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화분이 나를 닮았다.

by 세둥맘

아파트 방송 소리가 요란스럽다. 태풍이 온다고 베란다에 내놓은 화분을 모두 집 안으로 들여놓으라는 안내방송이다. 안 쓰는 화분을 베란다에 방치해 놓은 것이 생각났다. 내가 베란다를 기웃거리자 막내가 와서 물어본다.

"엄마, 도와주까?"

막내와 함께 몇 년 동안 베란다에 방치해두었던 화분을 하나씩 집안으로 들였다. 뿌리만 말라서 배배 틀어진 것, 잡초의 씨가 날아와 터를 잡고 주인행세를 하는 것,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것, 모두들 비참한 행색들이었다.


몇 년 전 한창 다육이 붐이 일었을 때 예쁜 다육이에 혹해 도자기 화분이랑 다육이를 잔뜩 사들였던 게 생각난다. 수제 도자기 화분이라 값도 꽤 나갔었다. 처음 한 두 달만 예쁜 자태를 뽐내던 다육이들은 웃자라거나 뿌리부터 섞어 버렸다.


또 다른 화분은 봄이면 예쁜 꽃들을 사서 심던 화분이었다. 봄이 되면 꽃집 앞에 울긋불긋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을 삭막한 우리 집에도 데리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 예쁜 애들도 한 달을 못 가고 바로 시들시들해버렸다.


깨진 난 화분도 보였다. 한창 영전 축하 난 화분 선물이 유행할 때 받았던 화분이다. 그래도 난들은 내가 애지중지한 보람이 있어서 그런지 한 이삼 년을 버티다 끝내는 생을 다하였다.


거실 한 귀퉁이 미니정원에서 예쁜 자태를 꿈꾸며 나에게 위안을 주던 아이들이었다. 어제는 이 아이들을 정리하면서 왠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도 한 때는 울긋불긋 휘황찬란한 꿈을 꾸며 내 마음속에 예쁜 꿈들을 담고 심었다. 진로교육에 꽂혀서 두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면서 서울에 있는 여대 평생교육센터에 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대학원을 다니면서 몇 날을 밤을 새워 리포트를 쓰던 생각도 난다. 그때는 그 꿈이 나에게는 절실했고 몸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그렇게 나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던 꿈들도 저 깨진 화분들의 꽃과 다육이처럼 내 속에서 다 배배 말라죽어가고 있다. 나는 이제 희망이라는 꽃을 피우지 않는 깨진 화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것에도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하! 목젖을 젖히고 웃어본 것이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슬픈 이야기를 들어도 눈물도 잘 나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도 다육이처럼 다 말라버린 것일까? 베란다에 버려진 저 화분들처럼 내 마음도 쓸쓸하기는 매한가지이다.


화분 한 귀퉁이에서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다육이, 난, 예쁜 꽃들, 모든 식물들이 죽어간 그 자리에서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잡초가 터를 잡았다. 강한 생명력이다.


내 마음의 한 귀퉁이에도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희망 하나가 자라고 있다. 바로 글쓰기이다. 다 죽어가던 내 마음의 화분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버텨내고 있다. 글쓰기의 씨앗을 민들레 홀씨처럼 날리고 싶다. 다른 사람들 마음에도 옮아가 터를 잡고 살아가는 그런 글쓰기의 홀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