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다 보면 날고 있을 거야

2016 항공문학상 공모전 낙선작

by 꿈부자

1. 비행기를 만나다.


“여러분, 오늘은 부모님을 그리는 시간이에요, 각자 스케치북에 부모님을 그려보세요.”

샛별반 유치원생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하며 스케치북에 하나 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빠와 엄마, 두 손을 잡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복사한 듯 스케치북 위에 그려졌다.

그에 반해 나는 그림을 그릴 엄두를 못 내었다.

‘부모님’

“창수는 왜 안 그리니?”

선생님이 내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아빠를 그리고 싶은데 아빠 얼굴이 생각이 안 나요.”

아빠라는 말과 함께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창수야, 그럼 아빠 하면 생각나는 걸 그려봐, 그래도 괜찮아.”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생각나는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민주는 아빠랑 엄마랑 소풍 간 걸 그렸구나, 참 잘했어요. 자, 다음은 창수 그림.”

나는 쭈뼛대며 스케치북을 선생님에게 건넸다.

“음, 창수는 엄마랑 창수만 그렸네. 여기 창수 손에 든 비행기는 뭐야?”

“아빠요, 아빠가 비행기 타고 가셨어요. 먼 나라로.”

“뭐야, 아빠 없나 봐.”

한 친구의 말에 애들이 웃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왔다.

“아니야, 우리 아빠 있어. 이제 곧 오실 거야. 일하러 간 거란 말이야!”

“자자, 조용, 조용. 창수 아버님은 지금 외국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창수가 어릴 때 비행기를 타고 가셔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창수 아빠 없다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알았죠?”

“네.”

“창수가 그래도 기억력이 좋네, 아빠가 타고 간 비행기를 그리고, 나중에 크면 창수가 아버지 비행기 태워주면 좋아하시겠다. 잘했어요.”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에 비행기 조종사라는 하나의 꿈을 갖게 되었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만큼, 운명처럼 말이다.


2. 꿈의 장벽


“장래희망에 대통령 쓴 놈 누구야?”

여기저기서 키득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김민석! 너인 거 다 알아. 진짜 대통령이 꿈이냐?”

민석이는 당당하게 일어나,

“네,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어떤 대통령이 될 건데?”

“학력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걸 다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 박수 한 번 쳐줘라!”

친구들이 선생님의 말에 의아해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민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 앉았다.

“여기서 민석이가 대통령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봐라.”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금세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정신머리 없는 놈은 민석이 하나구나. 너희는 이제 더 이상 장난으로 장래희망을 정할 때는 지났다. 너희가 가고자 하는 학교에 따라 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정말 민석이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장면 배달원이 될 수도 있다. 직업의 귀천은 없다. 하지만 너희가 보는 시선은 분명히 다르겠지? 어쨌든 성적에 맞춰 간다는 생각하지 말고 목표에 맞춰 진로를 정하는 게 후회 없는 길이다. 알겠냐?”

“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선생님. 질... 질문 있습니다. 전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은데 어떤 학교를 가야 합니까?”

“넌 널 받아주는 학교로 가라. 네 성적관리를 해야 진로를 정하지! 지금 성적으론 비행기 조종사도, 학교 진로의 선택권도 없으니까. 알겠어?”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내 성적은 반대에서 하위권이었고 선생님의 말씀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날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한 동안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수업시간의 종이 울리고 하교의 종이 울릴 때까지.

수업이 끝난 후 담임선생님의 교과서 위에 그려진 비행기를 보며 결심했다.

다음 기말고사에서 어떡해서든 백점을 맞겠다고.


한 달 후 찾아온 기말시험.

지난 중간고사와 달랐다.

열심히 공부한 덕에 의외로 문제의 답이 눈에 보였다.

평균 76점.

전보다 성적은 올랐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코를 납작하게 하진 못했다.

그래도 안 한 것보다 나아진 걸 확인했다.

또한 내가 가고자 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일 년이다.

공부하자, 아니 공부해보자!


3. 한 발 더 가까이


고등학교 입학 후 학교 게시판에 공군사관학교 모집요강이 붙었다.

한 참을 보고 있자니 지금의 성적으론 택도 없다는 게 실감되었다.

“김창수, 너 우리 학교였어?”

“어, 어.”

