학의 쓸모를 인정하되 삶의 의미를 묻지는 않을 것이다. 내 삶을 숫자로 정의하진 않을 것이다. 불행으로 건너가는 다리의 이름은 비교다. 왜 타인의 쾌락을 나의 불행으로 바꿔야 하는가. 타인이 값비싼 물건과 화려한 옷으로 치장해도 개의치 않는다. 도대체 무슨 상관일까. 그가 하루를 사기 위해 지불한 대가일 뿐인데. 얼마를 써서 오늘을 사는지는 중요치 않다. 이곳에 깃든 기쁨을 누리면 된다. 1퍼센트의 환상에 속지 않는다. 부자가 되고 성공하면 저절로 행복해질 거라 믿지 않는다. 세상과 싸우느라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100퍼센트의 나로 지금을 산다. 1/1로 사는 사람은 무한의 찰나를 산다.
오롯이 온전하다. 나를 더해가는 삶이다. 몸과 마음이 한 곳에 있는 삶이다. 무언가를 짊어지지 않는 삶이다. 누군가의 위에 서지 않는 삶이다. 사랑한 어제와 사랑할 내일 사이의 삶이다. 사랑이라면 둘 중 하나 아니던가. 저물지 않는 별이 되거나 내일이면 시들 꽃이거나. 어느 쪽이건 껴안아 줘야지. 더하거나 뺄 것이 없는 삶이다. 오직 자신으로만 나눌 수 있는 삶이다.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삶이다. 하루살이처럼 자유롭고 한해살이 풀꽃처럼 아름다운 삶이다. 나는 지금의 이름을 짓는 사람이다. 지금을 기쁨으로 삼는 사람이다. 1/1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 수입은 줄었지만 나로 가득 찬 삶을 산다. 소유 대신 향유하는 매일을 산다. 머리카락 한 줌 잘라도 하루가 가벼워지는데 욕심을 버린 삶의 경쾌함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