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이곳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까지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놀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자라며 동네의 우물물을 마신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동생들, 외삼촌, 이모, 동네 친구들 모두 이빨이 누렇게 변색되었다. 정읍에 살 때에는 모두가 같은 이빨을 가져서 내 이빨이 이상한 줄 몰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전주로 이사를 오면서 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이 내 이빨을 보면 ‘똥 이빨’이라고 놀렸다.
“이빨이 왜 그러냐”
“너는 이빨도 안 닦냐”
“아이 똥 이빨”
친구들에게 놀림받을 때면 나는 정읍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내 잘못인 것처럼 친구들이 놀릴 때면 억울하기도 하고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 속상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친구들에게 싫은 말을 자주 듣다 보니 대답도 하기 싫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내 이빨을 보이는 것이 싫어 가능하면 말을 하지 않았다.
특히 사춘기인 중고등학교 때는 더 심하게 말을 하지 않아 나를 기억하는 친구와 어른들은
‘수니는 얌전하다’ 고 생각했다.
내 속에는 슬픔과 억울함에 대한 분노가 가득함에도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돈을 벌 때 치과에 갔다.
친구들에게 놀림받았던 앞니를 기계로 갈아내면 깨끗해질까 싶은 마음이었다.
“이-----잉”
아픔을 참아내며 앞니를 기계로 갈았지만 깨끗해지지 않았고 치아만 더 약해졌다.
60년대 내가 살던 동네는 집집마다 수도가 없었고 동네 사람들이 함께 먹는 우물을 파서 각 가정에서는 물을 길어다 먹어야 했다. 우물을 파고 난 후 수질검사를 하지 않고 먹을 때라 우리 동네 우물물을 먹고 자란 친구들, 이모, 삼촌들까지 모두 내 이빨처럼 반상치가 되었다.
반상치의 원인이 우물물에 불소가 과잉으로 인해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난 뒤였다.
지금은 수질검사를 통해 그 우물을 사용하지 않지만 그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뿐만 아니라 내 동생, 친구들은 그 일로 인해 받은 상처들이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 문득,
이빨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음식을 잘 씹어 먹을 수 있고 얼굴 하단이 망가지지 않게 치아 하나하나가 잘 박혀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반상치를 가져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편하지만 내 이빨은
‘이빨로써 기능을 잘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빨은 이빨의 기능을 잘하고 있는데 내가 창피해야 할 이유도 없고 놀림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당당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 반상치 : 표면에 흰색이나 황색 또는 갈색 반점이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