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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부자 Dec 12. 2018

거울

역사를 마주하다.

1940년대 동유럽 중산층의 집.     

한 남자가 거실에서 “모차르트의 <마왕>”을 치고 있다.           

박사 : 안녕하세요. 여러분. 혹시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모차르트 생일이요? 아닙니다. 제 생일이요? 그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제가 역사의 그날을 마주하는 날입니다.     

누군가 말했죠? 세상에는 가장 중요한 금이 세 가지 있다고요.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황금, 세 번째는 연금?     

하하 농담입니다. 이렇게 썰렁할 수가 예상보다 더 뻘쭘하네요.      

정답은 바로 지금입니다.      

여러분이 저와 마주하는 지금 이 순간 과거로 돌아가서 직접 경험한다면 어떨까요?     

책 속의 역사가 아닌 여러분들의 삶의 한 부분으로 말이죠.                

무대 밖에서 불빛 두 번 깜빡인다.               


박사 : 연극 무대 준비가 다 되었군요.     

그럼 폴란드에서 극찬을 받았던 “거울”의 연극 관람을 시작해볼까요?      

당신이 주인공이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면서 말이죠.

자, 공연 시작합니다.        


1        

   

센들러 : 정말 대단해. 네 글을 읽다 보니 폴란드의 백년의 역사가 한눈에 보여.    

위젤 : 다 네 덕분이야.      

센들러 : 무슨 너의 글 솜씨는 정말이지 부럽다. 집필 시작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완성에 다다르다니.     

위젤 : 다 좋은 스승 덕분 아니겠어.      

센들러 : 누구? 나?     

위젤 : 이제 마지막 문장만 완성한다면 대단원의 막을 마칠 수 있을 거야.      

센들러 : 그 영광의 순간이 곧 돌아오기를.     

위젤 : 그래서 말인데 센들러. 부탁 하나만 할 수 있을까?     

센들러 : 무슨 부탁?      

위젤 : 이 책의 서평을 부탁할게.     

센들러 : 서평? 너무 부담되는 부탁인데.     

위젤 : 너였으면 해, 이 책의 첫 독자가.     

센들러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위젤. 그런 눈빛은 남자한테 보내는 게 아니라고.

위젤 : 농담 아니야.     

센들러 : 알겠어, 알겠다고. 나도 생각 좀 해보자. 나도 서평은 처음이고 또 너무 뜻밖이라 그래.      

위젤 : 아주 멋진 추억이 될 거야.      

센들러 : 제발 그래야 할 텐데. 참, 그 소식은 들었어?      

위젤 : 무슨 소식?     

센들러 : 지금 히틀러 집권 후 독일 사람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하더라고.

위젤 : 패전국의 자존심 되찾기 운동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센들러 : 모르지, 다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돼.    

위젤 : 그런 일이 없길 기도해야지, 또다시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지지 않게 말이야.      

센들러 : 이런, 벌써 시간이 늦었네. 난 이만 가볼게.      

위젤 : 그래, 내 부탁 잊지 마.     

센들러 : 마지막 문장이나 잘 마무리해, 그 문장을 보고 결정할 테니까.     

위젤 : 좋아, 기대하라고.     

센들러 : 수고해.      

위젤 : 잘 가.       


센들러, 무대 밖으로 나가고 위젤 피아노 앞에 앉아 “쇼팽의 야상곡 1번”을 친다.      


아버지 : 위젤, 지금 몇 시니? 내가 네 피아노 소리를 듣기 좋아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단다. 얘야.      

위젤 : 네, 죄송해요.     

아버지 : 그래, 근데 아직까지 글 쓴 거니?     

위젤 : 네, 정리가 아직 안돼서요.     

아버지 : 글이 잘 안 써지면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좋단다.      

위젤 : 피아노?     

아버지 : 아니, 아니. 방 안에서 혼자 하는 것 말고 밖에서 친구를 만난다거나 연애를 하는 거 말이다.      

위젤 : 결국은 결혼 얘기하시려고 하시는 거죠?     

아버지 : 내가 네 나이 때 네 엄마를 만나서 아주 불바다를 만들었지.     

