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문화재단 응모작
등장인물
민재 : 게임 프로그래머
민영 : 댄스가수 지망생
1막
방 안에서 한가롭게 뉴스를 시청하는 민재
[해마다 3.1절이면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각성의 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표방하는 디자인이 성행하고 있어 역사에 대한 인식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리포터 : 이 가수 아시죠? 이 옷 어떠신가요?
학생 1 : 멋있어요. 잘 어울리는데요.]
민재 : 뭐 뭐야! 민영이 아냐?
[리포터 : 혹시 이 문양인 욱일기가 무슨 뜻이 있는 줄 아시나요?
학생 1 : 아니요, 요즘 핫한 디자인 아닌가요?]
민재 : 아, 저 바보. 집안 망신 다 시키네.
[리포터 : 다른 시민들에게도 확인해 봤습니다.
시민 1 : 일본을 상징하는 것 같긴 한데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습니다.
시민 2 :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아이돌이 입는 것은 역사 인식과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리포터 : 이처럼 일부 시민들의 경우 제대로 알고 계신 경우도 있었지만 모르는 시민들도 많아 우리 역사 인식과 교육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습니다.]
민재 : 말로만 친일청산이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게다가 역사고 국사고 다 암기과목이 되었으니 당연하지. 안 되겠다, 민영이라도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지.
며칠 후
방 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민재
민영, 쟁반에 주스를 들고 위태위태하게 방으로 들어온다.
민영 : (콧소리를 내며) 오라버님, 오라버님 뭐하세요?
민재 : 보면 몰라, 일하잖아.
민영 : 아, 일하시는구나. 난 또 게임하는 줄.
민재 : (주스를 받아 들며) 왜? 돈 필요해?
민영 : 아니 소저, 돈이 필요한 게 아니옵고 제게 가장 소중한 핸드폰이 좀 이상하옵니다. 오라버니.
민재 : 핸드폰? (마시던 주스를 다시 쟁반 위에 올려놓고) 이리 줘 봐.
민재, 민영의 핸드폰을 이것저것 만져본다.
민재 : 뭐 이상한 거 없는데? 왜?
민영 : 사진이 안 찍히던데.
민재 : 사진? 잠깐만? 뭐야, 천육백사십오 장. 뭐냐? 너 무슨 사진을 이렇게 찍어?
민영 : 페북 관리하려면 어쩔 수 없사옵니다.
민재 : 페북? 그걸 왜?
민영 : 연예인 데뷔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소녀 매니저도 있사옵니다.
민재 : 야, 그냥 너 평소처럼 말해.
민영 : 아, 고쳐줄 거야? 말 거야?
민재 : 고치는 게 어딨어. 그냥 사진 지우면 되는데.
민영 : 사진 안 지우고 하는 방법은 없어?
민재 : 있긴 한데 뭐하러 그래, 어차피 모아놔 봤자 다시 안 봐.
민영 : 아니야, 난 봐. 그러니까 빨리 사진 옮겨줘.
민재 : (핸드폰 사진을 돌려본다.) 어우야, 이런 건 좀 지워.
민영 : 뭘 지워. 다들 귀엽다고 난린데.
민재 : 이게 귀여워? 다들 눈이 안 좋니? 안과 소개해줄까?
민영 : 아, 뭐래.
민재 : 근데 진짜 너 이렇게 많이 사진 저장하면 외장 하드론 감당이 안돼.
민영 : 그럼?
민재 : 클라우드를 활용하면 되긴 하는데.
민영 : 클라우드? 맥주?
민재 : 이건 또 뭐야?
민영 : 왜?
민재 : 무슨 코스프레를 한거야?
민영 : 유관순 언니
민재 : 뭐? 얘 진짜 답없네.
민영 : 어때! 핼러윈이잖아, 핼러윈.
민재 : 아휴, 민영아. 핼러윈 챙기기 전에 개념 먼저 챙겨.
민영 : 아 뭐래, 해줄 거야 말 거야?
민재 : 해줄게, 해주는 데 조건이 하나 있어.
민영 : 조건?
민재 : 너 얼마 전에 뉴스 인터뷰했지?
민영 : 어, 어떻게 알았어?
민재 : 너 학교나 너의 펜들이 뭐라 안 하디?
민영 : 악플이 늘긴 늘었는데 무슨 소린지 몰라서 신경 안 썼는데, 왜?
민재 : 넌 정말 연예인을 할 수 있겠다.
민영 : 그게 무슨 말이야?
민재 : 너의 순수한 뇌와 강철 같은 멘탈이 대단하다고.
민영 : 자꾸 못 알아듣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해줘.
민재 : 바보야, 너 지금 전국적으로 개념 없는 애로 찍힌 거 모르겠냐?
민영 : 개념? 내가? 오빠 나 이래 봬도 우리 학교 개념녀야. 줄여서 개년. 응? 잠깐...
민재 : 어이구, 너 지금 개념 없는 거 여기 있는 사람, 전 국민들이 다 알아.
민영 : 내가 개념이 없다는 걸 다 안다고? 전국적으로? 대박!
민재 : 좋아?
민영 : 당연하지, 내 이름을 널리 알렸잖아.
민재 : 야, 이거 엄청 심각한 거야.
민영 : 그래? 요즘에 애들이 나보고 개념녀 개념녀 개년? 아, 발음.
민재 : 야, 너 왜 개년? 아니 개념녀가 된 줄 알긴 아냐?
민영 : 모르겠는데. 근데 생각해보니 요 근래 페북 친구가 엄청 늘긴 늘었어.
민재 : 민영아, 민영아. 너 진짜 뭐 될래?
민영 : (무대 앞으로 나서면서) 보면 몰라?
민재 : 몰라.
민영 : 가만히 있어봐. (댄스음악 나오며) 딱 봐도 댄스 요정 걸 크러쉬잖아.
민재 : 하아, 끊었던 담배 생각이 너만 보면 간절해진다.
민재 : 자, 우선 이거 하나만 읽어봐 봐.
민영 : 뭔데?
민재 : (핸드폰을 건네며) 그냥 읽어봐, 한글은 읽을 줄 알지?
민영 : 장난해? 음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로 불리는 이 상징은 일본 제국과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써 침략, 수탈의 주체인 일본 군부를 상징하며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적 만행을 왜곡, 부정하며 일본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민재 : 자, 이제 욱일기가 무슨 뜻인지 알겠지?
민영 : 근데 그게 왜?
민재 : 너 표정 보니까 가슴에 확 답답해지는데 우선 딱밤 한 대 맞자.
민영 : 아니 진짜 왜?
민재 : 여기 계신 관객분들이 오늘부터 끊었던 담배 다시 피우면 다 너 책임이야, 어서.
민영 : 정말인가요? (관객들을 향해)
민재 : 야, 중학생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냐!
딱밤 때리고 민영 머리를 감싸 쥔다.
민영 : 아, 진짜 때렸어. 연습 때처럼 해.
민재 : 미 미안. 흠흠. 어쨌든 욱일기가 문제가 되는 건 디자인의 문제 이런 개념이 아니야.
우리가 일본에 식민통치를 당했잖아. 그렇지?
민영 : 알아, 그 정돈.
민재 : 근데 그 일제강점기 내내 우리나라의 자원부터 인권, 문화 등을 말살하려 했지. 대표적으로 우리나라말 대신 일본어만 쓰게 하거나 창씨개명을 강제하고 또 위안부나 강제노역 등을 시키고 말이야. 알지?
민영 : 오빠, 나 국사 백점 맞은 여자야.
