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해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찍힌 전화번호를 보니 교육청 전화번호였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교육청에 근무하는 장학사였다.
"선생님을 애타게 찾는 사람이 있어요. 혹시 000이라는 분 아세요?"
사연인즉슨, 내 이름을 대고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내가 그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것 같은데 연락처를 알 수 있냐고 물어왔다는 것이다. 자신은 나와 이종사촌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장학사의 철두철미함을 발휘해 이름과 직업을 받았고 그 직장 홈페이지까지 찾아가서 확인을 했더니 신분이 확실한 사람인 것 같아 연락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락해보라면서 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준다. 고맙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있다가 또 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주무관이었다. 선생님을 애타게 찾는 사람이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장학사에게 들었다고 알고 있다고 감사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좀 창피했다. 나의 감추고 싶은 과거사를 여기저기 들킨 것만 같았다.
연락처로 전화를 해보았다. 막내 이모의 아들이었다. 나와는 이종사촌지간이다. 의대를 나와 서울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번듯하게 잘 자랐다. 막내 이모가 나를 너무 보고 싶어 해서 자기가 찾아주마 하고 인터넷에 내 이름 석자를 검색했단다. 그리고는 내가 교육청에 근무한 것을 알아내고는 다짜고짜 전화를 해서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내 이름이 흔한 이름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이모는 나의 돌아가신 엄마의 막내 동생이다. 엄마에게는 두 명의 여자 동생이 있었는데 유달리 정이 많고 명랑한 막내 이모가 나를 못 잊어 그렇게 나를 찾았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여덟 살 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돌아가셨다. 봉막염으로. 지금 같아서는 수술 후 이삼일 후에 거뜬하게 퇴원하는 병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병이었나 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는 예쁜 새어머니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재혼을 하셨고 그 후부터는 이모들과 연락을 잘 할 수가 없었다. 새어머니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새어머니도 이모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은근히 싫어하셨다. 그래도 외갓집을 통해 가끔 가다 연락을 했고 사촌동생의 결혼 소식도 간간이 듣곤 했다. 그러나 서로 사는 게 바쁘다 보니 한 십 년 동안은 이모와 연락을 거의 안 하고 지낸 것 같다. 그 사이에 이모부는 돌아가시고 이모 혼자 큰 아파트에서 강아지와 함께 혼자 사신다고 한다.
"형부는 잘 계시나?"
이모는 아빠를 아직까지도 형부로 불렀다. 형부가 너무 보고 싶고 생각이 난다고 한다. 아빠는 건강하시다고 전해드렸다. 아주 기뻐하며 좋아하셨다. 새어머니와 금슬 좋게 잘 살고 계시다는 이야기는 애써 못 들은 척하셨다. 한번 놀러 오라는 당부와 그러마하는 기약 없는 약속을 끝으로 긴 통화를 끝냈다.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기억은 벌써 희미해지고 별로 남은 게 없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엄마는 어렸을 때 동화책을 실감 나게 잘 읽어 주신 것이 생각난다. 슬픈 장면이 나오면 나를 꼭 끌어안으면서 이야기를 잔잔하게 읽어주시던 게 기억난다. 이모를 통해 엄마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일까? 내가 무심하게 엄마 생각을 거의 안 하고 살아서 일까? 아니면 내가 크게 아파서 마음이 아파서일까? 나이 오십이 넘어 엄마 앞에서 애기가 되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