위젤 : 그때가 전쟁 중이었잖아요.     

아버지 : 전쟁 중의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 더 뜨겁단다.      

위젤 : 네, 저도 언젠가 그 뜨거운 사랑 해볼게요. 지금 당장은.     

아버지 : 아니야, 내일이라도 전쟁 같은 사랑을 만날 수 있단다. 네가 내일 아침 저 문 밖으로만 나간다면.     

위젤 : 알겠어요,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이 글을 완성 짓는다면 그때 아버지 말씀대로 집 밖으로 나가서 혼자 돌아오지 않겠어요, 됐죠?     

아버지 : 멋지구나, 역시 내 아들.      

위젤 : 고맙습니다.      

아버지 : 그럼 곧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리마. 내 아들. 사랑한다.      

위젤 : 저도 사랑해요, 아버지.   


아버지 퇴장, 위젤 거실 벽면에 걸린 십자가를 향해 성호를 긋고 기도한다.           

위젤 : 모두에게 잊지 못할 단 하나의 문장을 선물해 주소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조명 점점 환해진다.               

위젤 : 음, 폴란드의 영토가 전쟁으로 인해 소련에 점령되었던 점을 부각해야 해. 국토의 손실은 곧 영토의 상실, 바로 국가의 3요소 중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 이 점을 꼭 독자들에게 알려야 해. 전쟁의 피해는 단순한 인적,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나라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말이야.  


그때 책상 위의 컵이 흔들린다.          

위젤 : 뭐지?      

위젤, 창문으로 밖의 동정을 살핀다.      

자동차 클랙슨이 울리고 센들러 헐레벌떡 들어온다.           

센들러 : 위젤, 큰일 났어! 독 독일군이야!     

위젤 : 무슨 말이야? 독일군이라니.     

센들러 : 히틀러가 전쟁을 선포하고 폴란드를 침공했다고.      

위젤 : 전쟁? 전쟁이라고?          

멀리서 포성이 들려온다.          

센들러 : 시간이 없어, 어서 아저씨와 함께 도망쳐야 해.     

위젤 : 말도 안 돼.       

센들러 : 더 이상 말할 시간 없어, 어서 짐 챙겨서 나와. 아저씨, 아저씨도 어서 내려오세요.      

아버지 : 무슨 일이냐? 센들러.      

센들러 : 독일군이 국경을 넘어 쳐들어왔어요.      

아버지 : 뭐? 독일군이     

센들러 : 네, 지금 독일군이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가고 난리가 났어요.     

아버지 : 오, 하나님. 위젤, 뭐하니 어서 짐 싸지 않고?     

위젤 : 지금. 지금. 문장이 떠올랐어요, 잠깐만 시간을 주세요.       

아버지 : 위젤!     

센들러 : 그래, 어서 나와.      

위젤 : 아니, 지금 이 순간이 내겐 숙명인지 몰라. 먼저들 몸을 숨겨, 나도 곧 따라갈게.          

총성과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가까워진다.           

아버지 : 위젤, 꼭 그래야겠니?     

위젤 : 이 한 문장만 한 문장만 쓰면 폴란드의 잃어버린 역사도 국민들의 자존감도 되찾을 수 있을거예요, 아버지.     

아버지 : 넌 정말 죽은 네 엄마를 꼭 닮았구나, 하지만 나도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싶진 않구나.     

위젤 : 아버지, 죄송해요.     

아버지 : 센들러 먼저 가거라. 난 위젤이랑 같이 짐 챙겨서 나가마.     

센들러 : 아저씨!     

위젤 : 아버지!     

아버지 : 이럴 시간 없다, 난 짐을 챙길 테니 위젤 넌 얼른 글을 써라. 센들러, 너의 호의는 평생 잊지 않으마.      

센들러 : 알겠어요, 그럼.                

센들러 퇴장하고 아버지 빗자루를 들고 문 앞을 지킨다.      

점점 총성과 독일군의 거친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위젤, 연신 타자기를 두들긴다.               

위젤 : 그래, 이거야! 이렇게 끝맺으면 되는 거였어.           

