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지원 연대기: 마치며

난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

by 김우성

첫 글을 올릴 때는 결말을 알지 못했던 박사 과정 지원 연대기가 드디어 끝납니다. 수락 메일을 보낸 이후에는 학교에서 공식적인 서류를 받아 새롭게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거주 허가증을 신청하고, 9월에 있을 행사에 관련된 공지를 받고, 슬슬 연구 주제와 지도교수 팀을 구성할 준비를 하는, 새로운 시작의 첫 장이 시작되었습니다. 6월 중순의 저는 학위 논문 작업도 마치고 한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9월부터 새로 시작할 박사 여정에 관련된 메일을 받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지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IMG_7073.jpg 박사 인터뷰 전에 지원 동기에 관한 예상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남긴 메모.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 답변"이었습니다. 출처: 본인.


"왜 박사 공부를 하고 싶습니까? 어떤 주제에 특별히 관심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 저는 상대방이 제가 지원자로서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어 있다고 평가할 만큼의 답을 했지만, 10년, 혹은 20년 후의 제가 자신에게 "너는 그때 꼭 박사 공부를 계속해야만 했니?"라고 되물을 때 자신 있게 꺼낼 수 있는 답을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선택에는 일반적으로 후회와 책임, 그리고 그것이 얽히고설켜도 매일을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관성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겪어보지 않아도 박사과정 4년은 마라톤이 될 것만 같습니다. 현재 박사과정을 진행하는 사람들, 혹은 박사 학위 받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제가 아는 한, 마라톤 비유에 많이 공감하는 듯합니다.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하고, 약간의 행정 업무와 교육 업무를 하고. 이것이 매우 건조하고 간략하게 제가 4년 동안 해야 할 일을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좀 더 알차게, 그리고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할 지점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박사 학생은 물론, 박사 이후 전문 연구자의 삶을 사는 것은 일과 여가의 분리가, 일로 만나는 사람과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의 분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묘한 삶이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지만, 저는 최대한 저에게 투자하는 시간을 "직업으로서 학문을 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으로 나누어 볼 계획입니다. 비록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닐지라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고, 몸과 마음을 필요 이상으로 압박하지 않은 스웨덴의 박사 학생 양성 분위기는 이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에 꽤 좋은 조건입니다. 물론 이 조건 속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지금은 막연한 아이디어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4년 동안 정원을 가꾸거나 농사를 짓는 심정으로, 지금부터 꾸준히 실천할 계획을 세운다면 박사 과정을 마무리할 때에는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쌓여 있을 것입니다.


10대 후반의 저는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10년 전의 저는 "고등교육"의 첫 번째 관문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달렸고, 올해의 저는 고등교육의 마지막, 그리고 아마도 인생의 마지막 학위를 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 열심히 달렸습니다. 물론 계획을 잘 세운 다음에는,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일상은 "그냥 열심히 사는 삶"이 됩니다. 큰 계획을 이루기 위한 일상의 희생은, 어쩌면 매일매일 자신의 삶에 의미 부여를 하기보다는, 일정한 속도로 달리기 위해서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해야만 하는'일에 매진하는 형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 연구자로서 살아남는 것이 한국에서 연예인이 되기 위해 기획사에서 연습생 시절을 거치고 데뷔할 날만 기다리는 연습생의 삶과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에게 재능도 중요하지만, 오랜 수련을 성실하게 견딜 인내심과 성실함, 고비를 잘 넘기게 해 줄 강한 정신력 (흔히 말하는 '멘탈')이 없다면 자기가 원하는 길을 끝까지 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천재 가수, 천재 안무가, 천재 배우가 있듯이 학계에도 천재가 넘쳐나지만, 천재만 오래가는 것은 아니고, 천재만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이로운 기여를 하며 만족스러운 연구자의 삶은 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천재가 아닌 본인에게, "입시 공부만 엉덩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박사 과정 공부도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말은 최고의 격려인 동시에 무거운 현실입니다. 그러니 당장의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고3 때 지금 돌아보면 "다시는 그렇게 살 수 없다"라고 생각했던 삶을 1년 동안 묵묵히 견딘 만큼, 4년 동안 그 엇비슷한 무게를 견디면서 "학생"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마지막 장을 열고, 달려가자고 다짐해봅니다.


저는 그래서 2025년에 개인적으로 꼭 이루고 싶은 가장 큰 계획을 세워놓고, 큰 계획을 이루기 위해 세부 계획을 단계별로 세우고 있습니다. 제가 2025년에도 이 매체에 글을 쓰고, 5년 전에 세운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기쁜 마음으로 밝히고, 그 계획을 이루었다는 말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한정된 독자만을 위해 연재했던 박사 지원 연대기에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유럽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저와 비슷한 시기에 큰 결심을 하고 박사 공부를 시작하는 분에게는 우리 모두 원하는 결말을 보자는 힘찬 응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박사 과정에 도전하고 싶은 독자 분도 꼭 좋은 기회를 잡으시길 바랍니다.


"그래, 난 다 계획이 있었어"


라고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말할 그 날을 맞이할 때까지 말입니다.


이렇게 10개의 글로 이루어진, 제 브런치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매거진이 완결되었습니다. 룬드 생활을 정리하다 보면, 조만간 다른 매거진도 완결할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 나라에서 국문으로 글을 쓰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즐거움입니다. 즐거운 글쓰기에 꾸준한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고, 앞으로도 다른 재미있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박사 과정 연대기는 제가 어떻게 마지막 학기를 보냈는지 스스로에게 남기는 기록임과 동시에,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어권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소한 유럽 여러 대학/연구소로 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예상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드리고자 시작했습니다. 모든 내용이 반드시 시간 순서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되돌아보면 먼저 신경 쓰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남는 것들이 있고, 그런 내용들을 먼저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여정에서 다시 한번 느낀 바이지만, 유럽에서 박사 과정 이상을 공부하시는 한국인의 수는 석사 과정 학생보다 훨씬 적습니다. 때문에, 일반화시키는 데에 명확한 한계가 존재할지라도, 제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분이 할 일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커버 이미지: 룬드에서 유일하게 "서울"을 만나는 장소. 왜 하필 그 많은 도시 중 서울이 저기에 있을까요. 답을 찾지 못하고 이 도시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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