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다.라는 글자가 참 좋다.
최근에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다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지는 기분이다.
간혹 검은색으로 지우다싶히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들도 있지만
그림은 끝나지 않고 계속 그려진다.
지난달부터 몸이 좋지 않아 대외적인 활동을 상당 부분 줄였다.
술은 물론이거니와 애초에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최소화하였다.
덕분에 전화 통화 시간은 많이 늘어났지만
사람을 마주하는 부담과 정신적 소비는 다소 줄어들긴 했다.
그럼에도 스트레스는 더 늘었다.
본사의 매출압박과 경기 전망의 불안함, 새로 시작한 온라인 쇼핑몰과 신규 사업을 위한 투자의 더딘 매출.
그 무엇 하나 예상처럼 흘러가는 게 없다.
대출이자는 올랐고 재정상태는 예상보다 나빴다.
주간회의에서 불필요한 지출 축소 의견이 나왔고 제일 먼저 후원 축소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부품 매입은 매출과 연관이 되지만 후원은 소비성 지출이란 의견이었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이 가장 나쁜 일에서 먼저 도마에 올랐다.
사업이 안정화되면서 늘렸던 후원이었고 가끔씩 좋은 일이 생기면 기분 좋게 후원했던 거였는데
재무적으론 그 마저도 부담이 되는 듯했다.
고민은 오래 하지 않았고 후원을 줄이기보다 하나를 더 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동광원에 가서 후원행사에 갔다가 많이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복지 예산도 많이 줄고 정부의 정책이 어려운 사람들을 더 어렵게 한다는데
그 어려움을 더해주고 싶진 않았다.
우선 재무상에서 부담되는 재고량을 축소하는 방향과 향후 판매가 용이한 소모품 중심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빠른 매출도모를 위해 온라인쇼핑몰에 적은 이익이라도 자금 회전율을 높일 수 있도록 판매가를 낮췄다.
다행히도 지난 몇 달간 0이었던 매출이 금번달에 20만 원을 찍었다.
투자비에 비해 미미하지만 어쨌든 숫자가 생겼다.
한 동안 못 그렸던 도화지에 글로 그림을 그렸다.
사람을 그리기도 하고 추억을 그리기도 했다.
아픔도 그리고 속상함도 그리고 즐거움도 같이 그렸다.
아이들의 그림처럼 자유롭게 오늘을 그린다.
오랜만에 그리니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