문 걷어차는 소리와 동시에 아버지의 넘어지는 비명소리, 집안의 불이 꺼진다.

               

2              


한적한 기차역에 한가롭게 노니는 독일군과 불안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있다.          

회스 : 자자 모두 집중. 여러분들은 지금 우리 독일의 배려 속에 전쟁의 위험에서 안전하게 이주 중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이 곳 생활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시면 됩니다. 먼저 열다섯 이하 어린이들은 이쪽으로.     

비토리노  : 바르톨로메오, 일루 와.           

바르톨로메오 : 아빠, 전 열세 살이에요.          

비토리노 : 아니, 넌 오늘부터 열다섯 살이야. 어서 나와 같이 서자.      

군인1 : 조용해. 빨리 줄 서지 못해.      

회스 : 아아, 그렇게 소리 지르면 다들 놀라시잖아. 우선 얼추 정리된 것 같으니 우리 어린 친구들은 저 군인들을 따라 저기 굴뚝 보이지? 그래, 다들 거기서 좋은 시간을 보내거라.  

군인1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다.            

회스 : 자, 이제 남은 분들은 모두 짐에 주소와 이름을 적어주세요.

죠셉 : 왜 적어야 하는거죠? 그냥 가지고 가면 안되나요?

회스 : 단체생활에서 개인 소지품 관리가 쉬울까요? 분실의 위험이 무척 높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곳에 계시는 동안 보관해드리는 거니까 정확하게 이름과 주소를 적어주세요.

사람들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둘 가방에 이름과 주소를 적는다.           

회스 : 자 그리고 이 중에서 악기를 다루거나 기계 정비 기술을 가진 분이 있으신가요? 좋습니다. 그럼 당신들은 먼저 이동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제 말을 똑똑히 들으세요. (군인에게 턱짓하며) 자, 이동해.           

군인2, 기술자와 악기를 다루는 사람을 데리고 무대 퇴장          

죠셉 : 봐봐. 총이나 칼이 없잖아. 정말 우리를 보호해 주는 거 아닐까?     

사이먼 : 전쟁에 끌려가지 않는다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회스 : 자자. 조용히 하고 다시 한번 줄을 나누겠습니다. 우선 마흔 다섯살 이상 노약자는 왼쪽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줄을 서세요.          

군인3 허공으로 깃발을 휘두른다.           

회스 : 또 기차가 들어오네요. 빨리 움직여야 좋은 숙소를 배정 받을 수 있습니다.      

위젤 : 저희는 어디로 가는 거죠?      

회스 : 집단 수용소 아니 숙소에서 생활을 할 겁니다.

위젤 : 따로 하는 일은 없는건가요?

회스 : 그건.          

기차의 경적소리가 들린다.           

회스 : 그건 숙소에 배치 후 알려드릴 테니 어서 움직여요.          

회스 군인들을 향해 고갯짓을 하자 군인4 노약자들을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위젤 : 아버지.     

아버지 : 위젤, 건강히 잘 지내라.     

위젤 : 아버지도 건강하세요. 그리고 죄송해요.     

아버지 : 죄송하긴 뭘, 네 책을 읽지 못하는 게 아쉽기만 하구나.     

위젤 : 조만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아버지 : 그래, 기다리마.           

위젤, 아버지 서로 껴안는다.           

회스 : 뭐해? 어서 움직여.          

노약자 군인4를 따라 모두 무대에서 나간다.          

회스 : 자, 여러분들은 이동에 앞서 탈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죠셉 : 왜 옷을 갈아입죠?      

회스 : 단체 생활을 위해 안전하게 소독해야 합니다.      

위젤 : 저희 가족들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습니까?     

회스 :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사이먼 : 전쟁이 언제 끝나는데요?       

회스 : 여러분이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전쟁은 곧 끝납니다.      

죠셉 : 정말이죠? 열심히 도와드리면 다 만날 수 있는 거죠? 집으로 갈 수 있는 거죠?     

회스 : 그럼요. 여러분의 가족과 이름, 소지품에 모두 기록해 놓지 않았습니까?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전쟁만 끝나면 모두 원하는 집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죠셉 : 신의 가호를.          

