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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완 Mar 30. 2022

말하지 않았어도 부모님에게 배운 것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5남매는 서로 떨어져 살다 보니 명절과 부모님 생신 때, 가족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 외에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상황인데 코로나로 인해 2년 동안은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 명절에도 차례대로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했고 부모님과 동생들 모두 Zoom으로 얼굴을 보았었다.


친정 부모님을 찾아뵐 때면 두 분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드리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밖에 나가는 것이 안전하지 않아 거의 요리를 해 드린다.

내가 차린 음식을 맛있게 드시며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자식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돌아가며 부모님을 찾아와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경기도와 서울에 살고 있는 동생들은 부모님이 드시고 싶은 음식을 배달앱을 통해 배달시켜주는데 맛있게 먹었다며

 '아빠와 엄마는 참 복이 많다'는 말씀을 듣고

'우리 엄마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그렇게 하셨잖아, 엄마 아빠는 정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잘하셨던 같아'라고 말하며 내 어린 시절 부모님 모습을 떠올렸다.



친정아버지는 6남매 중에 막내아들이다. 

고모님 세 분과 큰 아버지 두 분이 계시는데 큰아버지 두 분은 모두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막내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친정아버지께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셨다.

정읍에서 양계장을 하시던 아버지가 늦은 나이에 공무원 시험을 봐서 합격한 후 전주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우리 가족이 잘 수 있는 방은커녕

'숟가락 하나 없이 이사 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삿짐 없이 전주로 이사와 집에 아닌 시설을 빌려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 큰아버지 댁에 계시면 다음에 모시러 오겠다고 했음에도 막내아들 며느리와 살고 싶다고 고집하셔서 가난하고 힘든 시간을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때, 특별히 좋은 반찬이 아니어도 부모님은 좀 더 나은 반찬을 조부모님에게 먼저 드리고 나이 드신 조부모님 때문에 일하러 나가지 못하는 엄마는 재봉틀로 하얀 장갑을 만들거나 우산 만드는 부업을 하면서 하얀 쌀밥을 해드리려고 애썼던 모습, 조부모님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하셨다는 모습들이 생각이 나는데, 그중에서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좋은 기억은


팔순이 넘은 조부모님이 아파서 누워계실 때의 일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부모님에게 냄새가 나면 손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싫어할까 봐 매일같이 목욕을 해드렸을까 싶다.  

우리가 사는 집이 산꼭대기라서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물을 사용하지 않는 밤 시간에 물을 길어다 먹어야 했던 곳이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이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큰 통에 받았다가 뜨거운 볕에 놓으면 따뜻하게 데워지는데 아버지가 퇴근을 하시면 그 물로 조부모님 목욕을 시켜주었을 때 개운하다며 기분 좋아하시던 모습, 또한 조부모님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느끼는 날은 조부모님 옆에서 주무시며 숨소리가 들리는지 잠을 주무시지 확인하며 돌보시던 부모님의 모습은 존경의 마음을 갖게 하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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