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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부자 Jul 06. 2020

주차장에서 2시간

어제 가족과 함께 월정사를 다녀왔다.

신혼 때 우연히 찾은 월정사.

새벽 어스름에 촉촉한 습기를 머금은 전나무길을 걸었던, 추억이 있던 그 길.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도 이따금씩 아내가 되뇌던 월정사 숲길.

가볍게 반찬거리를 사러 나왔다가 그대로 월정사까지 달렸다.

기회가 항상 있는 건 아니니까.


월정사에 들어가는 데 한참 동안 길이 막혔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오대산 국립공원이 월정사 사유지.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에서 현대에 이르러 돈을 받는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진 않았지만 여행 온 기분을 망칠까 싶어 무뚝뚝하게 결제하고 월정사 주차장에 들어섰다.


차를 주차하고 우린 절이 아닌 전나무 산책길을 돌았다.

그때만큼의 촉촉한 상쾌함은 없었지만 자연이 주는 시원함은 여전했다.

다람쥐도 보고 생소한 새소리도 듣고 그렇게 한참을 걷고 걸어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다시 되돌아 가야 할 현실을 떠올리며. 


차를 타고 나가다 월정사 초입에 있는 식당에 들어섰다.

아이들이 푹 자고 일어나면 집에 도착하면 좋겠다는 기대감에 든든히 저녁을 먹일 요량으로 찾은 식당.

맛있는 밥을 먹어서 인지 아들은 식당을 나오자마자 드넓은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2시간. 


정작 월정사에서는 빨리 올라가서 내일 출근 준비를 해야지 했던 내가 탁 트위 산야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 

노는 아들의 모습에 넋이 빠져 그렇게 두 시간을 함께 놀았다.



돌멩이에 이름도 붙여주고 같이 맨발로 바닥을 걷고 달리기 시합도 했다.

여느 때보다 더 여유로운, 

그래서 좋았던 그 시간. 


해가 어스름해져서야 우리는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아들과 딸은 약속이나 한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집에 도착해선 아이들을 차례로 씻기고 침대에 누웠다.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었지만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오늘의 주차장 추억만을 기억에 남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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