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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ongplate Apr 15. 2021

서른에는 열심히 살지 않기로 함

서른이 되면 생기는 일 01






서른에는 열심히 살지 않기로 함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내가 어릴 때 유독 유행 아닌 유행을 했었던가, 그 영향인지 그래야만 사람답게 사는 건 줄 알았다. 죽어서 회자되는 게 나 살아생전의 쓸모는 아닌데도, 가죽을 남길 도리는 없어서 선택지는 그뿐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뭔가 이름을 남기는 일이 하고 싶었다. 이름을 남길 만한 일들이면 그것이 보람과 직결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림을 못 그리지만 화가가 되면 그럴까 싶었고, 영상에는 관심이 없지만 영화를 배우면 그럴까 싶었고, 테레비는 바보 상자이지만 방송국에서 일하면 그럴까 싶었고, 일 년에 책은 손에 꼽히게 읽지만 책을 만들면 그럴까 싶었다.


그럴까 싶은 것들은 그만큼의 확신과 노력대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더이상 이름을 남길 구석 따위가 남아있지 않은 탓이었다. 마음이 참 급했다.


대충 서른을 목전에 두고 부랴부랴 남은 재산을 털어서 12개월로 수강료를 나눠 긁은 다음에,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면서 또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웠다. 다행히도 처음 의도대로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이번 생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알량한 과오는 그만 부리기로 했다.


스물한살인가, 나는 내가 서른이면 한국 땅을 떠나 먼 타지에서 외롭지만 멋있고 차갑지만 다정한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다들 근사한 꿈 하나씩은 품고 있길래 나도 그렇게 했다. '멋진 서른의 나'에 심취했던 스물한살을 원망할 생각은 없다. 그땐 그게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일이었고, 서른이 되면 자동으로 무언가 쯤은 될 거라는 희망이 사방에서 주입됐으니 그 어린것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서른을 채워 살아서야 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지혜를 얻었다. 대게 나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달리고 불행했다. 워커홀릭은 생에 단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대한 미루다 용하게도 데드라인에 맞추는 게 대충 내 단점이자 장점인데, 그것을 자기소개서에 쓸 수는 없었다. 늦장 부리지만 결코 늦지는 않아요(웃음웃음). 아무 인사담당자가 들어도 기겁할 일이다. 서른의 장래희망은 불로소득자다. 적지 못할 것들만 잔뜩 생겨났다.


더이상 직업적 성공에 목매달지 않는 것, '열심히 하는 척'하는 나에 빠지지 않는 것, 꿈을 잃는 것 등등이 내 2년 동안의 서른으로서의 목표다. 한번도 열심히 한 적 없으면서, 또 그것이 체질도 아니면서 어디 한번 그래볼까 하느라 그간 지쳤던 나도 좀 쉬어가라고. 금요일에는 뭘 사먹을까, 오늘은 적당히 일 했으니 나에게 선물을 줘야 해. 그런 의미없는 날들로 겨우겨우 살아가자고. 없는 여유를 끌어다 쓰고, 끝내 남는 것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에 감사할 줄 앎을 배우자. 그거면 괜찮은 걸로 하자. 또 이렇게 거창해지는 것을 방지하자.



서른이 된다고, 못난 내가 하루아침에 근사해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까먹고 못 사서 로또도 안 맞는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대동소이하고 오히려 몇몇 개는 과거의 내가 더 나은 부분도 있다. 갈수록 잘하는 게 줄어든다. 신체 기능이 그렇게 작동하더라.


서른이 되면 내년에는 서른 하나가 된다. 예를 들면, 그런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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