사람들 모두 옷을 갈아입고 경쾌한 행진곡에 맞춰 회스를 따라 "노동이 자유를 만든다."라는 푯말이 붙은 문을 통해 퇴장한다.               


3 1 


무대 한가운데 히틀러와 나치 문양 그 밑에 십자가가 걸려있는 사무실.     

한 남자가 글을 쓰고 있고 위젤은 청소도구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온다.          

센들러 : 위 위젤? 위젤 맞지?      

위젤 : 센들러 너 너 복장이?     

센들러 : 어쩔 수 없었어. 아내도 임신 중이고, 아버지, 어머니도.     

위젤 : 아.     

센들러 : 참, 위젤, 나 아저씨 만났어.     

위젤 : 그래?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디 계셔?     

센들러 : 그게.

위젤 : 설마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줘.     

센들러 : 미안해. 하지만 걱정 마. 넌 내가 꼭 지킬게.      

위젤 : 내가 그때 네 말을 들었더라면, 그 한 문장에 집착하지만 않았더라면.

센들러 : 자책하지 마 위젤,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위젤 : 센들러, 정녕 신은 있을까?     

센들러 : 있겠지, 이 모든 걸 다 아실 테니.          

회스, 사무실로 들어온다.

회스 : 뭐야? 이 시간까지 청소를 하고 있다니 뭣하고 있던 거야, 센들러.     

센들러 : 죄송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신경을 못 썼습니다.      

회스 : 어서, 나가. 이 더러운 유대인 새끼.      

센들러 :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마저 청소해     

위젤 : 네.      

회스 : 센들러 넌 지금보다 더 행복한 선전 글을 써야 한다. 지금 온 유대인은 전 유럽의 소수에 불과해. 우리 위대한 게르만 민족은 평화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고. 알겠어?     

센들러 : 하이. 히틀러.          

위젤 나가면서 센들러를 한 번 뒤돌아보고 무대 퇴장.           

회스 : 선전글의 포인트는 바로 전쟁의 위험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이주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해야 해. 그리고 중요한 생필품 정도는 소지할 수 있다는 것도.

센들러 : 무슨 뜻이죠? 오면 대부분 다 가스.     

회스 : 이런 멍청한 놈. 그들이 이주한다면 무얼 갖고 오겠어? 땅을 가져올까? 집을 가져올까? 가방에 챙길 수 있는 귀중품을 가져올 거 아니야?     

센들러 : 맙소사.     

회스 : 강성한 게르만 민족으로 살고 싶다면 조금 더 머리를 쓰라고 센들러. 여긴 신이 허락한 성지가 될 테니까.  

센들러 : 신의 성지라니.          

군인 1 들어와 회스에게 귓속말을 한다.          

회스 : 좋군. 독일군의 승전이 곳곳에서 들려오다니. 자, 어서 선전글을 더 잘 쓰도록 해. 히틀러 총통과 괴벨스 선전장관께서 무척 궁금해한다는군.           

군인 1, 센들러를 억지로 타자기 앞에 앉힌다.           

회스 : 세계 평화를 위해 유대인을 비롯해 폴란드인 러시아 군인 등이 우리 독일군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써. 이들 모두 한마음으로 비극적인 전쟁을 끝내고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마. 어린아이들은 미래의 보물로 의학기술의 진보를 이룩하기 위해 함께 힘쓰고 있으며 곧 돌아올 장밋빛 희망에 다들 기대하고 있다고 쓰라고.     

센들러 : 역겨워, 그건 생체실험이잖아!     

회스 : (총을 겨누며)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다 미래를 위한 희생이야 센들러. 너도 나도 또 수많은 사람들도 그런 하나의 소모품에 불과해. 어설픈 감정 따윈 버려. 그리고 잊지 마! 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저 창밖 시커먼 굴뚝으로 향하게 했으니까.     

센들러 :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정말 신은 있는 건가요?     

회스 : 하하하. 당연히 신은 있지. 그리고 신에게 선택되었지. 게르만 민족을 그리고 너와 나, 저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말이야.     

