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지원 연대기 4: CV

2년을, 혹은 6년을 한 장에 담기

by 김우성

지난번 글에서는 제 경험을 토대로 박사과정 지원에 필요한 서류 목록을 정리해보고, 준비 과정에서 미리 알아두시면 좋은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이번 글은 그 서류 중에서 이미 소개해드렸던, 그리고 지원자가 아니라 추천자가 직접 작성하는 추천서를 제외한 나머지 서류 준비 과정을 차례대로 다루는 첫 기획으로 CV 작성 시 고려할 사항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CV 전문가가 아니고, 제가 썼던 CV는 대부분 박사 지원, 혹은 석사 학위를 가지고 취직할 수 있는 연구직 지원 CV이기 때문에, 일반 기업에 지원하는 CV 작성법이 필요하신 분에게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분이라면 과감하게 더 좋은 자료를 찾아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또한, 제가 여기서 정리한 내용이 모두 다 제 머릿속에서 나온 내용은 아닙니다. 주변 사람에게 조언을 들었던 내용과 제가 찾아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고, 가능한 경우 더 참고하실 수 있는 출처를 남겼습니다.


1. 무엇을, 얼마나 넣어야 좋을까?


CV는 라틴어 curriculum vitae의 약자로 영어로는 "course of life"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에 암묵적으로 생략된 말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입사/입시에서 이력서를 낼 경우 모든 이야기를 담지 않듯이, 영문 CV 역시 관련성이 높은 내용만 담게 됩니다. 따라서 아카데믹 CV 역시 지원하려는 자리와 관련성이 높은 내용만 담으면 됩니다. 어떤 내용이 관련성이 높은지 공인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반적으로 박사 과정 지원을 할 경우 다음 내용은 꼭 들어가야 하거나,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제가 "넣으면 좋다"라든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아무리 아카데믹 CV라도, 일반적인 경우라면 박사 지원하는 학생의 CV가 두 쪽을 초과할 일이 거의 없기도 하고, 그 이상 쓰는 것이 딱히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원자가 몰릴 경우, 수십 명의 CV와 personal letter를 읽어야 하는데, 내용이 장황하다면 좋을 리 없겠죠.


0) 연구 관심사 (research interest): 기업에 내는 CV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내용이 바로 이 연구 관심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써 주시면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낸 대부분의 CV에는 같은 문장이 적혀있습니다.


"My primary research interests are in labour market integration of immigrants, population ageing and social inequalities."


다행히도 학교에서 들었던 수업이나 제가 썼던 과제와 논문이 이 내용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완전 다른 분야 (예를 들면 출산이나 가족 형성 관련 연구)에 지원한 경우 이 내용을 조금 고쳤습니다. 여러분도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조금씩 고쳐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학력: 석사와 학사 학위와 관련된 기본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박사 후보생이나 박사를 이미 받은 사람들은 석사와 학사 학위를 한 줄 정도로 적겠지만, 박사를 지원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피요한 내용은 담아서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위 논문 제목, 주요 수업, 세부 전공, 학위의 종류 등을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은 좋은 생각입니다. 교환학생/방문학생 이력이 있다면 이 내용도 넣으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A 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했는데, A 학교에 박사 과정을 지원하거나, A 학교는 아니더라도 A 학교가 속한 나라에 박사 지원을 한다면 교환학생 경험이 중요한 이력이 될 수 있습니다. 박사 과정에서 학업적인 문제 이외에 "적응 문제"를 겪는 학생이 적지 않기 때문에 평가자들도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적응 가능성이 높은 지원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때문에 이에 관련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요소입니다.


2 ) 경력(experience): 학계와 아주 관련이 없는 경력이라면, 부업으로 진행한 일이라면 쓰지 않거나, 간단하게만 쓰면 되겠지만 RA이라면 학부생 RA라고 하더라도 넣어 주시는 편이 좋고, 채용된 연구원이었다면 당연히 이 경력을 자세하게 써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석사 과정 중 TA를 했다면 이 경험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턴 경험도 관련성에 따라서 선택과 집중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3) Publication: 석사 과정 학생이 저널 투고를 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저널 투고 이력이 있다면, 설사 심사 중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이 점을 어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퍼블리케이션 이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위축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퍼블리케이션 이력이 반드시 요구되는 박사 과정 자리는 드물고, 좋은 학위 논문은 단독 연구이기 때문에 충분히 학술적 가치가 있는 연구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저널 투고가 아니더라도, 학회에서 abstract이나 poster session 참여한 이력도 마찬가지로 분량을 잘 안배하면서 추가하시면 되겠습니다.


4) 언어 능력, 프로그래밍 능력 등 (language and skills)

사회과학 분야라고 하더라도 요즘에는 각종 통계 프로그램 혹은, 일반적인 프로그래밍 능력이, 특히 양적 연구를 지향한다면 무조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언어 능력은, 물론 엄밀히 따지면 다다익선이겠습니다만, 영어로 진행하는 학위 과정에서는 영어 하나만 제대로 하면 다른 능력은 요구받지 않는 이상 당락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경제학 연관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답게 STATA가 주된 연구 도구입니다. 어떤 분은 R을, 어떤 분은 SPSS를, 어떤 분은 MATLAB을 "원픽"으로 꼽으실 수 있겠습니다. 프로그래밍 역량은 솔직하게 적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어학 능력에 비해 표준화되고 통일된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이 항목에서 어느 정도 "허세"를 부릴 수도 있겠지만, 책임지지 못할 내용은 쓰지 않는 것이 좋겠죠! 통계 프로그램 이외에도 질적 연구를 위해 사용하는 프로그램, GIS, 학술적 글쓰기 지원 프로그램은 LaTeX 역량 역시 플러스알파가 됩니다.