“뭐야, 우리 학교 커트라인이 그렇게 낮았나?”

고개를 갸웃대는 민석이 뒤로 까만 막내기가 딱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아야, 누구야, 씨이... 안녕하세요.”

“씨발?”

담임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선생님, 전 누가 장난치는 줄 알고.”

“너 어제도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치고 갔지? 얼른 들어가, 너희 담임선생님한테 말하기 전에.”

민석이는 가볍게 목례를 하곤 자리를 피했다.

“네가 창수구나. 중학교 성적표 보니까 뒤늦게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던데, 열심히 해봐. 그리고 장래희망에 비행기 조종사라고 쓰여 있던데, 맞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장래희망이 대부분 의사, 검사, 공무원인데 비행기 조종사라니까 되게 멋지다야. 너도 알겠지만 공군사관학교 가려면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애들이 다 오니까 성적도 챙기면서 체력관리도 잘해야 해, 그거 알지?”

“네.”

“너 공사 가려면 목소리부터 키워야겠는걸? 파이팅해!”

“고맙습니다.”

“고맙긴, 나중에 조종사 되면 선생님 잊지 말고 태워줘. 해외여행 갈 때 제자가 태워주는 비행기 한 번 타보게.”

선생님은 내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종소리에 맞춰 교실로 걸음을 옮기셨다.

또 열심히 공부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4.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김창수, 나와!”

선생님이 목소리가 교실 문밖에서부터 들려왔다.

우렁찬 목소리와 달리 들뜬 얼굴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우선 선발로 공군사관학교에 합격하였다, 모두 박수!”

“오오, 대박, 대박사건.”

“일어나서 친구들에게 합격 소감 한 번 말해봐!”

선생님은 자기가 합격한 것 마냥 한껏 상기된 채 말씀하셨다.

내가 엉거주춤하자 옆에 친구들이 얼른 일어나라며 재촉했다.

“나 나는 어릴 때 아버지가 외국으로 가시는 비행기를 보면서 꿈을 키웠어. 사실 비행기를 막연히 좋아했다가 중학교 때 알았지, 좋아만 해서는 안 되는구나. 그래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는데, 진짜 합격할 줄은...”

괜스레 가슴이 울컥했다.

말하면서도 떨리는 내 가슴의 진동이 느껴졌다.

잠시 말을 멈추고 크게 한 숨을 쉬었다.

“사내자식이 언제까지 그렇게 새가슴을 할 거야! 공사 가서도 그럴 거야?”

선생님이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말씀하셨다.

“아 아닙니다. 이제 진짜 조종사가 돼서 언젠가 너희들이 내가 조종하는 비행기를 탔으면 좋겠어. 축하해줘서 고마워!”

“너 이름 대면 공짜로 태워주냐?”

“어, 어? 음... 너만 빼고?”

난생처음 던진 농담에 친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는지 나도 친구들도 한참을 웃었다.

언젠가와 달리 오늘의 웃음이 교실 창밖의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닿기를 바랐다.

내 꿈과 내 바람을.


5. 시작과 끝


“너희들이 공군사관학교에 온다고 해서 누구나 다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 하나도 빈틈이 보인다면 그건 곧 사고로 이어진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너희가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조종사로 인정받는 그 날까지 한 시도 긴장을 늦추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조언이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공군사관학교에서의 첫날은 조종교육 수업을 총괄하는 김대령 님의 훈령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얼마 되지 않아 현실이 되었고 처음 입소 때 함께 했던 40여 명의 동기들 중 6명은 자진포기, 그리고 3명은 크고 작은 사고로 인해 조종사의 길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지겨운 마지막 낙하훈련이다. 오늘 한 번 제대로 된 피날레를 장식해야지.”

“장난칠 생각하지 마, 오늘 훈련에서 행여나 문제 되면 조종사가 될 수 없다는 거 몰라?”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 이번 훈련은 우리에게 추억을 주기 위한 낙하훈련이라고. 스카이다이빙의 스릴 한 번 제대로 즐겨보자. 이런 기회는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난 안 할래, 다른 애들이랑 해!”

“너 빠지면 재미없지, 분대장이 왜 이래?”

