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지원 연대기 3: 서류 준비

당신들이 어떤 서류를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준비해야 하는 현실

by 김우성

지난번에는 박사 과정 지원에서 필요한 서류 중 어떻게 보면 가장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리면 추천서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다른 중요한 필요 서류가 무엇인지 알려드리고, 제가 해당 서류를 준비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뻔한 내용일 수 있겠지만, 읽다 보면 생각보다 뻔하지 않은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박사 과정 자리를 알아본 12월에는 저 역시 전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서류가 제출 서류 목록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0. 고등학교 성적표와 졸업 증명서: NO JOKE

도대체 박사 과정을 지원하는데 왜 고등학교 졸업 증명서와 성적표가 필요한지 저도 참 궁금했습니다만, 독일 일부 대학을 지원할 때 이 서류를 정말 요구했습니다. 한국에서 졸업했기 때문에 영문으로 된 서류가 있는지 잘 모르겠고, 한국과 독일의 교육 시스템이 많이 다른데, 정말 이게 필요하냐고 대학에 문의했지만, 대학에서는 정말 필요하다고 답하더군요. 제 모교에 문의한 결과 영문으로 성적표와 졸업 증명서 발급은 가능하지만, 이것을 국제 우편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는 어렵다고 했고 (코로나 19 때문이 아닙니다. 그냥 제 모교의 방침이었습니다), 결국 지금은 이사 가서 제 모교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사시는 부모님이 가족관계 증명서를 들고 학교에 찾아가셔서 제 서류를 받으신 다음 우선은 스캔한 파일을 저에게 메일로 보내주시는 방식으로 사본을 확보했습니다. 제가 지원했던 나라 중에서는 지금까지는 독일에서만 이런 요구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고등학교 관련 서류가 일반적인 요구사항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유비무환이니 미리 필요 서류 목록을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1. 학부 과정 관련 서류: 졸업장(졸업 증명서)과 학부 성적표 + 졸업 논문

박사 과정 지원하시는 분이라면 국내든, 국외든 최소한 학부는 졸업하신 상태로 지원하실 것입니다. 물론 유럽 사회과학 분야 기준으로는 대부분 분야에서 석사 학위 없이 (곧 학위를 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경우는 학위가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지원할 수 없지만, 2년 석사 과정을 반드시 마쳐야만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박사 지원에서 학부 과정의 성적이나 코스웍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대학교의 관련 전공을 졸업하고, 학부 학점이 좋다면 당연히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석사 과정에서 들었던 수업과 성적, 졸업 논문에 비하면 그 중요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CV와 Motivation Letter에 적는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증빙서류가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석사 과정 준비를 할 때에는 압인이나 직인이 찍혀 있어야 하는 문제 때문에 꽤 고생했지만, 제가 지금까지 지원해 본 결과 그냥 온라인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사본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합격 후에는 제대로 된 서류를 요구하겠으나, 인터뷰 요청 단계에서는 그냥 아무 복사본이나 유효하다고 명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시간이 촉박할 경우 국제 우편으로 원본을 받으려고 고생하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국문으로 되어 있는 서류는 해당 국가의 언어나 영어로 번역하셔야 합니다. 역시 이 단계에서 처음 서류 제출 단계에서는 공증까지는 필요 없고, 나중에 최종 합격을 하게 되면 공증이 필요하다고 안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공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확실하지 않은 점은 무조건 메일로 사전에 문의해야 합니다.


학부 졸업 논문도 있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역시 국문으로 된 것은 곤란하고, 최소한 번역을 해주셔야겠죠. 처음부터 영문으로 작성하신 것이라면 더 좋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학부 졸업 논문이 두 편인데 (복수 전공을 했고, 모든 전공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졸업 논문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두 편 다 국문이고, 제가 따로 번역해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전 학교의 특수한 커리큘럼 덕에 이미 학위 논문이 하나 있기 때문에 학부 논문을 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학년 말에 석사 학위 논문을 작성하시고, 따로 퍼블리케이션 이력이 없는 분이라면 시간 여유가 있으실 때 학부 졸업 논문이라도 일단 번역해 놓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2. 석사 과정 관련 서류: (최신) 성적표 + 학위 논문 + Writing sample

이미 졸업한 상황이라면 모든 이수 내역과 성적이 기재된 성적표를, 아직 졸업하기 전에 지원하는 경우라면 현재까지 이수한 내역과 성적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이수할 내역이 나오는 서류도 좋습니다. 특히 해당 과목이 자신의 강점을 강조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과목이라면 이 방법을 추천해 드립니다. 학위 논문은 졸업하신 경우, 저처럼 2년 과정이지만 학위 논문을 매 학년 쓰는 경우 디펜스까지 마쳐서 승인된 논문의 사본을 제출하시면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본 파일을 따로 내고, 포털에다가 초록(abstract) 제출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저는 영어로 진행하는 박사과정만 지원하기 때문에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로 작성된 논문 처리 기준에 대해서는 번역이 필요하다는 정도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유럽에서 다른 언어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이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위 논문이 empricial paper이며, 통계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을 경우 R 코드 파일이나 STATA do-file 제출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STATA는 경제학 관련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 통계 분석 프로그램이며, do file은 커맨드를 모아 놓은 코드 파일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이, 지난 석사 논문을 작성하면서 남겼던 do file을 어디에 저장했는지 잊어버려 한참 다시 찾아봐야 했고, 남이 제 코딩 기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하느라 반나절 정도를 투자해야 했습니다. 이 점을 미리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더 "예쁘게" 코딩을 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확인한 바로는 제 파일을 인터뷰어가 직접 읽어봤고, 이에 대한 간단한 피드백도 해주었습니다. 형식적으로 제출하는 파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적지 않은 대학에서 Motivaton letter나 Proposal과는 별도로 Academic writing sample을 요구합니다. 학위 논문의 일부를 낼 수도 있고, 작성 중인 학위 논문 초고 중 일부를 낼 수도 있으며, 직접 한 편의 에세이를 써서 낼 수도 있지만, 이미 수강했던 과목의 텀페이퍼나 과제 중 일정 분량을 만족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자신의 지원 전공과 관련성이 높은 과제의 전부, 혹은 일부를 제출하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해 보입니다. 저는 주로 A를 받은 페이퍼 중 관련성이 높아 보이는 과제를 분량 제한에 맞게 편집해서 올렸습니다. 꼭 A 혹은 A에 해당하는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페이퍼를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시간 여유가 있다면, 예전에 했던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원안을 보완한 다음 그 글을 내셔도 됩니다. 지원자가 영어로 학술 글쓰기를 잘할 수 있고, 해당 분야에 충분한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실 수 있는 글이라면 충분합니다. 해당 글의 레퍼런싱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는 한, 널리 통용되는 방식 (사회과학에서는 APA나 하버드 방식 등)을 적용하시면 되겠습니다.


