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대한 '북유럽식' 처방?
통계청의 지난 2월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2020년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저 수치를 경신했고, 연간 출생 수가 사망 수를 밑도는 인구 자연 감소가 시작되었다. 필자가 인구 통계에 관심을 처음 가진 것은 고등학교 사회 교과 시간이었을 텐데, 그때 배웠던 합계출산율 1.2 나 1.3 도 전례 없이 낮은 수치였지만, 내가 스웨덴 유학을 시작할 무렵 합계출산율은 1.0 미만으로 떨어졌고, 뚜렷한 반전 없이 우하향하는 중이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과 급격한 고령화 속도를 걱정하는 대부분 담론에서 주목하는 ‘모범 사례’는 북유럽, 그중에서도 스웨덴의 사례이다. 육아와 교육의 경제적 부담을 개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감당하고, 출산 휴가와 유급 육아 휴가가 잘 보장되는 모습, 남성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고 여성의 경력 단절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 등은 다양한 매체에서 이미 자주 소개되었다.
물론 이런 정책이 모두 출산율 제고를 위해 도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Andersson (2020)의 설명처럼,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를 보장하고, 성평등한 육아 정책을 추구하며, 육아와 교육 부담의 사회화(탈 가족화)를 추구했던 정책들이 결과적으로 출산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이 그동안 주류 해석으로 자리 잡았다.
출산율 상승이라는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모로 가든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처음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근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의 출산율 동향을 살펴보면, 이 질문이 생각보다 중요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북유럽 국가들이 ‘탄탄한 복지 정책과 성평등한 사회 문화적 분위기 때문에’ 현재 인구를 1세대 후 대체하는 수준의 출산율인 ‘대체 출산율’에 근접한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2010년 이후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의 출산율은 꾸준히 감소했다. 덴마크는 조금의 변동을 보였지만 2015년 이후 현재까지 꾸준한 감소 추세를 보인다. 본문에 첨부한 자료는 2019년까지이지만, 스톡홀름 인구학 유닛에서 내부적으로 도는 자료를 보면, 핀란드를 제외한 다른 나라는 2020년에 감소세를 이어갔다. 핀란드의 출산율 반등도 코로나 19로 인한 예외인지, 2019년에 저점을 찍은 것인지 아직 알기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북유럽 국가의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정책들에 큰 변화가 없었고, 2010년대에 북유럽 전반을 강타하는 외생적 충격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출산율 하락은 5개 국가에서 모두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는 개별 국가의 문제라기보다는 해당 지역 전반을 관통하는 수수께끼로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저출산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여러 국가의 역할 모델로 언급되었던 해당 국가들의 분명하고 지속적인 출산율 하락은 분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주제이다. 아직 그 원인에 관한 학계의 논의가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작년에서야 워킹 페이퍼나 연구 리포트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인구학 유닛과 핀란드의 인구학 연구학자 중 일부가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지난 2월에는 이와 관련해서 “What happened to Nordic fertility?”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중간에 연구 결과가 계속해서 나오겠지만, 확실한 결론이 정제된 형태로 나오려면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북유럽 복지 국가 모델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것을 한국 사회에서 적용하는 함의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정책 입안자/학생이라면,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북유럽에서 2010년대에 관찰된 출산율 변화의 원인이 무엇이었으며, 과연 이 나라들에서는 자국의 각종 사회 정책과 출산율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조금 더 세심하게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 저출산 문제를 논의할 때 북유럽 국가의 제도 세팅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물론 그중에서 여전히 유효한 주장들이 있겠지만, 북유럽식 제도가 한국 사회에서 당장 도입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도입하기만 하면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사뭇 위험할지도 모른다. 지난 10년간 노르딕 국가의 출산율 통계가 보여주는 그림은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여러 사람에게 무시하기 어려운 이상 신호를 보냈다.
[참고문헌]
*단신에서 직접 인용한 문헌 외에도 주제에 관해서 독자분들이 같이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문헌을 몇 개 가지고 왔습니다. 참고문헌 양식은 APA 7th edition을 따릅니다.
Andersson, G. (2020). A Review of Policies and Practices Related to the “Highest-Low” Fertility of Sweden: A 2020 update. 455231 Bytes. https://doi.org/10.17045/STHLMUNI.13217516.V2
Campisi, N., Kulu, H., Mikolai, J., Klüsener, S., & Myrskylä, M. (2020). A spatial perspective on the Nordic fertility decline: The role of economic and social uncertainty in fertility trends (WP-2020-036; 0 ed., p. WP-2020-036). Max Planck Institute for Demographic Research. https://doi.org/10.4054/MPIDR-WP-2020-036
Hellstrand, J., Nisén, J., Miranda, V., Fallesen, P., Dommermuth, L., & Myrskylä, M. (2020). Not just later, but fewer: Novel trends in cohort fertility in the Nordic countries (WP-2020-007; 0 ed., p. WP-2020-007). Max Planck Institute for Demographic Research. https://doi.org/10.4054/MPIDR-WP-2020-007
Jalovaara, M., Andersson, L., & Miettinen, A. (2020). Parity disparity: Educational differences in Nordic fertility across parities and number of reproductive partners [Preprint]. SocArXiv. https://doi.org/10.31235/osf.io/sjdt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