센들러 : 하아.     

회스 : 센들러 기억해. 전쟁에서 승리만이 평화를 만든다. 그래서 우린 승리를 위해 전 세계인을 하나로 결집하고 세계평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알겠어?     

센들러 : 전쟁 승리, 세계평화, 전쟁 승리, 세계평화.     

회스 : 그래, 전쟁 승리, 세계평화. 정 죄책감이 생긴다면 이렇게 생각해봐. 너의 글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우리를 위해 일한다면 이 잔인한 전쟁의 소용돌이를 더 빨리 끝마칠 수 있다고 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센들러?          

센들러, 말없이 타자기를 치기 시작한다.          

회스 : 참 이 커피를 마실 때면 기분이 이상해. 유대인 녀석들이 아침마다 똥물을 커피라고 자위하며 마신다고 하니까 정말 내가 똥물을 먹는지 커피를 먹는지 헷갈릴 정도라니까. 하하.          

군인 1 센들러가 쓴 원고를 쓰윽 읽고 회스에게 건넨다.           

회스 : 어때?      

군인 1 : 좋은데요.     

회스 : 역시, 타고난 글재주가 있어. 봐봐, 평화가 눈앞에, 제목 좋고. 독일군은 유대인들을 비롯한 유럽인들의 전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피난민들을 안전하게 수용소로 이주시키고 있다. 이는 히틀러 총통이 추구하는 세계 평화와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 사회를 위한 전략적인 방법으로 빠른 전쟁 종식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독일군과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군인 1: 정말 잘 썼네요.      

회스 : 그럼,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아주 정확하다니까. 센들러. 이 펜은 내게 주는 선물이다. 너의 글 솜씨에 신의 가호를 하하하하.          

회스 군인과 함께 무대 밖으로 퇴장.          

센들러, 책상 위 펜으로 손을 찍으려 하지만 눈에 뜨게 떨리는 손,      

힘없이 펜을 떨어뜨리고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며 엎드려 운다.    

                

32   


회스 : 자 여러분 유대인 수용소 아니 유대인 보호소에 온 걸 환영합니다. 오시는데 불편한 건 없으셨는지요?     

아이젠 : 우릴 왜 잡아온 겁니까?     

회스 : 잡아오다뇨? 우린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을 모신 겁니다. 전쟁의 위험 속에서요.     

아이젠 : 거짓말.      

회스 : 거짓말이라니요? 아직 소식을 못 듣고 계신가요? 독일의 승전보를.     

피오 쉬토프 : 장군님, 전 유대인이 아닙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회스 : 아 당연히 살려드리죠. 아니 살아야죠. 하지만 다 살 수 없겠지만.     

피오 쉬토프 : 모든지 할 테니 꼭 좀 살려주십시오. 전 기생충 같은 유대인과 같이 죽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젠 : 더러운 자식.      

피오 쉬토프 : 뭐야. 이 개 같은 유대인 새끼가.     

회스 : 아아 좋습니다. 좋아요. 이러면 어떨까요? 당신이 제 말을 믿고 따른다면 살려주죠.      

아이젠 : 누가 누굴 살린다는 거야?     

회스 : 바로 이 시끄러운 폴란드 돼지와 당신이 선택하는 누구든 말입니다.     

피오 쉬토프 : 아. 아니 왜 절. 전 독일 아니 히틀러를 아니 히틀러 총통을 존경해 왔습니다. 하이 히틀러 하이 히틀러.     

군인1 : (피오 쉬토프를 발로 차며) 조용히 해.     

회스 : 그만둬. 당신이 우릴 돕는다면 이 폴란드 돼지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좋소. 하지만 당신이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면 당신도 죽고 당신과 함께 기차를 타고 온 저 수많은 사람들도 다 죽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말이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이젠 : 교활한 새끼.     

회스 : 교활하다니요, 말이 심하군요. 뭐 당신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아이젠 : 하지 마, 이 새끼야.     

회스 : 뭘 하지 말란 거죠? 하하하.           

아이젠, 회스에게 덤벼든다.      

