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다가 하루가 갔다

by 오레오오

오늘 하루의 생산성:

글 0자, 이름 후보 87개.

결국 아직도 결정 못 했다.

그림책 캐릭터 하나 만들었는데,

생긴 건 곰돌이고, 성격은 약간 겁쟁이인데 눈은 반짝인다.

근데 이름이 안 떠오른다.

곰돌이니까...

몽실이? → 너무 포근해. 겁쟁이라는 게 안 느껴짐.

두두? → 너무 세 살 느낌.

바루? → 이건 약간 교훈 줄 것 같고…

쭈니? → 내 조카 이름이랑 겹쳐서 탈락.

곰곰이? → 이미 백 번 나왔다. 회의실에서.

사실 그림책에서 이름은 그냥 "이름"이 아니다.

그 이름 하나에 성격이 들어가고, 표정이 따라오고, 결국은 이야기의 방향까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용용이’라면 불을 뿜어야 할 것 같고,

‘푸푸’라면 방귀라도 뀌어야 하고,

‘모모’라면 뭔가 비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이름 하나를 고를 때

단순히 "예쁘고 귀엽다"가 아니라,

“얘가 왜 이 이름을 갖고 태어났는가?”

까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이건

캐릭터를 낳는 일이다.

그리고 부모의 가장 큰 고민은

늘 이름부터 시작된다.

작명을 하다 보면

내 머리는 어느새 온갖 단어의 조합 공장으로 변한다.

소리의 느낌 (둥글둥글한지, 딱딱한지)

받침이 있는지 (쓸 때 예쁜지)

외국어 느낌인지

아이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지

브랜드로 검색했을 때 겹치진 않는지(!)




이런 걸 다 따지다가

결국 내가 만든 리스트:


찌니 / 멍키 / 뇸뇸 / 리리 / 타루 / 웅이 / 토포 / 꾸요 / 별 뿅 / 조조


... 그리고 전부 엎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험난한 작명 과정이

어느 순간 되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이름을 붙여주고 나면,

그 애가 진짜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거든.

말 걸고, 표정 붙이고, 마음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야기는 굴러간다.

이름 하나에서,

세상이 시작된다.

오늘도 하루가 갔다.

이름 하나 제대로 못 지었는데,

그 덕분에

내 머릿속엔 캐릭터가 훌쩍 자라 버렸다.

어쩌면,

이름은 그저 마법의 주문일지도 모른다.

그걸 부르는 순간

이야기가 태어나기 시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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