민재 : 아휴, 국사 백점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때의 잘못된 만행과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고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게다가 일본의 몇몇 정치인들과 역사학자들은 지금도 경제적, 문화적, 인권적 행위에 대한 것들이 모두 다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하는 거야. 즉, 자신들의 잘못은 없다. 우리가 한국을 선진화시켜줬다 우린 그때의 일본 제국으로서 앞으로 나아가겠다 하는 게 바로 이 욱일기이기도 한 거고.
민영 : 와, 완전 개년, 아니 나쁜 놈들이네.
민재 : 그렇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이 욱일기를 입고 공연을 하고 있고 그걸 멋지다고 하는 우리 개념녀 민영이 같은 친구들이 있는데 어떡해야겠어? 게다가 처녀귀신을 유관순열사라고?
민영 : (벌떡 일어나서)와, 나 어떡하지? 나 완전 망했네, 내 이미지 어떡하지?
민재 : 뭘 어떡해, 사과하고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지.
민영 : 무슨 좋은 방법이 있어?
민재 : 음 잠깐만.
민영 : 우선 지금이라도 오빠가 설명한 내용을 까먹기 전에 페북에 올려야겠다.
그때 민영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다.
윤주 : 민영아. 너 지금 페북 봐봐. 난리 났어.
민영 : 왜?
윤주 : 커뮤니티에 너 방송 짤방 돌아다니나 봐, 사람들이 엄청 몰려와서 별의별 댓글을 다 달고 있어.
민영 : 잠 잠깐만, 이런 애가 연예인을 한다고, 개념 없는 친일파. 머리는 나빠도 착한 줄 알았더니 개념도 없네. 이런 애들이 할로윈은 챙기네. 광복절이나 삼일절은 알려나. 뭐야, 왜 이래.
윤주 : 욱일기녀로 짤방이 도는 것 같아.
민영 : 아 알았어, 우선 생각 좀 해볼게. 이따 통화하자. 오빠, 어떡하지? 계정을 삭제할까?
민재 : 계정을 삭제한다고? 사진 중요하다며?
민영 : 악플이 말도 못 해, 어떡해. 무서워.
민재 : 민영아, 침착해. 지금 네가 잘못 이해하고 오해한 거니까, 사과글부터 올려. 그리고 주말에 시간 좀 내고. 참, 할로윈 사진은 인간적으로 지우자. 너 정말 크게 잘못한거야.
민영 : 알았어. 그럼 좀 괜찮으려나?
민재 : 괜찮기는, 불이 더 옮겨붙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네 폐친들이 별 말 안한게 더 신기하긴 하다.
민영 : 다들 그렇게 신경 안쓰던데.
민재 : 에휴, 됐고 주말에 시간이나 내봐.
민영 : 주말에 왜?
민재 : 뭘 왜야, 개념 찾아야지. 계속 욱일기녀로 살 거야?
민영 : 무슨 방법이 있는 거야?
민재 : 그 건 그 날 가서 알려줄 테니까 윤주한테도 댓글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둘이 잘 상의해서 진정성 있게 사과문 올려. 알았지?
민영 : 알았어. 근데 어떻게 사과문을 쓰지?
민재 : 그냥 네가 생각나는 대로 솔직하게 써야지.
민영 : 지금 머릿속이 하얘, 아무것도 안 떠올라.
민재 : 그건 네가 생각이란 걸 잘 안 해서 그럴 거야.
민영 : 지금 장난할 때가 아니라고!
민재 : 민영아, 잘 생각해봐. 너 말대로 지금은 욱일기녀지만 네가 이 기회를 잘 살린다면 진정한 개념녀로 거듭날 수 있어.
민영 : 정말?
민재 : 당연하지, 욱일기를 모르는 사람이 너뿐이겠어? 몰라서 실수했지만 이젠 제대로 알아간다면 다들 이해해줄 거야. 그리고 도리어 욱일기 개념녀로 바뀔수도 있고.
민영 : 그러려나?
민재 : 그럼. 지금 너 짤방이 커뮤니티에 돌아다닌다며? 아마 몰랐던 애들도 욱일기가 뭔가 하고 찾아볼걸? 결국은 너 덕분에 사람들이 욱일기에 관심을 갖게 된거잖아.
민영 : 그럼, 진짜 잘 된 거네.
민재 : 아니 그렇게 또 좋다곤 할 수 없고.
민영 : 아, 뭐야!
민재 : 확실한 건 사과문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데뷔는 커녕 학교 생활도 힘들 거야.
민영 : 아, 인터뷰하지 말걸.
민재 : 지난 일에 후회 말고 얼른 사과문이나 잘 쓰세요.
민영 : 오빠가 써주면 안 될까?
민재 : 민영아, 진정성. 그게 너희 펜을 위한 거야. 지금 이 순간만 회피하려하지 말고.
민영 : 알았어.
민영 핸드폰을 들고 터덜터덜 걸어서 방을 나간다.
민재 곰곰이 생각하더니 재빠르게 타이핑을 치기 시작한다.
2막
광명 온신초등학교 앞 도로
민재 : 사과문은 잘 올렸어?
민영 : 잘 썼다고 썼는데, 더 안 좋아졌어.
민재 : 뭐라고 썼는데.
민영 : (핸드폰을 건네며) 오빠가 직접 봐봐.
민재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가... 야, 이거 뭐야?
민영 : 다 이렇게 쓰던데?
민재 : 누가?
민영 :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민재 : 아이고, 민영아.
민영 : 왜에, 난 진짜 잘 쓰려고 쓴 건데.
민재 : 이게 말이냐 방귀냐, 잘 쓰려고 쓰는 게 아니고 진정성있게 쓰라니까. 아이고... 윤주는 윤주는 별 말 안 해?
민영 : 윤주랑 같이 쓴 건데.
민재 : 아우 증말, 너희 둘이 왜 친구인지 알겠다.
민영 : 어떡하지, 그냥 계정 삭제할까 봐.
민재 : 삭제한다고 네가 욱일기 인터뷰 했던 게 지워지냐?
민영 : 그럼 어떡해?
민재 :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크게 심호흡 한 번 해봐.
민영 : 오늘 미세먼지 나쁨인데.
민재 : 으휴, 증말.
민영 : 아 알았어. 근데 여긴 왜 온 거야?
민재 : 민영아, 이제부터 넌 모든 배운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 알았어?
민영 : 응.
민재 : 자, 내가 널 왜 만나자고 했고 여길 왜 왔을까? 무슨 의도가 있겠지? 그리고 그걸 추리해서 답을 찾는 거야. 그걸 추론이라고 해. 자, 다시 물을게. 여기 왜 왔을까?
민영 : 개념 찾으러?
민재 : 어떤 개념?
민영 : 욱일기에 대한 개념?
민재 : 조금만 더 뇌를 사용할 순 없냐?
민영 : 역사?
민재 : 맞아. 역사에 대한 개념을 찾으러 온 거야.
민영 : 여기에 역사의 개념이 있다고?
민재 : 이제부터 아주 쉽게 설명할게, 오늘이 며칠이야?
민영 : 3월 27일
민재 : 거기서 구십구 년을 빼봐.
민영 : 구십구 년?
민영 : 1919년 3월 27일이네.
민재 : 산수는 잘하네.
민영 : 치. 근데 왜?
민재 : 여기가 구십구 년 전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역사적 장소야.
민영 : 역사의 장소? 여기가?
민재 : 그래, 구십구 년 전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거리에서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야.
민영 :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독립운동이라고 하면 독립 운동가들이 탑골공원이나 천안 무슨 거리? 뭐 그런 곳에서 하는 거 아니야?