군인2 그를 잡고 곤봉으로 때린다.          

회스 : 정말 웃기는군. 네가 지금 뭐라도 된 줄 아나 본데. 아쉽군. 당신 이름이?     

피오 쉬토프 : 피오 쉬토프입니다.      

회스 : 당신에게 기회를 주겠소. 음. 저 사람을 설득하면 살려주고 설득 못하면 당신이 죽습니다. 선택권은 없어요. 시간은 단 1분입니다.      

피오 쉬토프 : 아깐 미안했어요. 하지만 난 정말 죽고 싶지 않아요. 친구와 함께 체스를 두다 잡혀왔다고요. 제 아내와 아이들은 내 생사도 모른 채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제발, 제발 저와 함께 저들을 도와줍시다. 제발이요.     

아이젠 : 돕는다고? 아니. 절대 그럴 수 없어.      

피오 쉬토프 : 난 살아서 꼭 고향으로 가야 해요. 독일이 전쟁을 끝내면 다 고향으로 보내준다고 하잖아요? 그렇죠, 장군님?     

회스 :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이 전쟁은 다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니까.     

피오 쉬토프 : 자 어서어서 일어나 말해요. 함께 하겠다고 제발 날 봐서라도 아니 저 뒤에 사람들을 봐서라도 제바알.     

아이젠 : 집어치워! 저 놈들을 도왔다간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걸 몰라?     

피오 쉬토프 : 이런 젠장. 몰라. 모른다고. (아이젠의 뺨을 때리며) 너만 잘났어? 너만 잘났냐고?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냐고 이 새끼야.     

회스 : 1분 지났다. 떨어뜨려.     

피오 쉬토프 : 저에게 저에게 1분만 시간을 더 주신다면 꼭 설득을.          

탕!          

회스 : 시간은 금이란 말을 모르는 것 같군.     

아이젠 : 이 나쁜 자식아! 신이 무섭지도 않냐?     

회스 : 신? 신이 있기에 우리가 있다는 걸 모르겠어? 이 상황을 봐도 모르겠냐고? 응?     

아이젠 : 날 죽여, 하지만 저 사람들은 안 돼.      

회스 : (귀를 파며) 이번 기차도 상태가 영 안 좋네. 이동해.     

로지하임 : 어 어디로 가는 겁니까? 네?     

회스 : 하늘에게 물어보시죠. 댁들의 신에게 하하하하     

아이젠 : 안 돼. 이럴 순 없어. 여러분 도망치세요. 도망치셔야 해요. 따라가면 안 됩니다.           

탕탕.          

회스 : 더 이상 이탈하거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즉시 즉결처분이다. 알겠나?

군인들 : 하이 히틀러.          

사람들 술렁이자 군인들 하늘에 대고 총을 쏜다.          

군인들 : 어서어서 움직여.     

군인3 회스에게 신문을 건넨다.          

회스 : 오늘도 참 좋은 날씨군.   


4 1 


사무실 창밖으로 갖가지 기계 소리가 들린다.     

"기계를 돌려라 돌려. 너희들의 노동이 자유를 만든다."     

독일 군인들의 절도 있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러다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기계 작동 소리가 멈춘다.          

회스 : 무슨 일이야?     

센들러 : 사 사람이 다쳤습니다.      

회스 : 젠장, 기계는 괜찮아?     

센들러 : 사람을 구하려면 기계를 기계를 멈춰야 합니다.     

회스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하는거야. 돌려 돌리라고.     

센들러 : 제발. 제발 구해주세요. 우리와 같은 사람이잖아요.     

회스 : 사람? 누구나 피를 흘린다고 사람은 아니지.     

센들러 : 제발     

회스 : (뺨을 때리며) 이런 연약한 녀석, 넌 너의 글재주가 아니었다면 이미 네 친구와 사이좋게 죽었을 거다.     

센들러 : 알고 있었어? 내 친구인지 알고 있었냐고.     

회스 : 당연하지, 이곳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지.      

센들러 : 이 나쁜 자식.     

회스 : 지 살자고 나라도 친구도 배신한 네 놈 따위에게 듣긴 좀 거북한 말이군.