“모두 집중해라!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너희가 처음 낙하훈련을 받을 때와 달리 무척 쉬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만심은 꼭 사고를 일으킨다. 우리 군인은 언제 어디서나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기억해라, 너희는 우리나라 하늘을 지키는 공군이다. 너희의 생명은 곧 나라의 재산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마지막까지 하늘을 만끽하며 조종사로서 나아가는 마지막 관문을 무사히 마치길 바란다. 자, 1분대부터 낙하!”

“낙하!”

하늘을 수놓듯이 동기들이 하나 둘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조종석에서 고도 위치와 낙하점을 확인하는 무전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뛰어!"

"뛰어!"

대답과 함께 비행기에서 힘차게 뛰어내렸다.

자유로운 허공 위로 뛴 나는 설렘과 긴장감을 체감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벌써 내 머리 위로 멀리 가버린 비행기와 앞서서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동기들까지.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짠해졌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닌 조종사로서의 시작이란 생각에 다시금 기대가 부풀었다.

“야, 준비해!"

뒤따라 온 정민이의 목소리에 하나 둘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하트! 하트!”

처음 하는 동작임에도 다들 각자의 자리를 잡아가며 대형을 만들었다.

모두의 표정엔 여유와 기대감이 가득했다.

“창수야, 이거 받아!”

“이거 구명탄이잖아?”

“네가 오늘의 주인공이야! 사랑의 큐피드를 부탁한다.”

빠른 하강 속에서 비스듬한 하트 대형이 만들어졌다.

내가 구명탄을 터뜨리고 그 사이를 지난다면 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큐비트가 될 것이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소리쳤다.

"지금이야!"

손으로 구명탄의 바닥을 세 차례 세 개 치자 치익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저 하트 안으로 들어가면 이 퍼포먼스도 오늘의 추억도 공군사관학교에서의 훈련도 끝이다.

진짜 조종사가 된다.

나는 구명탄의 연기가 불꽃과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 하트 대형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순간 돌풍이 불며 대열이 술렁였다.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정민이와 부딪히면서 내 몸에 있는 낙하산 줄이 그에게 엉키었다.

“아악, 눈이 안 보여.”

정민이는 구명탄 연기에 눈을 비비며 소리쳤다.

나는 황급히 구명탄을 버리고 그에게 걸린 줄을 손으로 더듬더듬 따라가 봤지만 풀리지가 않았다.

둘의 몸이 하나가 된 바람에 다른 동기들에 비해 낙하속도가 두 배는 더 빨라졌다.

고도는 이젠 낙하산을 펼쳐야 할 1,500m 상공에 다다랐다.

10초 이내에 구조하지 못하면 나도 정민이도 위험하다.

사고를 직감한 동기들도 대열에서 흩어져 낙하산을 하나 둘 펼 준비를 하였다.

낙하산을 펼 칠 때 대원들이 뭉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건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정민이도 나도 서로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하면 할수록 바람과 낙하 속도에 우리의 줄은 더더욱 엉키는 듯했다.

"빨리 풀어, 빨리 풀라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정민이는 어느새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푸드득 푸드득

하나 둘 옆에서 펼쳐지는 낙하산들

점점 지면과 가까워짐에 나도 정민이도 더더욱 긴장되기 시작했다.

"야, 너희들 뭐해. 정신 안차려."

무전기로 대령님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비상시 사용할 나이프를 가까스로 찾아 칼을 꺼냈다.

그리고 내 오른쪽 낙하산 줄에 걸린 정민이를 떼어내기 위해 내 낙하산 줄에 칼로 끊어내기 시작했다.

"창수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괜히 하자고 해서, 엄마 아빠 미안해요. 사랑해요."

이제 정민이는 울면서 고해성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정민, 정신 차려. 아직 안 끝났어. 눈은 괜찮아?"

"아 모르겠어, 잘 안 보여."

"내 말 잘 들어, 내가 지금이야 라고 외치면 무조건 발로 날 밀어. 알았어?"

"그러면 넌?"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고도는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1,000

900

800

"서둘러! 고도가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정민이 한쪽 눈을 감은 채 고도기를 보며 말했다.

"언제부터 낙하산 줄이 이렇게 튼튼했냐?"

"농담이 나오냐, 지금 750이야."

"됐다, 지금이야, 발로 밀어."

정민이가 날 발로 미는 순간 그의 어깨 밑의 낙화산 줄을 당겼다.