5) 수상 이력 / 장학금 수혜 이력: 자세하게 설명해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중요한 내용만 넣으시면 됩니다. 석사 과정에서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으셨거나, 공모전 등에서 전공 관련 상을 받으셨다면 중요도는 다른 항목보다 높지 않더라도 넣는 것을 고려하실 수 있습니다.


6) 기타: 넣을지 말지 고민하실만한 내용이 있을 겁니다. 봉사활동, 리더십 관련 이력 (예를 들면 전공 대표나 학생 대표 경험)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정답을 드리긴 어렵지만, 다른 중요한 내용을 이미 꽉꽉 채우셨다면 굳이 넣지 않아도 좋을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추가로, 저는 군 복무를 따로 항목을 만들어서 썼습니다. 제 이력에서 2년의 공백기가 있기 때문에, 최소한 이 공백기를 설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군 복무 경험이 여러분이 지원하는 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이 내용을 더 중요하게 언급하셔도 되겠습니다.


7) 레퍼런스

가끔 이력서 끝에다가 추천인 연락처를 n개 이상 포함하라고 요구하는 전형이 있습니다. 추천인의 타이틀, 근무처, 주소(사서함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정도를 넣어주시면 됩니다. 저의 1차 학위 논문 지도교수였던 Martin 교수님 인적사항으로 견본을 하나 남깁니다 (모든 내용은 다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내용이기 때문에 여기에 옮겨도 문제가 생기지는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Professor Martin Dribe
Professor at Department of Economic History
Lund University
Alfa1, Centre for Economic Demography, Box 188, SE-221 00, Lund, Sweden
Tel: +46 46 222 46 77
Email: martin.dribe@ekh.lu.se


개인적으로는 이메일과 전화로 소통할 것이 거의 100% 확실한 상황에서 왜 진짜 사서함 주소를 남겨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계의 고리타분한 전통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도 위에 쓴 주소를 지난번에 CV 작성하면서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2. 얼마나 "보기 좋아야" 할까?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구하실 수 있는 깔끔해 보이는 아무 탬플릿이나 사용하시면 됩니다. 워드로 작성하셔도 상관없고, LaTeX로 작성하신 다음 PDF로 변환하셔도 됩니다. 일부 전형은 온라인으로 CV 내용을 입력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직접 만드신 탬플릿도 보기에 깔끔하다면 상관이 없습니다. 폰트는 저는 국문의 "궁서체" 급의 진지함을 풍기는 Times New Roman 체를 사용했습니다만, 요구받기 전까지는 굳이 한 가지 폰트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독성이 낮은 서체를 사용하시는 모험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고정 비용이 가장 큰 서류

다른 서류에 비해서, CV는 처음에 공들여 잘 만들어 놓으면 그다음에는 아주 조금씩만 고치거나, 거의 고치지 않고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서류이기 때문이 "고정비용"이 가장 크고, 가변비용은 가장 낮은 서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교적 표준화되어있고, 분량이 짧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커리어 센터 혹은 다른 상담 기회를 통해 조언을 구하기도 가장 편한 서류입니다. 업데이트할 내용이 생기더라도 틀을 잡아놓으면 바로 업데이트만 하면 되니 박사 지원 여부가 확실하지 않더라도, 다른 분야에 제출할 CV를 작성할 때, 하나 더 만들어 놓고 나중에 활용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감만 잡으신다면, 가장 준비하기 편한 서류입니다.


글을 마치기 전에 제가 참고했던 링크를 몇 개 추가로 알려드립니다. 대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지만 그중에서 비교적 내용이 명확하게 정리된 것으로 추렸습니다.


박사 후보자 이상의 전문 연구자를 위한 아카데믹 CV 작성 가이드라인


FIndaPhD 관련링크


하버드대학교의 박사과정생을 위한 resume & cover letter 가이드 PDF 파일 링크


다음에도 다른 서류 준비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이번에도 짧지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 과정 연대기는 제가 어떻게 마지막 학기를 보냈는지 스스로에게 남기는 기록임과 동시에,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어권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소한 유럽 여러 대학/연구소로 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예상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드리고자 시작했습니다. 모든 내용이 반드시 시간 순서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되돌아보면 먼저 신경 쓰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남는 것들이 있고, 그런 내용들을 먼저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여정에서 다시 한번 느낀 바이지만, 유럽에서 박사 과정 이상을 공부하시는 한국인의 수는 석사 과정 학생보다 훨씬 적습니다. 때문에, 일반화시키는 데에 명확한 한계가 존재할지라도, 제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분이 할 일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진: 사람 만나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지난 크리스마스를 추억하며. 크리스마스 한정판 프린세스 케이크입니다.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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