센들러 : 이게.           

회스, 센들러 발로 차 넘어뜨리고 소리친다.           

회스 : 기계 돌려, 멈추지 말고 돌려라. 평화를 위해 자유를 위해 멈추지 말고 기계를 돌려라.     

군인들 : 하이 히틀러          

다시 하나 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비명 소리가 더 커지고 조명 꺼진다.      

곧 오른쪽 무대 끝에 위젤 피에 물든 채 쓰러져있다.     

센들러, 절뚝대며 위젤에게 다가간다.          

센들러 : 위젤. 괜찮아?     

위젤 : 세 센들러     

센들러 :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위젤 : 아니야, 난 괜찮아.     

센들러 : 조금만 더 힘내, 곧 전쟁은 끝날 거야.     

위젤 : 그래. 곧 끝나겠지. 꼭 그래야 해. 센들러.     

센들러 : 더 이상 말하지 마. 위젤. 곧 의사가 올 거야. 의무병! 의무병!     

위젤 : 나 이제 조 졸려. 센 센들러 내 내 가방을 찾아 그리고 그 원고, 꼭 부탁해.

센들러 : 위젤 위젤, 정신차려, 위젤.

의무병 뛰어와서 위젤의 목에 손을 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곤 총을 겨눈다.     

센들러 막으려 하지만 군인2 센들러를 발로 차고 눈앞에서 군인1이 위젤에게 총을 쏜다.

센들러 위젤을 가슴에 앉으며 흐느낀다.

센들러 : 아 아아 안돼, 안돼. 안돼.        

군인1 : 장군님의 마지막 배려입니다. 그리고 한 번은 봐주지만 두 번은 봐주지 않겠습니다.      

군인2 : 자자, 어서어서 옮겨.          

다른 수용자들이 나와 죽은 위젤을 옮긴다.     

바닥에 절규하는 센들러.     

사무실 창밖을 보며 신나게 소리치는 회스가 보인다.     

회스 : 기계를 돌려, 돌려. 너희의 노동이 자유를 준다. 평화를 준다. 하하하하.      

    

4 2 


사무실에 히틀러 사진과 나치 액자가 삐뚤어져 있다.           

센들러 : 자유와 평화, 자유와 평화. 오직 승리뿐이다. 오직 승리뿐이다.      

회스 : 센들러, 이제 그만해. 선전 원고는 이제 충분하니까.      

센들러 : 전쟁 승리, 세계평화, 전쟁 승리, 세계평화.     

회스 : 그만하라고, 이 미친 자식아!     

군인1 : 장군님, 장군님 큰일 났습니다. 러시아가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연합군도 이곳으로 총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회스 : 그게 무슨 말이야? 서부전선에 이상이 없다고 여기 쓰여 있는데.     

군인1 :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회스 : (신문을 구겨 던진다.) 이런 젠장! 같은 편까지 속이는 글을 쓰다니.      

센들러 : 자유와 평화, 오직 승리뿐이다.      

회스 : 시끄러워, 센들러!     

군인1 : 장군님,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회스 : 빌어먹을, 내가 이런 수모를 겪을 줄이야.      

센들러 : 하하하하, 이렇게 평화가 오다니.        

회스 : 뭐?          

밖에서 포성과 총성이 들려온다.           

센들러 : 이젠 다 끝났다. 모두 다.     

회스 : 아니, 넌 끝났을지 몰라도 난 아직 안 끝났어. 안 끝났다고.           

포성과 총성, 비명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군인1 : 장군, 시간이 없습니다.      

회스 : 우린 진 게 아니야, 잠깐 기회를 엿볼 뿐이지.     

군인1 : 장군님 이 곳을 어떻게 할까요?     

센들러 : (신문을 집어 들고는) 독일군은 유럽을 넘어 세계로 진출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미국도 독일군의 세계 통일에…….     

회스 : 모든 병력에게 모든 기계와 자료 불태우도록 명령해.     

군인1 : 포로들은?     

회스 : 다 죽여야지, 한 놈도 빠짐없이.     

군인1 : 네 알겠습니다.           

