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전국 직장인 신춘문예 낙선작

by 꿈부자


"야, 뭐야?"

"돌대가리"

"뭐?"

"너 돌대가리라고 이 자식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먹이 날아왔다.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내가 몰랐던 나의 존재.

돌대가리라서 맞은 것 같다.

그리고 문득, 신발 안에 돌이 걸리적거린다.

지금 그런 느낌이다.


사회에 나와서는 그런 말을 들을 리 없다 생각했다.

꾸역꾸역 대학은 나왔다.

사회에 나오니 나보다 못한 대학에 나온 친구들도 꽤 되었다.

어깨가 으쓱할 건 아니었지만 굳이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다시 듣게 된 돌대가리.

"야, 너 겨우 이것밖에 못하냐? 너 몇 년 차야?"

"삼 년 차입니다."

"허이고, 삼 년이면 척하면 척이겠다."

"..."

"돌대가리도 아니고 같은 포맷에서 카피 몇 줄 바꾸는 게 그렇게 어려워? 그럼 이 일 그만둬야지. 응?"

"카피 몇 줄을 바꾸면 디자인 콘셉트도."

"알아, 알아! 그러니까 말하잖아. 애초에 그런 거 고려해서 접근해야 할 것 아냐? 디자이너가 기획하냐? 개발자가 기획해? 네가 해야 쟤들이 일을 하지. 설계도면을 그려줘야 집을 지을 거 아냐? 기술자들이."

"..."

"됐다, 가 봐. 가란다고 집에 가지 말고 오늘까지 끝내 놓고 내 자리에 올려놓고 가.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실내화에서 구두로 갈아신었다.

시계는 어느덧 11시가 조금 넘었다.

"무사히 하루가 끝났구나."

여기서 무사히는 회사에 사표를 내지 않고 옥상에서 몸을 던지지 않고 상대방에게 주먹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난 책임져야 할 게 많으니까.


오늘은 아침부터 공기가 무겁다.

안개가 자욱한 게 운전하기가 왠지 꺼려진다.

'지하철 타고 갈까? '

'서서 가야 할 텐데?'

'운전하고 갈까?'

'눈이 불편한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 끝에 차를 끌고 가기로 했다.

야근하면 돌아올 택시비가 기름값보다 비싸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앞섰다.

'야근은 현실이다.'

쓴웃음이 나왔다.

차는 예상대로 밀렸다.

차에 타기 전 슬리퍼로 갈아 신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남대교 초입부터 밀리기 시작한 차들은 대책 없이 빵빵거리기만 했다.

빵빵 빵빵

8시 20분을 넘어서자 주 과장의 전화가 온다.

받지 않았다.

또 전화가 온다.

받지 않았다.

받으나 안 받으나 욕먹는 건 매한가지 나름 삶의 지혜다.

띵똥

문자가 왔다.

"어디냐? 큰일 났어."

매번 같은 문자.

왜 나에게는 끝도 없이 큰일이 발생하는지 알 수 없다.

주 과장의 큰일은 늘 생각만큼 크지 않았음에도 문자는 늘 큰일이었다.

내성이 생긴 건가?

큰일 날 게 없는데 하고 잠시 어제 생각을 떠올렸다.

카피 컨펌 났고 디자인 콘셉트도 협의했고 개발 이슈 사항에 대한 부분도 전달했다.

큰일 날 건 없다.

큰일이라면 김 부장이 나보다 먼저 출근해서 날 찾는 것 외에는.

8시 35분 교통안내가 나오자 거짓말처럼 자동차들이 서울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홍철의 파워 에프엠 4부가 시작되겠습니다."

라디오의 인트로 음악이 나오고 9시 알람이 땡 하고 울렸다.

내 머리도 땡 하고 울렸다.

"이런, 지각이네."

차를 어찌어찌 주차하고 회사에 들어갔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부여잡아 타고 보니, 이런 슬리퍼였다.

다시 돌아가자니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아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으로 잠정 타협했다.

내가 나에게.

문 앞에서부터 큰 소리가 들려온다.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사장님이다.

사장님까지 격노할 정도의 일이다.

"왜 이렇게 늦었어? 지금 난리 났어."

주 과장이 사장님 집무실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지난번에 제안했던 K업체, 계약 파기하고 위약금 청구한다고 했데."

"왜?"

"거 있잖아, 김 부장이 자기 실적 올린다고 계약서 들고 갔던 거."

"그러니까 왜?"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주 과장은 늘 두 번 세 번 물어야 답을 했다.

"그러니까 지난번에 콘셉트랑 제안사항이 실제 디자인에 적용되지 않은 데다가 납기까지 지연돼서 매출 손실이 컸나 봐."

"애초에 납기 일정 지연 사항은 협의된 사항이고, 디자인에서 적용되지 않은 이슈들은 사전에 전달했는데 왜 이제 와서?"

"그러니까 업무 내역 변경에 따라 계약 금액 조정하기로 했었는데, 부장님이 계약금은 그대로 해서 계약을 하셨나 봐. 근데 이제야 그쪽에서 금액 확인하고 난리를 치는 거지."

"그래?"

"그래라니? 지금 김 부장부터 줄줄이 다 경위서 쓰게 생겼는데."

"우리가 왜?"

"아니, 왜냐하면 우리는."

주 과장이 왜 같이 우리가 경위서를 써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유는 들을 수 없었다.

애초에 최종 관리자의 책임이 자명했기 때문에.

아마도 그는 부장님이 좋아하는 팀워크에 따라 우리 모두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회식자리에선 우리, 문제 생기면 너, 참 웃긴다.