터턱 하는 소리와 함께 푸드득 낙하산이 펼쳐지며 정민이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고마워. 창수야!"

대답할 시간은 없었다.

그는 올라가고 나는 더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내가 끊었던 줄은 낙하산을 당기는 줄이였다.

오른쪽과 왼쪽 동시에 당기지 않으면 낙화산은 정확히 펼쳐지지 않는다.

고도는 더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700

600

최저 안전 높이를 지나쳤다.

1초 1초가 급박했다.

내 손은 갈 길을 잊은 채 허공만 허우적댔다.

하강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나는 계속해서 읊조렸다.

침착해, 침착해!

“야, X 끼야, 정신 안차려! 빨리 줄 당겨! 당기라고!”

“오른쪽 줄이 안 잡힙니다."

“왼쪽! 왼쪽! 비상 낙하산, 비상 낙하산! 아래 고정 훅 풀고 잡아당겨, 어서!”

대령은 그 상황에 자신이 있는 것처럼 급박하게 소리쳤다.

500

400

한계선을 다다라서 존재를 잊고 있던 비상 낙하산 줄을 잡아당겼다.

하강 속도에 의해 낙하산이 안 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발, 제발, 제발."

터턱, 푸르륵퍼퍽.

비상 낙하산이 쉭쉭 거리는 귓가에 포근한 공기를 머금으며 펼쳐졌다.

"하아, 살았다."

그리고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유유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날 내려준 비행기는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고 말이다.


낙하 훈련이 끝난 후 정민이는 국군 수도병원으로, 나와 동기들은 군기교육대로 입소하게 되었다.

군기교육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자마자 김대령 님의 호출이 있었다.

“짧게 말하겠다. 네가 그동안 열심히 한 것,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이번 사고도 또 실수도 난 용납할 수 없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조종사의 꿈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낙하 훈련은 실수였습니다. 다시는 그런 실수는 없을 것입니다.”

“실수? 실수 한 번이면 너만 죽는 게 아니라 국민도 죽고 우리 공군의 안보도 무너지는데 그 실수를 믿어달라고? 게다가 너의 꿈? 내가 한 마디만 더 하지! 나의 꿈은 비행기 조종사 이전에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게 꿈이다. 이게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대령은 곧바로 전화로 박소령을 호출했다.

그리고는 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비행기 조종사의 꿈은 기억해라, 방법은 다를지라도.”

얼마 후 의무관을 통해 들은 소식에 의하면 정민이는 시력 이상으로 조종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나 또한 인사사고의 책임을 물어 조종사 응시 자격이 박탈되었다.


6. 지상에서의 공중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국민항공에 입사하게 된 김창수라고 합니다.”

“어, 창수야! 나야 민석이. 너 조종분야로 공사 졸업한 거 아니었어?”

“그 그게 일이 좀.”

“아는 사이냐?”

“네, 저 중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저는 삼수해서 간신히 항공대 들어갔는데, 얘는 중학교 때부터 공부 엄청 못했다가 뒤늦게 공부해서 공사 간 아주 독한 놈이죠. 여하튼 반갑다.”

“자, 사담은 나중에 하고 다들 알겠지만 비행기가 뜨는데 가장 중요한 건 안전점검이다. 비행기 구석구석 어디 한 군데서라도 기름 한 방울 떨어지면 그건 대형 사고다. 너희가 뛰면 비행기는 난다. 신입도 이 말 꼭 기억하고 격납고에 대기 중인 비행기 점검부터 시작해.”

민석은 학창 시절 때와 마찬가지로 무척 밝고 활달했지만 그 전과 달리 하나부터 열까지 무척 꼼꼼했다.

그리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저게 내가 처음 점검 한 비행기야, 지금은 A항공사에 팔렸지만 연식대비 아직도 건재하다고,”

민석의 눈길이 힘차게 이륙하는 비행기에 시선이 꽂혔다.

‘너희가 뛰면 비행기는 난다.’

한 달, 두 달하다 어느새 반년이 지났다.

조종사로서의 꿈은 사치처럼 느껴지는 반복된 일상들...

비행기가 뜰 때마다 내 마음도 공허하게 떴다.

이렇게 지내야 할까?

그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독처럼 우울하게 내 가슴에 퍼지기 시작했다.

넌 여기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라고.