군인1 황급히 뛰어나가며 소리친다.

군인1 : 모두 죽여라, 다 부셔라. 시간이 없다.           

센들러 : 끝까지 끝까지 그래야만 했냐?          

센들러, 회스에게 달려든다.     

회스와 센들러 엉켜 싸우다 회스가 간신히 센들러를 제압한다.          

회스 : 센들러, 넌 아직도 모르겠어? 네가 믿는 저 신의 선택을 말이야.      

센들러 : 죽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회스 : 맞아, 죽지. 다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느냐 너처럼 이용만 당하다 개죽음을 당하느냐가 다르겠지. 안 그래?     

센들러 : 이름? 역사? 과연 그럴까? 하하하하.     

회스 : 웃지 마. 웃지 말란 말이다.           

회스, 센들러에게 총을 겨눈다.          

센들러 : 전쟁은 끝났고 평화는 찾아온다.      

회스 : 잘 가라, 센들러.            

비행기 폭격 소리와 러시아군의 함성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총성이 들려온다.  

         

5     


검사 : 피고인 당신은 아우슈비츠의 소장이 맞습니까?      

회스, 고개를 끄덕인다.     

검사 : 당신 손에 죽은 유대인들이 정말 죽어 마땅했다고 생각합니까?     

회스 : 그건 제가 답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검사 : 그렇다면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총인원이 35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게 맞습니까?

회스 : 아닙니다. 질병과 아사 등 자연사가 많았으며 말씀하신 그 인원을 증명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검사 : 좋습니다. 당신이 죽인 사람이 350만 명이든 1명이든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가스실에서 잔인하게 죽였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따라서 저는 반인륜 범죄를 행한 전범으로서 살인 혐의를 적용, 사형 선도를 구형합니다.      

판사 : 피고인, 이의 있습니까?     

회스 : 저는 저의 안녕을 위해 행한 것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한 나라의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른 게 죄가 된다면 그 어떤 군인이 나라의 명령을 따르겠습니까?     

검사 : 회스, 정말 마지막까지 치졸하군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회스는 아우슈비츠가 점령 전 자신들의 가족을 은신시킨 후 영국군의 군복으로 환복 한 후 도망 나와 정원사로 생활하다 붙잡힌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나라의 명령과 군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판사 : 인정합니다. 피고인 회스에 대한 더 이상의 답변은 듣지 않고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피고인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으로서 수많은 인명을 살해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동시에 반인륜적인 생체실험 등을 묵인, 방조한 혐의 등을 참작하여 아우슈비츠 교수대에서 사형을 취할 것을 명합니다.     

회스 : 아니야, 아니야. 난 아무런 죄가 없어. 난 신의 뜻을 따라 내 운명을 맡기고 행했을 뿐이라고. 아니야, 아니라고. 난 가톨릭 신자란 말이야.      

판사 : 이것으로 재판을 종결합니다.      

회스 : 으아아아악    

           

박사 : 이후 회스는 죽기 직전에서야 자신이 틀린 이념을 믿었다며 고해성사를 하였고 아우슈비츠의 특설 사형집행대에서 최후를 맞이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의 손자였던 루돌프 회스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나치주의자가 되어 강연을 다니며 사죄하였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아 그리고 센들러는 연합군에 의해 구출되어 아우슈비츠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고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위젤이 부탁한 원고와 자신이 쓴 서평을 연합군에 전달하였습니다.      

그 서평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부착되어 많은 사람들에 다시 한번 역사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는데 그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그걸 다시 겪게 된다.”      

오늘 오신 여러분에게도 이 말을 꼭 기억하길 바라며 오늘의 무대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사, 서가에서 와인을 꺼내 잔에 따른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 거울로 다가간다.     

성호를 긋고 와인 한 잔을 마시며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안쪽에 일본군 장교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다.    




 






본 원고에 대해서 작가 허락 없이 무단각색 및 공연을 할 경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나

공연 문의 및 작품에 대한 문의 사항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낮에는 박스 옮기며 일하고 밤에는 펜 들고 글쓰는 고단한 글쟁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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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유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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