민재 : 그건 교과서에서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설명하다 보니까 놓치고 있는 부분이고 실제론 수많은 국민들이 다 같이 독립운동을 했어.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거리거리에서.
민영 : 그래?
민재 : 그래. 너 삼일절은 알지?
민영 : 삼일절?
민재 : 그래, 삼일절. 오늘이 우리 동네에서 삼일절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고.
민영 : 정말? 뭔가 소름 끼친다.
민재 : 왜?
민영 : 아니 나도 모르게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해. 긴장되고. 무섭고.
민재 : 맞아, 그 두렵고 무섭고 긴장되는 일제강점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독립을 외쳤지. 전국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이야. 그리고
민영 : 오빠 잠깐만. (가방에서 주섬주섬 태극기를 꺼낸다.)
민재 : 왜?
민영 :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며) 인증샷 하나 찍으려고. 지금 내 감정이 드러날 수 있게.
민재 : 민영아, 진정성.
민영 : 나 진짜 진정성 있게 하려고 혹시나 싶어서 태극기 준비한 건데.
민재 : 방송 체질은 체질이다. 왜 왔는지도 모르지만 준비성은 정말.
민영 : 오빠 잠깐 비켜봐, 사진 찍게.
민재 : 민영아, 차라리 찍을 거면 저기 가서 찍어.
민영 : 저기? 왜?
민재 : 아까 말했지, 무언가를 말할 땐 의도가 있다고.
민영 : 응.
민재 : 왜 그럴까 조금만 생각을 하고 가서 사진을 찍어. 단, 그 비석에 쓰인 문구를 크게 읽고 말이야. 알았지?
민재 : 그래.
민영 : 알았어. (무대 뒷배경인 비석 앞으로 다가간다.) 오오. 대박.
민재 : 얼른 읽어봐, 여기 계신 분들도 궁금하실 테니.
민영 : 3.1 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거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던 3월 27일 당시 이 지역에서 거주하던 이정석이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강제 연행되어 노온사리 경찰주재소에 구금되자 지역주민 200여 명이 모여 주재소를 중심으로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이정석의 구출을 꾀했으나, 모두 체포되어 주동자들은 최고 4년에서 1년 6개월의 징역형과 함께 벌금형을 언도받았다. 광복 후 정부에서는 이들에게 건국훈장 애족장 및 대통령 표창을 추서 하였고 광명시에서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애국심을 기리고자 3.1 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를 건립하게 되었고 2002년 11월 30일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받았다. 대박 대박.
민영 사진을 찍으려다 말고 묵념을 한다. 그리고 사진도 찍지 않고 민재에게 다가온다.
민영 : 오빠!
민재 : 왜? 사진 안 찍어?
민영 : 같이 가자.
민재 : 왜?
민영 : 나 사진 안 찍히잖아.
민재 : 사진 안 지웠어?
민영 : 안돼, 내 소중한 추억이라고.
민재 : 으휴, 알았어. 찍어줄 테니 거기 서봐.
민영 : 아니야, 이 비석만 찍어줘.
민재 : 아니 왜? 인증해야 한다며.
민영 : 뭔가 부끄러워서. 그냥 이 곳에 우리 독립유적지가 있다는 것만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민재 : 뭐야, 갑자기 철이라도 든 거야?
민영 : 오빠 카메라는 뽀샵 기능이 없잖아.
민재 : 그럼 그렇지. 자. 찍었으니 다시 이동하자.
민영 : 어디로 가는데?
민재 : 우리 동네서 제일 멋진데.
3막
광명동굴 근대역사관에 와 있는 민영과 민재.
민영 : (들뜬 목소리에서 금방 풀이 죽는다.) 정말? 아, 그래. 알겠어.
민재 : 왜 그래?
민영 : 기념비 인증사진 올라오고 나서 댓글이 많이 늘었데. 가식적이라고.
민재 : 이런.
민영 : (털써 주저앉으며) 아, 정말 어렵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민재 : 민영아, 기운 내. 원래 말이란 게 뱉긴 쉽지만 주워 담긴 힘들어, 하지만 그걸 이겨내야 네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거야. 넌 할 수 있어.
민영 : 오빠.
민재 :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네가 사라.
민영 : 오빠!
민재 : 농담이야, 농담.
민영 : 오빠 그러고 보니까 광명동굴 온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민재 : 맞아, 네가 생각한 거.
민영 : 나 아무 생각 없는데.
민재 : 민영아~
민영 : 농담이야, 강제노역 맞지?
민재 : 어? 어떻게 알았어.
민영 : 아까 버스에서 오면서 검색 좀 해봤지.
민재 : 오오, 센스쟁이.
민영 : 광명동굴은 1912년 (핸드폰 슬쩍 보고) 일제가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핸드폰 슬쩍 보고)
민재 : 민영아, 괜찮으니까. 그냥 핸드폰 보고 읽어.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이해해 주실 거야.
민영 : 아 그럴까? 광명동굴은 1912년 일제가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개발한 곳으로 일제강점기 징용과 수탈의 현장이자 해방 후 근대화, 산업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산업유산이다.
민재 : 맞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모습이 아까 온신초등학교처럼 역사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이렇게 바뀐 거야.
민영 : 신기하면서 좀 무서워.
민재 : 뭐가?
민영 : 그동안 학교에서 강제 노역하면 일본인들에 의해서 강제로 일을 했구나 정도였는데 동굴에 와서 직접 마주하고 보니까 너무 무서우리만큼 생생하게 느껴져서.
민재 : 그렇지.
민영 : 이렇게 깊고 깊은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민재 : 아마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만큼이었겠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수만 명이라고 하니까.
민영 : 나 정말 너무 죄송스럽다.
민재 : 뭐가?
민영 : 어찌 됐든 억울하게 일하고 힘들게 살고 계신 분들이 일본한테 사죄도 못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욱일기가 핫하네 멋지네 이런 얘길 한 나를 보셨으면 얼마나 분통이 터지고 화가 나겠어.
민재 : 그렇지, 그리고 네가 그걸 깨달았다면 다행이고.
민영 : 정말 나 그분들에게 죄송해서라도 뭔가 보답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민재 : 보답? 어떻게?
민영 : 딱히 생각나진 않지만 뭐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긴 한데...
민재 : 그렇다면 조금 생각 좀 해보자, 뭔가 있긴 있을 거야. 너랑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민영 : 참,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오빠 언제부터 이렇게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 오빠 이과잖아.
민재 : 아 그게 대학 다닐 때 우연히 다른 과 학생이랑 같이 학술탐방 지원 공모를 지원한 적이 있었어.
민영 : 아, 중국 간 거?
민재 : 그래, 그때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였거든. 그때 그 친구가 그 콘셉트로 학술탐방을 기획한 거야, 음 뭔가 보람도 있고 또 공짜로 여행도 갈 수 있다고 해서 지원을 했지.
민영 : 그래서?
민재 : 그 친구 만나서 왜 이런 재미없는 주제로 학술탐방을 기획했냐고 물어봤는데 도리어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얼마나 아냐고 묻는 거야?
민영 : 뭐라고 대답했어.
민재 :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신 분. 진짜 그렇게 말했거든. 그랬더니 자기도 그랬는데 우연히 책을 보고 나서 자기를 되돌아보게 됐다고 하는 거야. 그러면서 선물로 책을 줬어. ‘내 마음의 안중근’
민영 : 선물?
민재 : 응, 이 책 먼저 읽어보고 정말 할 생각이 들면 같이 열심히 해보자고. 근데 알잖아. 오빠가 텍스트에 약한 거.
민영 : 알지, 책 보면 십 분 만에 잠드니까.
