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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ㅏㄹ Sep 16. 2022

장인어른이 그러셨을 수밖에 없던 이유

순풍 산부인과

장인어른이 그러셨을 수밖에 없던 이유

 

요즘 들어 과거 여행에 심취해 있는 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24년 전인 1998년으로 되돌아가 보려 한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타임리프를 하고 싶게 만드는 걸까? 그것은 바로 한국 레전드 시트콤 대단원의 서막을 알린 '순풍 산부인과'이다. 이와 더불어 나는 순풍 산부인과가 방영하던 시절의 '나'를 회고해보려고 한다.

 

나는 앞서 이 순풍 산부인과를 한국 레전드 시트콤 대단원의 서막을 알린 작품이라 기술했고, 당시 이 작품의 인기를 피부로 체감 한 세대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순풍 산부인과 이전에도 대한민국에 시트콤은 존재했다. 이제는 내게 프로그램 이름 정도만 기억에 남는 '오박사네 사람들'과 'LA 아리랑' 정도가 대표적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적어 내려가는 도중 문득 두 시트콤의 방영 시기가 궁금해져 나는 N 포털 검색창에 키보드를 두드려 본다.

 

먼저 오박사네 사람들은 1993년 2월 18일에 처음 전파를 타게 되었다. 1993년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 아니 그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 아무튼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년도이며, 2월 18일은 내 생일이다. 갑자기 이 시트콤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크크.. 오박사네 사람들과는 유의미한 차이로 LA 아리랑은 제법 기억에 남는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방영을 한 덕분일까? 미국을 배경으로 올로케이션 촬영을 한 미국 이민자들의 우당탕탕 일상을 담은 에피소드들이 듬성듬성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이 두 작품 모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트콤으로 각인되지는 못 했다. 두 시트콤의 방영 시기를 모두 합쳐도 순풍 산부인과 한 작품에 미치지 못하기도 한다.


 

자 이제 순풍 산부인과로 가보도록 하자. 해당 작품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약 3년의 방영 기간 동안 총 700부작에 가까운 회차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순풍 산부인과의 방영 기간 동안 나에게는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1998년도에 나는 학교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나이와 취향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나는 하교 후 친구들과 어우러져 동네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골목대장이자 만화, 드라마, 가요 프로그램 그리고 시트콤 시청을 즐겨하던 흔한 초등학생이었다. 그러나 불과 1년 남짓한 사이 내 인생에 큰 변화가 들이닥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나름 멋스럽게 길렀던 유승준 표 앞머리 더듬이를 잘라야만 했고,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염색해주신 갈색의 머리는 다시 태초의 것으로 새카맣게 탈 바꿈 되었다. 등굣길 코디 또한 소매는 손등 반을 가리고, 바지 기장은 신발을 덮을 정도로 엉성한 핏의 교복은 마치 남의 옷을 뺏어 입기라도 한 듯 나의 작고 마른 몸을 가려주었다.

 

세기말이라 불리던 1999년도에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찾아오게 된 취향의 변화였던 것 같다. 좋아하던 인기 가수의 노래와 춤을 통째로 달달 외우기도 했던 가요는 어느샌가 내 귓가에 맴돌지 않았으며, TV에 방영되는 만화들은 전부 유치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시트콤 또한 내게 서서히 그러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순풍 산부인과의 결말을 알지 못한다. 돌이켜 보니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1998년도까지만 시청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말인즉슨 나는 이 인기 프로그램의 에피소드를 고작 1/3 정도만 시청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유튜브를 통해 정주행하고 있는 순풍 산부인과가 내게는 너무나도 새롭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24년 전 내가 보았던 순풍 산부인과는 이렇게 기억된다.

 

가족, 동료, 친구 가림 없이 무조건적인 복종을 바라며, 툭하면 버럭하고 불호령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가부장 오지명 할아버지. 그러한 남편의 눈치를 보며 하루가 멀다 하고 혼이 나는 현모양처 선우용녀 할머니. 무능력하고 남에게 빌붙어 무시만 당하는 캐릭터이나 딸과 아내에게는 한 없이 다정다감한 로맨티시스트 박영규 아저씨. 그 외 각기 다른 매력으로 시트콤 내 주조연을 넘나드는 순풍 산부인과의 4 자매(박미선, 이태란, 김소연, 송혜교)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기억은 대략 이러하다. 그리고 지금 300회가량의 분량을 정주행 한 나는 과거 초등학생의 나와는 사뭇 다른 감정으로 이 시트콤을 감상하고 있다. 30대 중반의 눈에는 당시 느꼈던 캐릭터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기 일수이다. 


시대적 배경의 이유도 있겠지만 분노조절 장애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던 오지명 할아버지는 상상 이상으로 따듯한 마음과 다소 소심한 성격으로 형성된 가정적인 캐릭터였다. 물론 극 중에서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는 불 같이 버럭! 하고 혼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돌아서서 본인이 너무 심하지는 않았는지 자책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며, 가족들을 돌보는 것에 있어서 진심을 다 하는 멋진 가장이었다.

 

그렇다면, 극 중에서 오지명과 가장 많은 대립을 연출하는 아내 선우용녀와 사위 박영규는 어떠한가? 이들 역시 과거의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선우용녀 할머니는 특유의 백치미로 크고 작은 웃음을 선보이며,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맑고 순박한 소녀 이미지이다. 그래서일까? 병원장인 남편의 바쁜 업무로 인해 약속이 어겨지면 여지없이 토라져버린다.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물론 시트콤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캐릭터들의 성격이 중간 없이 극단적 표현되는 것은 나도 알고 이해한다. 그래서 시트콤을 거듭 시청하다 보면 오지명 할아버지가 보살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순풍 산부인과에는 두 명의 보살이 존재하는데 그 유이한 인물이 바로 오지명과 극 중 권 작가로 나오는 권오중이다.  


 

사위 박영규는 매 회차마다 레전드 분량을 뽑아낸다. 아내인 박미선과 딸 미달이 에게는 한없이 다정 다감한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집 밖에서는 무능력한 학원 강사로 나오는데, 한 에피소드를 예로 들어보자면 본인 강의에 수강 신청 한 학생의 수가 미달되어 다른 반과 합반되는 굴욕을 맛보는가 하면, 뻔질나게 드나드는 의찬이네 가족에게는 ‘냉장고 귀신’으로 통하며 반기는 이 하나 없는 실정이다. 과거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보았던 박영규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비슷하게 해석이 되는 캐릭터였던 것이다. 얄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이는 배우가 연기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는 증거인 것 같다. 90년대 말 박영규의 ‘아 장인어른 진짜 왜 그러세요 진짜’라는 극 중 대사가 큰 붐을 일으켰다. 그때만 해도 어린 나의 눈에는 왜 저 할아버지는 착한 사위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싶었는데 장인어른이 왜 그러셨는지 이제는 알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2022년에 다시 꺼내보는 1998년의 가족은 참으로 이상적이고 화목한 가정으로 표현된다. 물론 당시에 모든 가족들이 TV에 나오는 역할극처럼 화목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통용되었던 것은 이 시절이 마지막 세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예전 영상, 음악을 들으면 단순히 재미를 쫓고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은 느낌에 늘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 유치하지만 나에게 시간 여행 능력이 생긴다면 다시 한번 되돌아가고 싶은 90년대를 추억하며 나의 첫 글에 마침표를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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