처음에 내가 조종사의 꿈을 가진다고 했을 때, 반심 반의 하던 가족과 친척들.

반에서 중간의 성적도 못하던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전교 10등이 되면서 가족들의 의심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도리어 내 자식, 내 조카의 성공을 장담하며 나와 그들 간의 관계는 급속도로 친해져 있었다.

그랬다.

난 우연히 아버지가 그리워 그렸던 비행기에서 내 꿈을 만났고, 그게 거짓말처럼 비행기 조종사란 직업을 꿈꿨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그 이외에 생각이 하지 않았던 나만의 의무 아닌 의무로서 조종사가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난 이제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여유와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 크고 무거운 비행기 몸체를 점검하며 말이다.


곧 추석이 돌아온다.

졸업 후 민간항공사에 취업해 조종사가 될 거라 생각하는 어머니에게 차마 조종사가 아닌 정비사란 말씀을 드리진 못했다.

조종사만큼 정비사도 중요한 일을 합니다.라는 말이 아직까지 나에게도 납득되지 않았다.

당분간 아니면 영원히 되지 않을 것만 같다.


7. 뛰면 난다.


한 어린아이가 공원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손으로 휘익하고 던지자 금방 툭 하고 떨어진다.

옆에 있던 아빠가 아이의 종이비행기를 줍고는 타닥타닥 발소리를 내며 뛰다 휙 하고 던졌다.

종이비행기는 공원 위를 빙그르르 돌고 바람을 따라 날아가 나무 뒤편 잔디밭에 착륙했다.

아이도 금세 아빠처럼 종이비행기를 잡아 뛰면서 던졌다.

아까보다 더 오래 하늘에서 머물다 내려왔다.

몇 번을 뛰고 몇 번을 던졌는지 숫자를 잊을 만큼 한 참을 지켜봤다.

비행기의 코가 납작해져서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창수야, 미안한데 오늘 비번 좀 바꿔줘라.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나 약속 있는데 어쩌지?”

“제발, 사정 좀 봐줘. 김 반장님한테 간신히 허락받았단 말이야. 다른 사람 다 전화해봤는데 너 말고는 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래. 응? 내가 밥 한 번 아니 두 번 살게.”

“야, 야.”

“고마워.”


사실 선약은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일이 재미가 없었으니까.

“A항공 정비팀, 24번 게이트로 긴급 출동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A항공 정비팀, 24번 게이트로 긴급 출동 바랍니다.”

사고가 났다. b2134편 비행기에서 에러코드가 발생하여 이륙 20분 만에 긴급 회항했다.

원인은 엔진 결함으로 판단된다고 하였다.

본사에서는 대체 항공편으로 진행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b3208편은 동일한 기종이긴 했지만 아직 정비점검이 완료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국내선은 하루 이내, 국제선은 48시간 이내로 점검을 해야 한다.

다행히도 국내선 비행기였지만 오전부터 진행한 점검을 마치려면 최소한 3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잘 들어, 바쁘다고 해도 우리가 중요한 건 기본적인 사항들이야, 우리가 매일매일 지루하게 반복하지만 그중 어느 것 하나라도 이상이 있으면 비행기가 뜨면 안 돼! 그건 나 하나의 실수의 문제가 아니야, 본사에서 컴플레인 들어와도 내가 책임질 테니까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보도록! 기름 한 방울이라도 비취면 바로 무전 치고, 자! 시작!”

오늘따라 김반장 님의 목소리에 결의가 들어가 있다.

그동안에도 늘 그러했지만, 긴급 회황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욱이 엔진 결함 원인으로 회항하였음에도 정기점검 중인 대체 항공편이 지연된다면 영업 운영 측에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정비팀의 책임을 제기할 것이다.

그들에게 결과는 비행기에 몇 명이 타고 몇 번을 이송 가능하며 지연으로 인한 할인 비율과 항공 벌점을 최소화해야 하니까 말이다.

영업 운영 측에서 수시로 무전이 들어왔다.

처음에 알겠다며 수긍했던 김반장 님도 급기야 소리치며 무전기를 끄셨다.

“미친놈들, 말이나 돼! 평소에 고장 안 났으니까 대충하고 비행기 대기시키라는 게.”

김반장 님의 입에서 참았던 욕이 터져 나왔다.