민재 : 근데 이 책은 안 그랬어, 일본인이 썼다는 것부터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 그리고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왜 안중근 의사를 추앙하고 일본인들마저도 존경하는지 알게 됐어.
민영 : 아니 왜?
민재 : 우리가 교과서에 본 안중근 의사는 단지동맹을 위해서 손가락을 하나 자르고 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거밖에 없지만 조금 더 알고 보면 교육의 중요성, 동양의 평화, 군인으로서의 몸가짐 등 어떤 것 하나도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지 않는 게 없었어.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말이야.
민영 : 아 그랬구나.
민재 : 더욱이 나와 비슷한 나이에 나라를 위해 용기 있게 자신을 희생한 것에 대한 마음의 빚이라고 할까 그런 마음이 순간 들더라고.
민영 : 난 아까 온신초등학교에서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이 만세운동을 하며 독립을 외쳤다고 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민재 : 어쩌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나오는 사건과 년도만 외워서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몰라. 누군가 그랬어, 역사는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의 사람의 삶을 만나고 이해하는 거라고.
민영 : 맞네, 개개인의 삶이 모이고 모여 역사가 되는 거니까.
민재 : 여하튼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나서 진심으로 안중근 의사의 행적을 찾아가 봐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
민영 : 그래서?
민재 : 그래서 우리가 왜 안중근 의사의 행적을 따라가야 하는지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료를 준비해서 중국의 동북 3성을 16박 17일 동안 돌아다녔지.
민영 : 우와. 그렇게나 오래였어? 난 한 며칠 다녀온 줄 알았는데.
민재 : 네가 오빠를 띄엄띄엄 보니까 그렇지.
민영 : 아니, 맨날 겜방에서 밤새고 들어오니까 그랬지.
민재 : 그랬나? 하하.
민영 : 그럼 하얼빈 역에도 갔었겠네?
민재 : 어, 갔지. 갔긴 갔는데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저격 했던 장소는 못 찾고 왔어.
민영 : 아니 왜?
민재 : 우리나라에서는 안중근 순국 100주기여서 대대적이었지만 막상 중국에서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더라고. 일본과의 외교적 문제도 있고 자국의 독립운동가도 아니잖아. 안내판도 제대로 없어서 찾아 헤매다가 못 찾고 기차에 올랐어.
민영 : 대에박.
민재 : 일정 때문에 하얼빈 역을 떠나는데 너무 죄송하고 답답해서 눈물이 다 나더라.
민영 : 어휴, 오죽했을까.
민재 : 더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건 안중근 의사가 머물렀던 초가집이 있는데 그걸 관광객들이 오는 돈으로 간신히 운영 유지를 하고 있는 거야. 너무 시골에 있어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민영 : 아 그랬구나.
민재 : 우리가 차 타고 가는데도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거든, 그때는 오죽했겠어.
민영 : 정말 안타깝다.
민재 : 사실 네가 욱일기 얘기할 때 예전 같았으면 뭐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했을 건데 그곳에 다녀오고 나서 알았어. 우리가 삼일절이나 광복절 이렇게 이슈가 될 때가 아니면 역사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민영 : 그게 무슨 말이야?
민재 : 매년 삼일절이나 광복절 되면 폭주족 뉴스나 일본의 친일 잔재 청산 얘기는 나오지만 정작 사라지지 않고 있잖아. 더욱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계속되고 있지만 역시나 뉴스에서 잘 거론해주지도 않고 말이야.
민영 : 아 그러네. 그러고 보니까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를 직접 겪으신 산 증인들이시네.
민재 : 그렇지. 아마 이 광명동굴에서 강제노역 하신 분들도 꽤 계실 거야.
민영 : 어머, 그렇겠다.
민재 : 우리가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거야. 그 중요성을.
민영 : 그렇구나.
민재 : 뭐 그래도 조금씩 많은 분들이 방송에서 역사의 중요성도 얘기하고 행사도 많이 하니까 점점 좋아지고 있긴 한 거지.
민영의 휴대폰 벨이 울린다.
민영 : 잠깐만.
은주 : 민영아, 전화받을 수 있어?
민영 : 어,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은주 : 너 지금 광명동굴에 있니?
민영 : 어, 어떻게 알았어.
은주 : 누가 너 거기 가 있다고 사진 올렸더라.
민영 : 그래?
은주 : 근데 그 사람이 너랑 네 오빠가 하는 말을 들었나 봐, 잘못한 거 반성하고 있다고.
민영 : 아, 정말? 그래서?
은주 : 그래서 그 밑으로 댓글들이 아까보다 좀 나아지는 듯 해.
민영 : 정말?
은주 : 응, 아깐 열 개가 다 욕이었는데, 지금은 아홉 개만 욕이야.
민영 : 그 그래, 알았어. 고맙다.
은주 : 민영아, 힘내. 그래도 폐친이 엄청 늘었어.
민영 : 그 그래. 끊자.
민재 : 은주가 네 친구가 확실하네.
민영 : 하아, 정말 답답하네. 연예게 데뷔는커녕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겠다.
민재 : 아니야, 조금씩 너의 진정성을 보여주면 다 이해해주실 거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같긴 해도 또 정이 많아서 진정성 있는 사과만 하면 용서해주고 하잖아.
민영 : 그랬으면 좋겠어.
민재 : 잘 될거야. 참, 그러고 보니 내년이 삼일절 백주년이다.
민영 : 백주년?
민재 : 그래, 백주년.
민영 : 그게 왜?
민재 : 올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될 거 아니야?
민영 : 그러면 뭐가 좋아?
민재 : 너처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방송을 하는거지. 무개념 욱일기념의 참회 방송 뭐 이런 컨셉으로.
민영 : 방송?
민재 : 그래 방송, 예전에 M방송사에서 했던 VJ방송 있잖아.
민영 : VJ?
민재 : 사람들하고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거, 시청자 의견도 받으면서 서로 채팅도 하고 미션도 하는 거.
민영 : 아아, 알아, 알아.
민재 : 어때?
민영 : 오, 좋은데.
민재 :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데 자신 있어?
민영 : 이젠 내 이미지가 아니라 정말 내가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민재 : 좋아, 그렇다면 라이브 스트리밍은 힘들겠지만 녹화방송 정도로 촬영,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려보자.
민영 : 좋아. 근데 주제는?
민재 : 삼일절.
민영 : 삼일절?
민재 : 사실 나도 중국 학술탐방 다녀오기 전까지 삼일절이 왜 중요한 국경일인지 몰랐거든.
민영 : 오빠도? 근데 나도 그렇긴 해. 빨간날이라 쉬는 것만 좋다했지.
민재 : 삼일절을 선택한 이유는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을 했다는 것 하고 그 당시에 일부의 독립운동가만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민영 : 좋아, 그럼 프로그램명을 정하자. 그리고 주입식 방식은 아니었음 좋겠어.
민재 : 그럼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삼일절 Q&A’ 어때?
민영 : 형식은 좋은데 제목은 좀...
민재 : 그럼 어떤 게 좋을까?
민영 : 이런 건 어때? 옛날에 방송에서 했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삼일절편’ 이런 식으로?
민재 : 오, 좋다. 뭔가 테마적으로 접근하면서 시리즈로 방송할 수도 있고.
민영 : 덧붙여서 아이디어를 낸다면 오빠도 출연해야 해.
민재 : 내가?
민영 : 당연하지, 오빠만큼 내 주변에 역사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 없어.
민재 : 내가 할 수 있을까?
민영 : 안중근 의사님에게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야.
민재 : 그 그래, 해보자. 그럼 원고랑 질문지는?
