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중독자가 제 직업입니다만..
나는 그림책을 만든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가끔은
내가 만든 책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어른이 쓴…이걸 아이가 좋아할까?"
그리고 곧장 따라오는 다음 생각은
"솔직히, 내가 아이라면 이건 안 읽었을지도 몰라."
어느 날은 아이라면 좋아하는 토끼가 주인공인 책이었다.
눈도 크고 귀도 길고, 배경도 파스텔톤.
페이지마다 ‘사랑’과 ‘희망’이 번쩍인다.
나쁘지 않다. 그런데…이건
너무 착하다.
나는 유년 시절, 그런 착한 이야기를
중간에 덮고 딴짓하던 아이다.
줄거리보단 모서리 뜯는 재미에 빠졌고,
해피엔딩보단 악당의 멋진 최후에 꽂혔다.
그런 내가, 지금은 ‘착한 이야기’를
열심히 그리고, 쓰고, 수정하고, 또 다듬고 있다.
그것도 매우 진심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내가 만든 책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이건 아이의 책이 아니라, 어른의 바람이 담긴 책 같아."
그림책은 짧지만, 그 안엔 욕망이 가득하다.
‘바르게 자라줬으면’, ‘다치지 않았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이 모든 바람은, 사실
그림책을 만든 어른이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아이에게 위로를 건네려다
결국은 자기 상처를 토닥이는 식이다.
그러니까,
내가 만든 책을 내가 아이라면 안 읽었을지도 모른다는 건,
그 책이 진짜 어린이보다 나를 위해 쓰인 책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책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어른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며 만든 책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된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진실된 걸 잘 알아본다.
모범답안 말고, 진짜 마음을.
그래서 요즘은 좀 달라졌다.
책을 완성하고 나면 마지막엔 꼭 이 질문을 한다.
“내가 아이라면, 이 책 어디까지 읽을까?”
“그래도 이 장면은 좋을까?”
“이 그림은 재밌을까, 심심할까?”
그 질문에 '응, 재밌어!' 하고 웃는 내가 있다면
그 책은 비로소,
조금은 어린이를 닮은 책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