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화장실에는 물을 받아두는 물통이 있다. 보일러를 틀면 온수가 나오기 전까지 차가운 물을 받아 변기에 붓거나 화장실을 청소할 때 사용하고 때로는 설거지를 하고 난 깨끗한 물을 받아 화분에 물을 주거나 베란다 청소를 하기도 하며 물을 아끼고 살아간다.
나만 물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물을 아끼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 텐데 내가 물을 아끼는 방법 중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을 아끼도록 강요했었다.
언제부터인가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탕에 간다. 때를 벗기기도 하고 사우나 실에서 다른 분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을 때도 있고, 내 말을 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들으며 함께 웃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는 시간은 나에게 쉬어가는 시간이다.
목욕탕에 가는 더 중요한 이유는 손발이 저리고 밤에 잠을 자다가 다리에 쥐가 자주 나는 편이라 사우나 또는 반신욕을 하고 오면 혈액순환이 잘 되는 것 같은 생각에 나름대로 나를 관리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목욕탕에 가면 한 두어 시간을 보내는데 그 시간 동안 원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게 되는데 샤워기를 틀어놓고 양치질을 하는 사람도 있고, 몸의 때를 벗기면서 계속 물이 넘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을 틀어놓은 채 양치질을 하거나 때를 벗기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물 좀 아껴서 쓰세요”라는 말과 함께 화를 내며 물을 끄고 다녔다.
목욕탕 주인도 아니면서 감정을 섞어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은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경멸의 어투로 말을 하였다. 그렇게 말을 하게 된 것은 ‘당신은 물도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이야’라는 나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렇게 했던 나의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고 나를 좋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목욕탕 주인도 아니면서 왜 상관하냐”는 말을 하는 분도 있고, ‘알겠다며’ 물을 잠그는 분도 계셨다.
‘목욕탕 주인도 아니면서 왜 상관하냐’는 말을 들을 때 ‘그렇지, 나는 목욕탕 주인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공감은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목욕탕 주인만 물을 아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다른 사람 생각에 공감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물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니 그것 또한 나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물을 쓰려면 밤새도록 잠 못 자고 물지게로 물을 길어 나르던 엄마와, 여동생을 떠올리며 물을 함부로 쓸 수 없었던 나는 그런 생각이 나의 가치관이 되어 ‘물은 아껴 써야만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물을 아껴 쓰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면 나는 화가 났고 그 화를 사람들에게 표현했다.
내가 물을 아껴 쓰지 않는다고 비난하거나 경멸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물을 아껴 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나처럼 물을 아껴 써야 했던 것이 힘들어 있을 때 마음껏 쓰는 행동일 수 있는데 그들의 행동에 나쁘다고 비난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후에는 물을 틀어놓고 양치질을 하거나 때를 벗기는 사람들을 보더라도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나지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가 변하게 된 것은 그들에게 ‘물 좀 아껴 쓰세요’ 대신에 ‘물을 제가 잠가드릴까요’ 또는 ‘물이 넘치네요’를 부드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