민영 : 오빠랑 나랑 각자 다섯 개씩 준비하고 서로 취합해서 정리하자.
민재 : 좋아, 그 밖에 이슈 사항이 또 뭐가 있을까?
민영 : 머리 좀 어떻게 해봐, 시청자를 위해서.
민재 : 이게 어때서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 넘기며) 이렇게 하면 괜찮아.
민영 : 누가?
민재 : 다들 괜찮다던데.
민영 : 그러니까 다들 누구?
민재 : 엄마.
민영 : 인간아, 좀 나가라, 나가. 진짜 가끔 보면 어떻게 회사 생활하나 싶어, 정말.
민재 : 민영아, 너 핸드폰 사진 평생 핸드폰에 저장할래?
민영 : 오라버님은 볼매인 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알아요.
민재 : 그렇지?
민영 : 다만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는 좀.
민재 : 좀 뭐?
민영 : (뒤돌아서며) 휴우, 솔직하게 말할 수고 없고.
민재 : 뭐?
민영 : (다시 마주 보며) 머리만 이쁘게 자르면 더 잘생겨 보일 것 같다고요.
민재 : 한 번 생각해 볼게.
민영 : 오빠 최고. 내 핸드폰도 부탁해용.
4막
깔끔하게 차려입고 책상 앞에 앉은 두 사람.
민재는 요즘 유행하는 포워드 스타일로 이발도 했다.
민영, 민재 보자마자 깔깔대다 한 대 맞고 책상에 앉아 대본을 보며 멘트 연습을 한다.
민영 : 오빠, 이거 원고가 너무 딱딱한데.
민재 : 그래?
민영 : 내가 상황 봐서 애드리브로 진행해도 괜찮을까?
민재 : 그래, 여기 있는 원고는 어쨌든 설명하는 내용이 주다 보니까 자료 사진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거나 하는 건 대사를 얘기하고 3초 정도 쉬었다가 다시 해야 해.
민영 : 그건 왜?
민재 : 방송에서 영상자료 들어가거나 편집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 시간 공간을 두고 편집을 하거든. 그래야 자연스럽게 앞에 내용과 뒤에 내용이 연결돼. 화면의 끊김 현상 없이.
민영 : 우와, 오빠는 못하는 게 뭐야?
민재 : 나? 없지.
민영 : 있잖아, 딱 하나.
민재 : 뭐?
민영 : 연애?
민재 : 못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거야 안 하는 거.
민영 : 그래? 확실해?
민재 : 야, 여기 계신 분들한테 물어봐, 나 정도면 어디 가도 먹히지, 내가 지금 여기서 저랑 사귀실 분 하면 다 손들 걸
민영 : 오빠, 오늘 관객분들이 다 커플인데.
민재 : 아이고 참, 내가 또 여럿 커플 솔로 만들뻔했네. 그냥 안 물어볼게요. 여러분들 마음 다 내가 아니까.
민영 : 오빠, 처음엔 되게 엘리트 해 보였는데 점점 뒤로 갈수록 허당이네.
민재 : 야, 됐고. 얼른 내용 검토하고 방송 시작하자.
민영 : 당황하기는 귀엽게.
민재 : 흠흠, 그럼 레디 액션.
핀 조명 켜지고 오프닝 음악으로 애국가가 흘러나온다.
민영 : 컷컷, 오빠 이거 음악 선곡 바꾸자.
민재 : 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삼일절 편이잖아.
민영 : 그건 맞는데, 오프닝 음악이 너무 교과서적이야.
민재 : 그래? 삼일절 노래로 할 걸 그랬나?
민영 : 아니, 그게 아니고 뭔가 이슈가 될 수 있게 해야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민재 : 이슈? 호기심?
민영 : 그러니까 시청자가 봤을 때 쟤네는 왜 저런 오프닝 음악을 한 거야? 무슨 생각이 있는 거야? 이렇게 궁금하게 말이야.
민재 : 아 그런가?
민영 : 가만 보면 진짜 아는 건 많은 데 센스는 좀 떨어진다.
민재 : 센스? 얘 봐라.
민영 : 잠깐만 기다려 봐.
민영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것저것 검색한다.
민영 : 기미가요
민재 : 기미가요?
민영 : 오빠, 이거 음악 어떻게 다운 받아?
민재 : 이렇게 다운로드하면 돼, 근데 기미가요를 오프닝으로 쓰려고?
민영 : 가장 명확하게 선전포고를 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
민재 : 오프닝 노래로 선전포고를 한다?
민영 : 사실이게 기미가요인지 모르는 사람들 많을 거야, 근데 방송명은 삼일절, 얘네 진짜 뭐야? 왜 일본 노래를 틀어 할 수 있거든.
민재 : 그럴 수 있지.
민영 : 방송은 어차피 5초 싸움이야.
민재 : 5초 싸움?
민영 : 5초 안에 흥미를 못 끌면 나간다고, 재미없어서.
민재 : 그래서 파격적으로 궁금하게 나가겠다는 거야. 기미가요로.
민영 : 그렇지, 우리가 녹화방송이니까 열 명 아니 백 명 중에 한 명이라도 기미가요를 안 다면 “삼일절 특집 프로그램에서 기미가요를 튼 이상한 남매가 있습니다.”라는 댓글이나 캡처 자료가 돌면 분명히 더 많은 분들이 보러 올 거야.
민재 : 야아, 진짜 너 방송을 아는구나.
민영 : 이번에 몸소 배웠잖아, 어떻게 이슈가 되고 퍼지는지.
민재 : 아 그러네. 큭큭. 너 근데 이거 방송하고 나서 댄스그룹 할 수 있겠어?
민영 : 지금은 그런 생각으로 하고 싶진 않아. 그냥 이 방송에만 집중할거야.
민재 : 오, 멋진데.
민영 : 자자, 그만 놀라고 프로답게 한 번 방송 시작해 봅시다.
민재 : 좋아, 레디 액션.
오프닝으로 기미가요와 일제강점기 영상이 나온다.
민영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욱일기녀로 폐북에서 유명한 역사 무개념 김민영입니다. 이번에 역사에 대한 무식함을 털고 여러분과 함께 삼일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용기 있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겠지만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방금 전에 오프닝으로 나온 노래가 혹시 뭔지 아시나요? 아 모르신다고요? 저 노래는 우리와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의 기미가요인데요. 일본의 기미가요가 어떤 뜻이냐? 궁금하시죠. 지금부터 게임 프로그래머이자 10년 동안 남중 남고 공대 출신 야동 김민재 선생님을 모시고...
민재 : 컷컷, 야! 야동은 빼, 그게 뭐야. 시사 교양에서.
민영 : 오빠. 잘 봐, 내가 야동을 왜 했을 것 같아?
민재 : 웃기려고.
민영 : 아냐, 야동은 일본의 문화침략이니까.
민재 : 문화침략?
민영 : 우리나라 음란물의 80% 이상이 일본 영상물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어. 게다가 내용도 기존에 없는 변태 페티시 문화 등을 영상으로 만든 것들도 많고. 이걸 보는 청소년 또는 성인 남자들에게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아?
민재 : 아니.
민영 : 근데 이게 엄청나게 유입이 된데. 누가 유입을 시킬까? 불법적인 일본 야동을.
민재 : 글쎄.
민영 : 일부러 우리나라에 유포하는 거라면? 잘못된 성의식을 전파하려고.
민재 : 헐, 대박.
민영 : 봤지, 오빠가 야동 김민재를 하는 순간, 또 한 번 시청자들은 얘네 왜 이래, 또는 야동 김민재가 우리 역사 지킴이야, 반전이네.라고 할 거야. 어때? 그림 그려져?
