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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완 May 11. 2022

위로는 그냥 함께 있어주는 것

얼마 전에 딸을 사고로 잃은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딸이 사고를 당한 것이 내 잘못이 아님에도 창피해서 밖에 나가는 것도 두렵고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어쩌다가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위로를 해 준다고 여러 가지 말을 하는데 위로가 되기보다 더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밖에 나가는 것을 줄이게 되었다며 울먹였다.

 '어쩐다냐, 어쩐다냐'를 연발하며 혀를 차는 사람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며 억지로 뭐라도 먹이려고 하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걱정하고 염려해서 하는 말인 줄은 아는데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아무 말 없이 함께 해주거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어주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26년 전 둘째 아들 교통사고 당시를 떠올렸다.

5살인 아들이 25톤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오랜 기간 병원생활을 할 때이다.

어린아이가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걱정되고 안쓰러운 마음에 다른 사람들은 물어본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 많이 다쳤데요' 쯧쯧, 

'이렇게 많이 다쳐서 어떻게 하니?'

'아이고 불쌍해라, 어린것이'

'몇 살이니?'

'어린것이 안되었네'

'걸을 수는 있데요?' 등

물어보는 사람은 각자 한 사람이지만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들이 물어보게 되면 같은 말을 하루에도 수없이 들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이렇게 우는 엄마를 바라보는 것이 싫어 아들은 밖에도 나가지 않으려 하고 사람들이 병문안 오는 것도 외면하게 되었다.

아들이 걱정되어 물어보는 것이리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대꾸를 해 주었지만 병원생활을 오래 하면서 나도 지쳐갈 때는 묻는 말에 대꾸하지 않고 지나게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큰 사고를 경험하면 거쳐야 하는 감정의 단계가 있다는데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처음은 부인의 단계이다.

아들이 사고가 나서 날마다 병원에 있으며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치료를 하는 과정에 있음에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어지지 않았지만 모든 상황을 감당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분노의 단계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화가 났다'  남편과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에 이해가 되지 않아 힘들었다

세 번째는 우울의 단계이다.

아들이 다친 곳을 치료해 가는 과정에 어린 아들이 치료 중에 아파서 소리치며 고통스러운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아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 자책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은 수용의 단계이다.

아들에게 사고 난 상황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치료를 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을 경험하였다.


어떤 일을 당하고 나면 다른 사람의 위로를 통해 조금 더 견딜 수는 있지만 사고의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의 과정은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난 한참 후

남편과 얘기를 나누는 중에 우연히 둘째 아들 병원 생활할 때 얘기를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걱정해서 묻는 말과 위로의 말들이 오히려 더 힘들고 상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느낀 것을 남편도 동일하게 느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우리 부부는 지인들이 큰 일이나 사고를 당하게 되었을 때

상황에 대해 묻고 위로해 주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함께 있어주려는 노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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