“엔진 결함이야, 제조사 문제지. 그게 왜 우리 팀 문제야! 번듯한 옷만 입으면 뭐라도 되는 냥, 비행기에 대해 알긴 뭘 안다고.”

“반장님, 바퀴 아래서 기름자국이 있습니다. 확인 바랍니다, 오버!”

“오늘 아주 날 잡았구먼!”

반장님과 나는 엔진 기본 검사를 마치고 바퀴 검사를 하러 뛰어 내려갔다.

“라이트 비춰봐, 아니 거기 말고 실린더 유압이 세는 건가? 창수야, 유압 호스 라인 위에서부터 확인해봐. 혹시 모르니까 호스 입구 다시 조이고, 밸브 플러그 깨진 데 있나 보고.”

“반장님, 김 부장님이 점검 완료 도장 찍었으니까 비행기 대기시키라고 하는데요, 어떡하죠?”

“미쳤구먼! 내가 도장을 안 찍었는데, 지가 비행기에 대해 뭘 안다고 난리야, 난리가. 그래서 몇 시까지 대기래?”

“게이트까지 40분입니다.”

“골 때리네.”

“실내 점검팀도 기본 사항 확인 후 내려와서 바퀴 주변 다 수색한다. 오버.”

얼마나 지났을까 매일 보고 또 보던 그곳이 왜 이리 생소하고 어색한지 스쳐 지나갈까 싶다가도 내가 놓친 기름방울이 엔진 고장으로 인한 비행기 회항보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단 생각에 아찔해졌다.

“창수야, 침착하자! 침착해!”

혼잣말을 되뇌며 바퀴 조향 실린더에 연결된 호스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때 실린더에 하부에 붙은 스톱 밸브 주변에서 기름 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유압유다.’

밸브에 붙은 두 개의 호스를 하나하나 마른 거즈로 닦아보았다.

두 군데 모두를 닦았지만 거즈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반장님, 기름방울 떨어지는 곳은 찾았습니다만 호스는 아닙니다. 실린더 롯드와 튜브 사이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 조인트 부분 만져봐, 어때?”

“아무 이상 없습니다.”

“실린더 밸브 위에 거즈로 닦고, 손가락 대고 만져봐.”

“잠시만요. 네, 찾았습니다. 스톱 밸브 플러그가 깨진 것 같습니다. 아니 밸브 코일이 깨진 것 같습니다.”

“알겠어, 순철이 넌 코일, 스풀, 유압호스 챙기고, 정일이는 고소작업대 끌고 와. 주기원은 김 부장에게 연락해서 30분만 더 지연 요청해봐. 창수는 거기 말고 다른 데서도 세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하고. 위에서 떨어지는 걸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 다시 잘 보고 있어!”

"네."

무전기를 통해 일사불란한 지시와 업무 분담이 이루어졌다.

교체 부품 차량이 들어오자 김반장 님이 뛰었다. 뒤이어 박 과장님도 정일이도 덩달아 뛰었고, 나 역시 연병장을 뛰듯 열심히 뛰고 또 뛰었다.

"김 부장이 무조건 대기시키랍니다."

"미친놈."

김반장과 우리들은 거짓말처럼 30분도 채 되지 않아 정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10분 동안 다시 한번 기내 곳곳을 뛰어다니면서 교차 검사를 하였다.

지연 최소 시간 2시간은 지켜졌다.

영업운영팀은 수고했다는 김 부장님의 짧은 인사가 무전으로 전해져 왔다.


비행기가 떴다.

그동안 수많은 비행기가 내 손에 들린 이 체크리스트의 동그라미에 의해서 하늘 위로 날아갔다.

오늘도 날았다.

다만 평소처럼 깨끗하고 깔끔한 패널 위의 종이가 아닌 구겨지고 기름방울, 땀방울에 얼룩진 체크리스트 너머로.

항공사에 입사 후 이렇게 오랜 시간 이륙하는 비행기를 본 건 어릴 때 어머니가 아버지가 타고 있다며 가리킨 비행기를 보고 처음이었던 것 같다.

비행기 조종석에 운전대를 잡겠다던 내 손과 내 꿈.

오늘 나는 꿈을 이뤘다.

내가 뛰면 비행기는 난다.

내손에서 던져진 저 비행기가 유난히 밝은 빛을 반짝이며 하늘 높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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