민재 : 그 그런가?
민영 : 오빠는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와.
민재 : 아 이거 너무 간 것 같은데.
민영 : 아니면 친일 김민재 선생으로 하던가.
민재 : 친일 김민재? 그건 또 뭐야.
민영 : 이성적으론 일본을 배척하지만 음 음성적으론 친일 하는.
민재 : 야야, 아니야. 나 그런 거 안 봐. 얘 그러고 보니까 은근히 몰아가네. 오빤 그런 거 안 봐. 나 교회 다녀, 절도 다니고.
민영 : 교회 다니고 절 다니면 뭐 눈이 없어, 뭐가 없어.
민재 : 얘가 카메라 앞에서 별소리를 다 하네, 정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잠깐잠깐 안 되겠다. 내가 방송 시작 전에 멘탈 털리겠다. 그럼 이렇게 해.
민영 : 어떻게?
민재 : 어쨌든 방송이 나오면 청소년들도 보고 할 테니까 야동이나 친일 등 너무 자극적인 말은 피하고 거울 김민재 선생으로 하자.
민영 : 거울?
민재 : 역사는 거울이다. 알지?
민영 : 아, 좋아. 거울을 보며 살자 뭐 이런 느낌도 있고.
민재 : 이게 정말.
민영 : 얼른 큐.
기미가요가 다시 흘러나온다.
민영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욱일기녀로 폐북에서 유명한 역사 무개념 김민영입니다. 이번에 역사에 대한 무식함을 털고 여러분과 함께 삼일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용기 있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겠지만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방금 전에 오프닝으로 나온 노래가 혹시 뭔지 아시나요? 아 모르신다고요? 저 노래는 우리와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의 기미가요인데요. 일본의 기미가요가 어떤 뜻이냐? 궁금하시죠. 지금부터 게임 프로그래머이자 10년 동안 남중 남고 공대 출신 거울 김민재 선생님을 모시고 궁금한 역사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민재 : 안 안녕하 하세 세요.
민영 : 컷컷, 오빠 왜 그렇게 긴장해.
민재 : 카메라 앞에 서니까 엄청 긴장되네.
민영 : 아휴, 내 그럴 줄 알았어.
민재 : 뭘 그럴 줄 알아.
민영 : 카메라 울렁증, 이게 보통 사람한테 힘들거든.
민재 : 어떡하지?
민영 : 어떡하긴, 자 이거 써 봐.
민재 : 이거 뭐야? 각시탈?
민영 : 혹시나 싶어서 준비했는데 이게 좀 도움이 될거야. 가면을 쓰면 심리적으로 안정도 될 테고 또 일본 사람들을 혼내주는 조선의 영웅 각시탈이 우리 역사를 알려주는 게 우리 방송을 보는 사람들한테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민재 : 듣고 보니 그것도 괜찮겠다.
민영 : 가면 쓰고 얘기해봐.
민재 : 어, 조금 답답하긴 한데 덜 떨리긴 한다.
민영 : 그럼 진짜 오프닝 음악 생략하고 바로 시작하자.
민영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욱일기녀로 폐북에서 유명한 역사 무개념 김민영입니다. 이번에 역사에 대한 무식함을 털고 여러분과 함께 삼일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용기 있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겠지만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방금 전에 오프닝으로 나온 노래가 혹시 뭔지 아시나요? 아 모르신다고요? 저 노래는 우리와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의 기미가요인데요. 일본의 기미가요가 어떤 뜻이냐? 궁금하시죠. 지금부터 게임 프로그래머이자 10년 동안 남중 남고 공대 출신 각시탈 선생님을 모시고 궁금한 역사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민재 : 네, 안녕하세요.
민영 : 선생님, 일본에게 있어 기미가요란 어떤 의미인가요?
민재 : 기미가요란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노래인데요, 지금의 일본 국가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민영 : 아? 일본의 군국주의 노래가 지금의 국가라고요?
민재 : 네, 그렇습니다.
민영 : 일본은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정신은 패배하지 않았다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네요.
민재 :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과 양심 있는 일본 내에서도 기미가요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민영 : 국가에서부터 욱일기까지 일본의 뻔뻔함이 드러나네요.
민재 : 그렇습니다. 사실 조금 크게 보자면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법으로 금지시킨 반면에 일본은 이를 더욱 홍보, 활용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큽니다.
민영 : 국내에서도 관련 부분에 대해서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대응체계를 마련했으면 좋겠네요. 그럼 본격적으로 삼일절에 대해 시청자분들의 질문을 토대로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민재 : 네.
민영 : 많은 분들이 왜 삼일절이 중요하냐고 많이들 궁금해하십니다. 사실 삼일절 만세운동을 벌였다곤 하지만 독립이 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삼일절을 국경일로 지정하면서까지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는 걸까요?
민재 : 저도 사실 이와 관련해서 여러 문헌과 자료를 찾아본 결과 전국 단위의 독립 만세운동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삼일운동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에 대해서 이해를 하셔야 하는데요.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날 당시가 일제 식민지가 된 지 십 년 정도가 되었을 때입니다. 그동안 많은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쌀이며 땅이며 자원들을 거의 빼앗기다시피 하며 살았습니다. 그 분노가 쌓이고 쌓인 그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민영 : 고종황제 승하군요.
민재 : 네, 맞습니다. 1919년 1월 21일 새벽에 고종황제가 돌아가시게 됩니다. 당시 명성황후의 사촌동생 민영달은 식혜를 드신 후 몸에 경련을 일으키다 쓰러지고 사후에 몸에서 독으로 인한 증상이 나타났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고종 독살설이 일본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풍문이 퍼지면서 삼일운동을 촉발하게 됩니다.
민영 : 그게 당시엔 풍문이었지만 역사적으로도 확인이 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민재 : 네, 맞습니다. 당신엔 풍문으로 추측했지만 훗날 일본 궁내성의 제실 회계 심사국 장관이었던 구라토미 유자부로가 쓴 일기에도 일본의 직접 개입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에는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지시를 받은 친일파 민병석과 윤덕영이 고종황제를 독살했다는 것을 친일파 송병준이 구라토미 유자부로 장관에게 말한 것을 일기로 남긴 것이 후대에 알려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와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추가적인 조사 없이 풍문으로만 현재까지 추측하고 있을 뿐입니다.
민영 : 왜 그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는 거죠?
민재 : 아시겠지만 일제시대의 자료 대부분은 일본인들에 의해 조작, 날조되어 있으며 관련 자료를 운영 관리했던 간부들 역시 친일파였기 때문에 그 자료 조사와 협조가 어렵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민영 : 나라를 잃은 것도 슬픈데 왕까지 독살을 당했다니 정말 슬프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겠네요.
민재 : 그렇죠, 게다가 당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가 우리나라에도 전파되면서 독립을 꿈꾸던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민영 : 민족자결주의요? 그건 무슨 내용이었나요?
민재 : 민족의식을 지닌 한 집단이 독자적인 국가를 형성하고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서 당시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들이 자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민영 : 그게 3.1절에 앞서 2.8 동경 만세운동을 촉발한 계기가 된 것이군요.
민재 : 그렇습니다. 국내보다 국외에서 관련 소식을 전해 들은 유학생과 지식인들이 비폭력 만세운동을 일본 본토인 동경에서 시작함으로써 일본들의 만행과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표출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맞서 국내에서도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전 세계를 향해 3.1 독립만세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민영 : 여기서 잠깐, 저희가 다녀 온신초등학교에서의 날짜는 3월 27일이었는데 약간의 시간의 차이가 있네요.