3. 전형 맞춤 서류: CV, Motivational Letter/SOP/Personal Letter, Proposal

각 전형에 따라 요구 기준이 조금씩 다르고, 이 서류들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포스팅에서 다루어야 할 것 같으므로 이런 서류가 필요하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4. 각종 시험 관련 서류: GRE, GMAT, TOEFL, IELTS 등등

영어로 학사 혹은 석사 학위 과정을 공부하셨다면 한국인이라고 할지라도 영어 시험 제출이 면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슬로 대학교에서는 제가 스웨덴에서 영어로 된 석사 학위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니 영어 성적 증빙이 필요 없다고 답을 주기도 했습니다. GRE나 GMAT의 경우 경영/경제 계열에서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이를 요구하는 대학이 더 적습니다. 시험 응시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자신이 이 성적을 요구하는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면 굳이 응시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엘츠와 토플 중 "더 유리한" 시험이 있는지에 대해서, 박사과정 지원 단계에서는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영어 성적이 기준을 넘는다면 그다음부터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고, 대부분의 대학은 자신들이 인정하는 어학 시험의 목록을 명시하고 있으며, 그 목록에 포함되는 서류는 모두 동등하게 인정받습니다. 다만 시험 일정 등을 고려할 때, 개인적 선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험 점수가 만료되지 않았는지 확인해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ETS 계열 시험의 경우 해당 학교로 성적 리포팅을 해 주어야 한다는 점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언어 자격시험 점수를 요구하는 전형도 있겠지만, 저는 영어만 제대로 구사할 수 있고, 다른 언어를 자격 요건으로 정한 전형에는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 A 언어 구사 능력이 어드밴티지"라고 설명한 전형에 지원한다면 해당 언어 자격증을 제출하시는 것이 당연히 유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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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위 사진에 나온 자격 요건 중 "She or he must be able to work and write in English and in French. Competency in an Asian language (Chinese or Thai) will be greatly appreciated."라는 조건이 있으므로, 이 경우 프랑스어 구사력은 필수 요건으로, 중국어나 태국어 구사 능력은 어드밴티지로 작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는 프랑스어를 전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 전형에 지원하지 않았지만요.


5. 추천서

추천서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자세하게 설명해드렸습니다. 해당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6. 기타

석사 과정에서 박사로 넘어가는 사람 중에서 저널 퍼블리케이션 실적이 있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만약 있다면 큰 이점으로 작용할 테니 첨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저널 퍼블리케이션 이력이 필요조건은 아닙니다. 이력이 없어도 박사 과정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특히 유럽 사회과학 분야 대부분의 석사 과정은 3년 학부 과정의 심화 과정으로서 존재하며, 반드시 박사 진학을 목표로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학생이 특정 연구 집단에 소속되어서 많은 시간 연구에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거꾸로, 석사 과정 코스워크 점수가 좋지 않다면, 그리고 학위 논문의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면 저널 퍼블리케이션 실적이 합격을 보장하리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상으로 제가 직접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관찰한 바를 바탕으로, 제 전공을 비롯한 유럽 사회과학 분야 박사 지원에서 여러분이 준비하셔야 하는 서류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혹시 이 범위를 뛰어넘는 다른 요청사항을 준비하셨던 경험이 있는 독자분이라면 언제든지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연대기 내용과 마찬가지로 이 내용은 언제든지 업데이트가 가능합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제 코스워크가 마무리되고 논문 작성만 주로 하다 보니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글로 남길 여유가 조금 더 생긴 것 같습니다. 곧 이번 글에서 담지 못한 내용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 과정 연대기는 제가 어떻게 마지막 학기를 보냈는지 스스로에게 남기는 기록임과 동시에,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어권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소한 유럽 여러 대학/연구소로 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예상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드리고자 시작했습니다. 모든 내용이 반드시 시간 순서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되돌아보면 먼저 신경 쓰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남는 것들이 있고, 그런 내용들을 먼저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여정에서 다시 한번 느낀 바이지만, 유럽에서 박사 과정 이상을 공부하시는 한국인의 수는 석사 과정 학생보다 훨씬 적습니다. 때문에, 일반화시키는 데에 명확한 한계가 존재할지라도, 제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분이 할 일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진: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도 티라미수는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와 같이 박사과정 준비로 바쁜 이탈리아 친구가 손수 만든 티라미수와, 코로나 19가 스웨덴을 휩쓸기 전 함께하는 저녁이 있었던 삶을 추억해봅니다.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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