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과 순이삼촌
오늘은 4.3사건이 있던 가슴아픈 날이다.
작년에도 그랬고, 제작년에도 그랬다.
하지만 너무도 쉽게 지나쳐버렸다.
내가 처음 4.3사건을 마주하게 된 것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였다.
그 때 마주한 작품은 현기영작가님의 "순이삼촌"이었다.
순이삼촌은 제주 4.3사건의 학살현장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목격자로서 그 참상에 대한 트라우마에 평생 시달리다 결국 자살하고 마는 비운의 인물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45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다.
당시 우리사회는 미군정의 친일파 재등용과 부정부패로 인한 경제난에 겹치면서 많은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제주도민들은 3.1절 기념 제주도대회 중에 경찰이 쏜 총에 6명의 제주도민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급격한 사회적 반향이 일어났다.
하지만 정권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를 정치적, 사상적 문제로 결부시켜 제주도를 고립시키고 기존 온건파였던 제주관료를 육지에서 온 친일강건파로 교체, 서북청년단과 함께 제주도민 탄압을 시작한다.
이후 남북한이 하나되는 선거에서 남한이 독단적으로 선거를 진행하고, 이에 유일하게 반대 선거를 주장했던 제주도는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 이승만 정권은 수립과 동시에 제주도에 대한 억압과 탄압의 강도를 더욱 높여간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졌을 땐 4.3사건과 관련하여 구금되었던 제주도민들과 가족 등 관계자들을 모두 사회주의 부역자로 몰아 처형하는 등 전쟁이 끝난 이후까지 제주도에 대한 정권의 노골적인 탄압과 감시가 이어졌다.
이후 40여년간 제주 4.3 사건은 우리 역사에서 부정되었으나 1999년 12월 26일 국회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 2000년 1월 12일 제정 공포되어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를 통해 이승만 정권의 폭압적인 역사적 실상을 밝히게 되었고 노무현 대통령 정권에 들어서는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하였다.
"저는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 노무현 대통령 2003. 10. 31."
진상 보고서에 의하면 4.3사건의 피해자는 약 3만여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관련 자료 훼손으로 인해 정확한 인명 피해 숫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두 집 건너 한 집이 죽었다고 할 정도로 제주도민들의 겪은 참상은 이로 말할 수 없다.
제주 4.3사건은 6.25전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아래 자행된 친일파들의 권력 세습과 민중들에 대한 억압이 사회주의란 이데올로기의 투쟁으로서 애꿎은 도민들만 희생되는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6.25전쟁에서도 똑같은 패턴으로 우리 군인들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을 당하고 친일파들이 득세하며 권력을 세습하는 불합리한 과정의 모습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제주4.3사건을 가슴 아픈 제주도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기억해야하는지 다시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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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있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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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3일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
- 사진 출처 : 청와대사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