민재 : 그렇죠, 왜냐하면 그때는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이메일과 같은 통신기기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전화기가 있긴 했지만 일본이 모든 내용을 검열하고 감시하는 과정에서 동시다발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날 순 없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달여에 걸쳐 전국 232개 부・군 중 229곳에서 약 1,500건의 시위가 벌어졌고, 당시 국민이 1500만에서 2천만 명 있었음을 가정한 상황에서 만세운동에 참가자만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많은 국민들의 참여가 있었던 겁니다.
민영 : 정말 대단하네요.
민재 :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삼일운동이 비폭력 평화 만세운동이었다는 점입니다.
민영 : 비폭력 평화운동이요? 아니 일본 사람들은 무장해서 공격하는데 왜 비폭력 평화 만세운동을 한 거죠? 저는 이해가 안 되네요.
민재 : 앞서 민족자결주의로 인해 촉발되었다고 했죠. 강대국에 의해 강제로 합병된 부당함을 알리는 데 폭력을 쓴다는 것은 일본에게 있어 명분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말의 명분조차 주지 않고 우린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무력에 의해 빼앗김을 비폭력적인 의사로서 독립 만세 운동을 펼친 것이죠.
민영 : 당시 상황을 보면 무모하다 생각될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도 신념과 뜻을 갖고 행동했다는 게 정말 대단합니다.
민재 : 그 정의의 씨앗을 갖고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것이죠.
민영 : 여기서 한 번 박수를 안 칠 수가 없습니다. 아 지금 또 하나의 질문이 들어왔는데요. 삼일운동은 독립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실패한 운동 아니냐라는 의견이 있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민재 : ‘야, 지금 녹화방송인데 어떻게 질문이 들어와.’
민영 : ‘오빠, 편집하면 가능하다며. 우리끼리 정해진 대사대로만 하면 긴장감이 없잖아.’
민재 : ‘아 그렇네, 알겠어.’
민영 : 흠흠, 다시 질문드리겠습니다. 삼일운동은 독립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실패한 운동 아니냐라는 의견이 있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민재 : 결과론적으론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금 더 멀리 보게 되면 우리나라의 독립의 기틀을 마련하는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를 공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를 하게 됩니다. 독립운동을 위한 다방면의 전술과 전략 등도 펼쳐짐과 동시에 국내와 해외에서 양동 작전을 진행하는 등 독립의 정당성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민영 : 아, 그리고 삼일절 하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곤 하는데 사실 저희가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내용을 좀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
민재 : 네, 안 그래도 삼일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기미독립선언서입니다. 단순히 우리나라 독립만을 위한 독립선언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정의 등 철학적 개념과 인류애적 사고를 담겨있으며 훗날 1948년 세계 인권선언보다 앞서 만천하에 세상에 공표했다는 점 또한 삼일절과 기미독립선언문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민영 : 그럼 기미독립선언서를 전문을 보여주시면서 번역해서 읽어주시죠.
민재 : ‘야, 기미독립선언서 전문 자료는 원고에 없었잖아.’
민영 : ‘생각해보니까, 삼일절에서 이게 빠지면 안 될 것 같아.’
민재 : ‘그 생각은 했긴 했는데 다들 지루해하지 않으실까?’
민영 : ‘내가 보기엔 이것 만큼은 원문을 보면서 번역문 낭독을 해드리는 게 더 가슴에 와 닿을 것 같아.’
민재 : ‘알았어, 그럼 잠깐만.’
민재 카메라를 멈추고 컴퓨터에서 자료를 찾는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아 고개를 끄덕인다.
민영 : 기미독립선언서를 전문을 보여주시면서 번역해서 읽어주시죠.
민재 : 흠흠. 다소 길지만 자료화면과 함께 보시면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해 드리겠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
이제 우리는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 주민임을 선언한다.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자존의 올바른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한다.
(우리는)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모아 우리의 독립을 널리 퍼뜨려 알리는 것이고,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며, 전 인류가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는 세계 개조의 큰 뜻을 따르고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독립을 주창하는 것이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며 시대의 큰 흐름이며 전 인류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권리를 얻기 위한 정당한 주장이자 활동이므로, 세상 그 무엇도 우리의 독립을 막지 못할 것이다.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오천 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자유를 억압당하는 고통을 겪은 지 오늘로써 십 년을 넘어섰다.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긴 지 몇 년이며, 정신 발전의 장애를 입은 것이 얼마나 크며, 민족적 권위와 명예가 훼손당한 것은 또 얼마나 막심하며, 우리의 지식과 재능, 독창적인 발상으로 인류 문화의 큰 발전에 이바지하고 도울 기회를 얼마나 많이 놓쳤는가.
오호라, 예로부터 쌓인 억울함을 호소하려면, 지금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면, 민족의 양심과 국가의 위신과 도의가 눌리어 쪼그라들고 힘없이 사그라진 것을 다시 살리고 키우려면, 저마다 자신의 인격을 올바르게 발달시키려면, 불쌍한 아들딸들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우리의 후손들이 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가장 긴급한 임무가 민족의 독립을 이루는 것이다. 이천만이 모두 마음속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인류 공통의 가치와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고, 인륜과 도덕이 무기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는 오늘, 우리가 나아가 얻고자 하면 어떤 강적인들 물리치지 못할 것이며, 물러서서 계획을 세우면 어떤 뜻인들 펴지 못하겠는가!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조약) 이래 수시로 양국 간의 굳은 약속을 저버렸다고 해서 일본의 신의 없음을 비난하지는 않겠다. (일본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생활에서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터전을 식민지로 삼고, 우리 문화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취급하여, 단지 정복자의 즐거움을 누릴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오래고 영원한 사회 기틀과 뛰어난 민족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의 옳지 못함을 책망하지 않겠다. 자신을 탓하고 격려하기에 다급한 우리는 남을 원망할 수 없다. 현재를 돌보기에 바쁜 우리는 예로부터의 잘못을 따질 겨를도 없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오로지 우리 자신을 다시 세우는 것이지 결코 남을 헐뜯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우리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지 절대로 해묵은 원한과 일시적인 감정으로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공명을 세우고자 했던 일본인 위정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지금의 그릇된 현실을 고치고 바로잡아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지배하지 않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겨레가 원해서 된 일이 아닌 양국 병합의 결과가, 근본적인 대책 없는 억압과 차별에서 오는 불평등과 (사회 발전에 대한) 거짓된 통계 숫자 때문에 이해가 엇갈린 두 민족 사이에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도랑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지금까지의 사정을 한번 살펴보라. 용감하고 과감하게 예전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와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친하게 지내는 새 시대를 여는 것이 서로 화를 멀리하고 행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울분과 원한이 겹겹이 쌓인 이천만 조선인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결코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동양의 안전과 위기를 좌우하는 사억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시기를 갈수록 깊게 하여, 동양 전체가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극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가 조선 독립을 선포하는 까닭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의 안전을 지켜나갈 무거운 책임을 통감케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속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되게 하는 것이며, 세계 평화의 중요한 요소로서 동양 평화를 실현하여 전 인류의 복지에 반드시 있어야 할 단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졸렬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느냐.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온다. 지나간 세기를 통하여 깎고 다듬어 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로운 문명의 찬란한 빛을 인류 역사에 던지기 시작한다. 새봄이 온 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한다. 찬바람과 꽁꽁 언 얼음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지난 시대의 불길한 기운이었다면, 온화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으로 서로 통하는 것이 다가올 시대의 상서로운 기운이니, 하늘과 땅에 새 생명이 되살아나는 이때에 세계 변화의 도도한 물결에 올라 탄 우리에게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그 어떤 것도 없다.
