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중요한 만큼 결과도 중요합니다
지난 글에서 저의 인터뷰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뷰를 잘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제는 인터뷰 이후에 합격/불합격 통보를 받았던 과정과 합격 통보를 받은 곳 중 한 곳을 선택하는 과정,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곳을 거절하는 과정에서 제가 공유하고 싶었던 지점들을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총 3번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첫 번째 인터뷰는 최종 탈락했고, 나머지 두 개 인터뷰에서는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경험상,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를 보건대 합격과 불합격의 이유를 듣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붙으면 붙은 대로 으레 마땅한 이유가 있겠거니 짐작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봤던 인터뷰는 조금 더 운이 좋아서 합격과 불합격한 경우 모두 자세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가장 자세한 피드백은 결과가 좋았던 두 번째 인터뷰 진행 교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 교수가 워낙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자신의 결정을 합격자에게조차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마음이 놓이는 경우였을 수도 있습니다.
잠깐 옆길로 새는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나이를 먹을수록 제 행동의 결과에만 책임을 질 뿐, 진솔한 피드백을 듣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뷰에서 나온 긍정적/부정적 피드백은 저에게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탈락한 표면적인 이유는 제가 들었던 수업이 과제에서 요구하는 방법론을 충분히 커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지도교수와 이 피드백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지 상담을 했는데, 지도교수 판단으로도 학과 커리큘럼 상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타당하게 들린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물론, 수업 시간에 다루지 않더라도 제가 첫 번째 학위논문 작성 시 해당 방법론을 이용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저에게 더 익숙한 방법론을 활용했었고, 이런 포지션에 지원할 줄은 몰랐습니다.
디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머지 두 개의 인터뷰에서 좋은 소식을 들었지만, 곧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엄청난 변동성이 제가 "거의 손에 쥔" 기회에 영향을 주는 일이 없도록 빨리 결정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둘 다 급여도 비슷했고, 상대적인 장단점이 명확해서 심사하듯 점수를 매긴다면 둘의 최종 점수가 엇비슷하게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보고, 지도교수를 비롯한 해당 분야 전문가, 그리고 가족과 상의한 끝에 스웨덴 수도에 위치한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이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결정을 내리면서 고민했던 지점을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혹시 그 과정이 정말로 궁금하시거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다면 이메일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수락 메일을 보낸 후, 제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일 중 하나인 "거절하기"만이 남았을 때, 저는 좀 더 센스 있게 거절하는 법을 알아보기 위해 구글과 유튜브에 검색까지 해보았습니다. 대학원보다는 신규 채용/이직이 더 일반적인 경우이기에, 오퍼를 거절하는 법에 관한 영상이 많이 있었는데, 지원자가 빚진 것은 전혀 없으므로 이유를 구구절절이 설명하거나, 미안해할 필요 없이 '쿨하게' 거절하면 그만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계는 일반적인 노동시장보다 좁고, 두 번째 인터뷰에서 저를 뽑은 교수가 스톡홀름대학교와도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운 좋게 알게 되었기에, 저는 그 교수가 제 합격 이유를 설명해주듯이 이메일이 아닌 스카이프 콜을 걸어서 거절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했습니다. 교수는 그런 저의 성의에 고마움을 표했고, 앞으로 연락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인연을 이어나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속으로는 진땀을 흘리면서 겨우 스카이프 콜을 끝낸 다음 든 생각은, "짧게 이메일로 통보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룰이 모든 인터뷰 경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수가 지원자에게 보여준 성의와 예의만큼 저도 최소한의 예의와, 상호 호혜적인 관계 유지의 의지를 밝힌 것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합격한 곳 중 한 곳을 고르는 것도 선택이지만, "이제 여기서 멈춰야지"라는 결정 역시 제가 내린 중요한 선택이었습니다. 대학마다 입시 시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한 번에 서류를 여러 장 쓰고, 답장을 기다리듯 좋은 소식을 기다릴 수 없었고, 대강 어느 시기에 어느 자리가 열린다는 소식을 운 좋게 알게 되면, 이미 합격 통보를 들은 순간에도, 결정을 최대한 미루면서 더 좋은 기회가 나오기를 기다리거나, 때로는 위험이 따르는 '더 좋은 자리'를 포기하고 손에 확실하게 쥔 '덜 좋은 자리'를 골라야 하는 순간도 옵니다. 한 교수는 본인이 박사 과정에 지원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30대 후반의 젊은 교수여서 그리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끊임없는 전쟁이고, 멈추어야 할 때를 모르면 진이 빠진다고 조언해주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원서 접수 과정을 마무리한 지 3개월 가까이 흐른 지금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아마 저는 얼마 못가 정말로 '번아웃' 상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상황 때문에 박사 과정 채용은 물론 일반적인 취업 준비 과정에서도 엄청난 불확실성과 전반적으로 위축된 노동시장이라는 두 산이 갑자기 솟아 나왔기 때문에, 모험을 계속하다가 심산이 지쳐 논문 마무리를 제대로 못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운이 좋게 저는 그 지경이 되기 전에 멈출 결심을 할 수 있었고, 당장 해야 할 일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극단적인 변수가 없더라도, 욕심은 대개 끝이 없으므로,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지혜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인터뷰 이후 선택을 내리는 과정에서 했던 생각, 들었던 소중한 이야기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이제 박사 과정 지원 전체를 되돌아보는 글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처음에 연대기를 시작할 때에도 9부작이나 10부작 정도가 적당할 것이라고 가늠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박사 과정 지원을 목표로 하지 않은 독자분에게는 지루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혹시 이 글이 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단 한 분에게라도 조금 도움이 된다면, 제가 쏟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자부합니다. 그럼, 마무리 글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박사 과정 연대기는 제가 어떻게 마지막 학기를 보냈는지 스스로에게 남기는 기록임과 동시에,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어권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소한 유럽 여러 대학/연구소로 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예상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드리고자 시작했습니다. 모든 내용이 반드시 시간 순서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되돌아보면 먼저 신경 쓰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남는 것들이 있고, 그런 내용들을 먼저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여정에서 다시 한번 느낀 바이지만, 유럽에서 박사 과정 이상을 공부하시는 한국인의 수는 석사 과정 학생보다 훨씬 적습니다. 때문에, 일반화시키는 데에 명확한 한계가 존재할지라도, 제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분이 할 일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커버 이미지: 2017년 교환학생 시절 하지 무렵에 찍은 스톡홀름대학교 Lappis 기숙사 풍경. 그때는 곧 이 풍경을 다시 볼 줄은 몰랐습니다. 출처: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