더 이상 대화할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고 컴퓨터를 켰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똑같이 하루를 시작했다.

슬리퍼를 신고 출근한 것 외에는.

그로부터 삼십 분이 지나고 김 부장이 사장실을 나왔다.

뻘게진 얼굴, 부릅뜬 눈, 매섭게 쳐다본다.

나는 아랑곳 않고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한다.

김 부장은 그 길로 사무실을 나갔다.

담배 생각이 간절할 테지.

문득 김 부장은 난생처음 자기 자신에게 돌대가리라고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애초에 계약사항 검토와 수정 내용 확인은 주 과장 몫이었다.

가끔 프로젝트 규모가 작거나 하면 내가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업의 시작과 끝은 늘 글자였다.

'갑'과 '을'이라는 두 글자가 애매한 위치에서 애매한 사이로 서로의 역할을 규정한다.

그리고는 각각의 동의라는 전제하에 도장을 찍고 약속을 정한다.

갑은 돈을 주고 을은 일을 하고.

거기까지는 정확하다.

다만 갑의 결제 정산과 을의 업무 능력이 맞지 않을 땐 서로가 난처해하며 계약서를 꺼내 든다.

그리고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 글의 허점을.

그래서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문제는 그 중요한 걸 김 부장이 그르쳤다.

자기의 인맥을 동원해서 큰 계약을 체결했다고 계약도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그게 자기의 실적이고 자기의 책임이고 자기의 업무라며.

그래서 그는 지금 옥상에서 담배를 빨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달콤하게, 언젠가는 속 쓰리게.

김 부장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 공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내 주 과장에게 걸려온 '갑'의 전화에서 향긋한 봄내음이 전해져 왔다.

업무 지연에 따른 비용 정산을 제외하고 금액 조정하여 진행하기로.

주 과장의 헐레벌떡 보고에 김 부장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격려했다.

오늘 김 부장의 일은 오로지 표정관리였다.

이대로 오늘도 무사히 끝났다.

다만 회식이 생겼다.

무사히 하루가 끝난 기념, 계약이 파기되지 않은 기념, 김 부장이 잘리지 않은 기념 등등 갖가지 기념을 덧붙여서 말이다.

김 부장은 술자리가 2차 3차로 이어지자 또다시 레퍼토리를 읊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뿌리 깊은 나무야, 큰 바람 휘몰아쳐도 뿌리 깊은 나무는 쓰러지지 않지."

"역시, 이럴 때 한 잔 하시죠?"

주 과장의 눈치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김 부장은 오늘 하루의 일을 모두 말끔히 잊었다는 듯이 마셔댔다.

내일은 수요일인데, 나는 술도 못하는데.

"어이, 돌. 아니 강 과장. 내가 가끔 말을 심하게 할 때가 있는데 다 이해하지?"

뭘 이해하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해한다고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주는 회사는 없어. 알아서 해야지. 알지?"

뭘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안다고 했다.

"자네는 변함없어 참 좋아."

그 말이 문득 넌 내 을이라서 좋아로 들렸다.

젠장.

부장님을 택시로 모셔다 드리고 대리를 불렀다.

대리 아저씨는 회사 건너편에서부터 전화를 하며 내 위치를 물었다.

"아저씨, SW 빌딩 지하 1층이요."

"아, 네. 금방 갑니다."

전화를 끊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어제와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정말 다이내믹하다 싶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두 번째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는 순간 또다시 걸려온 대리 아저씨의 전화.

"저기 어디시죠?"

"SW빌딩 지하 1층이라니까요."

"아, 네. 차가 뭔가요?"

"X란도요. 흰색."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 돌대가리야 뭐야?"

혼자 무심코 던진 말이 새어 들어갔을까.

전화가 잠시 정적에 휩싸이다 톡 하고 끊어졌다.

분명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는데.

전화기 끊긴 후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그는 오지 않았다.

길을 잃었나 싶어 건 전화해도 사고가 난 것 아닌가 싶은 걱정에 전화 해도 받지 않았고 오지 않았다.

거진 30분을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워가며 욕을 내뱉었다.

속이 시원했다.

가슴도 뻥 뚫렸다.

뭐지? 이 기분.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욕을 하고 그 욕을 다시 드는 그 기분.

정말 신기했다.

누가 그랬는데 욕은 하면 꼭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혼자 껄껄대며 웃다 큰 소리로 말했다.

"사랑해. 난 널 정말 사랑해."

리모컨을 연신 누르며 차를 찾던 여자가 날 힐끔 보고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너는 안 사랑해."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고 차에 올랐다.

다시 대리운전 회사에 전화를 하고 라디오를 켰다.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여러분에게 마지막 노래 보내드립니다.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라디오 디제이의 음악 선곡이 끝나고 음악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 번에 일어날까.-

노래 가사가 좋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리운전기사가 배치되었다는 문자가 왔고, 곧 금방 도착한다는 전화가 왔다.

그러고 보니 난 여전히 슬리퍼였다.

긴장이 풀려도 너무 풀렸나.

대리기사가 오고 차키를 건넸다.

그리고 슬리퍼를 구두로 갈아신었다.

뭔가 출근해야 할 것 같은데 집에 가니 기분이 더 좋았다.

차가 움직인다.

구두 안에 뭔가 걸리적거리는 기분이 든다.

구두를 툭툭 털자 뭔가 툭 하고 나온다.

돌이다.

내 인생에 미처 몰랐던 돌부리의 잔해들.

이제 실물을 확인하고 나니 발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다.

괜스레 아까 듣던 노래가 다시 듣고 싶어 졌다.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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