우리는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조선 민족의 우수함을 꽃피우리라.
그래서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전진하니, 남녀노소 구별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할 것이다. 천만년을 이어오는 조상들의 넋이 우리를 안으로 지키고,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니,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곧 성공을 이룰 것이다. 오로지 저 앞의 빛을 따라 힘차게 전진할 따름이다.
공약삼장
하나, 오늘 우리들의 거사는 정의·인도·생존·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올바른 의사를 당당하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먼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조선 나라를 세운 지 사천이백오십이 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흥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민영 : 그러고 보니 민족대표 33인의 이름도 담겨있군요.
민재 : 네, 맞습니다. 정작 글은 33인이 썼지만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아 이를 학생들이 선포하면서 삼일절 만세운동이 펼쳐지게 된 것이지요.
민영 : 아, 민족대표 33인이 공표한 게 아니었나요?
민재 : 삼일절 당일 지금의 파고다 공원이 아닌 태화관에 모여있다가 만세운동이 펼쳐진 직후 경찰에 자수하게 됩니다.
민영 : 자수요?
민재 :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긴 합니다. 하나는 독립만세운동 주동자 역할을 자처했다는 얘기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삼일 만세 운동 이후 일부 민족 대표가 친일파로 변절한 것을 보면 후자의 근거도 설득력은 있어 보입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민영 : 민족대표에 친일파가 있다니 정말 속상하다는 의견과 조금 더 공부해서 알려달라는 시청자 분의 의견이 방금 올라왔네요.
민재 : 아, 네. 참고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추후 다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민영 : 점점 시청자 수가 늘어나는 거 보니 방송할 때 보다 더 철저한 준비를 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민재 : 그렇습니다. 앞서 민영 씨의 욱일기 방송과 같이 잘못된 역사관과 입시위주의 교육이 만든 지금의 문제들, 시청자 여러분이 저희와 함께 바꿔나가면 좋겠습니다.
민영 : 아, 너무 장시간 진지하게 삼일절에 대해 설명을 하다 보니 이 곳에 함께하신 관객분들이 졸고 계신데 무슨 재미난 이야기는 없을까요?
민재 : 재미나진 않지만 삼일절이 왜 3월 1일에 하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민영 : 아니요, 3월이 시작하는 첫날이라서 3월 1일이 된 것은 아닌가요?
민재 : 사실은 3월 3일 거사를 계획했으나 그 날이 고종황제의 제삿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날짜를 바꾸는데 3월 2일은 일요일이라 민족대표 중 기독교인들의 반대로 3월 1일 토요일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민영 : 아, 그렇죠. 개신교 분들에게는 주일이니까요. 그때에도 일요일에 종교일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네요.
민재 : 그렇죠?
민영 : 자, 오랜 시간 삼일절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저희가 공부하고 알아본 것 중에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나 문제가 있다면 아래 이메일 주소로 보내주시면 논문과 역사 전문가분들에게 조언을 구하여 잘못된 역사 사실은 바로 잡는 정정 방송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시청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십니까?
민재 : 우리가 역사를 모르는 것에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힘든 고초를 겪으며 지켜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길을 우리가 걷고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역사는 교과서가 아닌 우리의 삶 속에 있을 것입니다.
민영 : 오 정말 의미 있는 말씀이네요.
민재 : 감사합니다.
민영 : 그럼, 이것으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첫 방송 삼일절 편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민재와 민영, 일어나서 인사하고 암전.
5막
민재,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다.
“똑똑.”
민영 : 오라버님, 뭐하세요.
민재 : 보면 몰라, 일하지.
민영 : 맨날 오락하는 것 같은데 그게 일하는 거 맞아?
민재 : 타산지석, 재미있는 오락을 해서 왜 재미있는지 혹은 왜 재미가 없는지 알아야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하지.
민영 : 오, 그런 깊은 뜻이.
민재 : 뭐든 행동에는 뭐가 있다?
민영 : 의도!?
민재 : 어이구, 우리 민영이가 지식 레벨이 올라갔네.
민영 : 오빠!
민재 : (계속 컴퓨터 게임하며) 왜?
민영 : 고마워.
민재 : 뭐가? 야, 나 잘못하면 죽어. 얼른 나가봐.
민영 : 아니 그냥 고맙다고.
민재 : 얘가 왜 안하던 소리를 해. 돈 필요해?
민영 : 오빠 덕분에 조금이나마 펜들이 생겼어.
민재 : 원래 펜들 있었다며? 어어, 안 안돼.
민영 : 숫자만 늘리기 위한 폐북용 펜이 아닌 진짜 나를 아껴주는 펜들 말이야.
민재 : 죽었네, 다시 시작해야겠군. 그래서?
민영 : 계정 삭제하고 그 동안 꿈꾸었던 가수도 접을까 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부족한 방송이지만 사람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응원하는 댓글들도 생기고 또 격려해주신 분들도 있고.
민재 : 그럼 이제 개년 아니 개념녀가 된건가?
민영 : 쪼금 개념녀? 그 정도는 된 것 같아. 개념녀는 바라지도 않고.
민재 : 그래? 그럼 다행이네.
민영 : 참, 그리고 아까 은주한테 전화왔는데. 페북 댓글에서 상당수가 오빠에 대해 궁금해 한다던데.
민재 : 나를?
민영 : 응, 각시탈 가면 속 남자, 너무 박식하고 멋지다고 다들 궁금하데.
민재 : 정말?
민영 : 그래서 각시탈이랑 인증샷 하나 찍으라고.
민재 : 가면 벗고?
민영 : 아니. 찍으면 신비감 사라질 것 같으니까 각시탈 쓰고.
민재 : 뭐야. 그럼 그냥 네 친구한테 가면 씌우고 찍어.
민영 : 오빠 우리 진정성!
민재 : 이럴 때는 진정성 없어도 되거든.
민영 : 아냐, 이번에 확실히 알았어. 사소한 것이라도 약속은 지켜야 하고 또...
민재 : 또 뭐?
민영 : 오빠가 은근히 각시탈이 잘 어울린다는 거!
민재 : (컴퓨터로 돌아앉으며) 에휴, 됐다. 나가, 나 일하게.
민영 : 여기서 잠깐.
민재 : 또 왜?
민영 : 인터뷰가 들어왔습니다.
민재 : 인터뷰?
민영 : 응, 청소년 역사지킴이 단체에서 연락이 왔어.
민재 : 어떤 내용으로.
민영 : 동영상을 기획하게 된 계기, 그리고 혹시 청소년 역사탐방에 해설자로 같이 해줄 수 있냐고 말이야?
민재 : 너?
민영 : 아니, 우리.
민재 : 대박. 코스는?
민영 : 우선은 우리 동네부터 탐방해보고 시간과 장소, 참여 학생들에 따라서 조금 더 확대해보면 좋을 것 같데.
민재 : 이게 또 이렇게 이어지네.
민영 :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나, 보람도 있을 것 같고.
민재 : 그러게, 정말 잘 됐다.
민영 : 아, 그리고 중요한 거 한 가지.
민재 : 또 뭔데?
민영 : 오빠 가면 꼭 챙겨야 해.
민재 : 또 왜?
민영 : 역사탐방 제목을 내가 제안했거든.
민재 : 뭐라고?
민영 : 각시탈과 함께 떠나는 역사탐방이라고.
민재 : 뭐야!
민영 : 오빤 가면 쓸 때가 제일 멋있어.
민재 : 야!
민영,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는 민재를 피해 방 밖으로 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