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리릭, 호박죽!

by 세둥맘

호박의 계절이 다가왔다. 산책을 다니다 보면 들판에 누렇고 튼실한 호박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트에도 누런 늙은 호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같이 편리한 시대에는 씨를 다 빼고 껍질까지 다 깎아서 비닐봉지에 넣어서 판다. 얼씨구나 하고 욕심껏 두 봉지를 사서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이다. 냉장고를 열어보았더니 파란 곰팡이가 몇 군데 슬어있었다. 욕심을 내서 사 와놓고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일주일을 냉장고에서 묵혔더니 이런 사달이 나버렸다. 얼른 봉지를 꺼내서 열어보았더니 한 봉지는 아직까지 괜찮고, 나머지 봉지의 호박들에 약간씩 곰팡이가 자리 잡으려는 찰나였다.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서 곰팡이 부분만 살살 도려내고 깨끗이 씻었더니 다시 생생한 예쁜 호박으로 변신하였다.


호박은 부종을 빼주는데 약효가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나도 딸들을 놓고는 부기를 빼기 위해 호박즙을 몇 달 동안 먹었던 기억이 난다. 호박즙은 먹기가 괴로웠는데 오늘은 달콤하고 고소한 호박죽을 도전해보기로 한다.

호박은 부종을 빼주는 효과 외에도 베타카로틴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고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다고 한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호박죽! 도전!


깨끗이 손질된 호박 두 봉지에 물 2리터를 부은 후 중불에서 호박이 뭉근하게 익을 때까지 푹 삶아준다. 한 이삼십 분 정도 지난 후 국자로 저어봐서 물컹하게 물러졌으면 불을 끈 후 도깨비방망이로 호박 덩어리가 없도록 휘휘 저어주면 죽의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다시 중불로 가열하면서 호박 으깬 물에 찹쌀가루를 투하한다. 냉장고에 찾아보니 종이 컵으로 두 컵 정도의 찹쌀가루가 있어 모두 다 넣었다. 찹쌀가루를 물에다 풀어서 넣기도 하지만 나는 그냥 넣기로 한다. 찹쌀가루 그대로 넣으면 간간이 수제비처럼 덩어리가 지면서 씹히는 맛을 좋아한다. 그리고 마트에서 호박과 함께 사온 햇콩도 한 봉지 통째로 같이 넣어준다.

찹쌀가루를 넣어준 후로는 길쭉한 나무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닥에 눌어붙어 타버리는 수가 있다. 나무 주걱으로 찹쌀가루와 콩이 익을 정도까지 한 십 분 정도 휘휘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죽이 익으면서 펑펑 소리를 내며 죽 거품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얼른 불을 약하게 한 후 계속 저어주었다. 이렇게 죽이 완성될 때까지 불을 세게도 했다가 약하게도 했다가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주고 한시라도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다가는 금세 타버리기도 하고 우르르 끓어 넘치기도 하고. 살살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면서 죽의 비위를 잘 맞춰주어야 맛있는 죽이 탄생한다. 죽을 저으면서 이런 게 정성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정성이라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지 못할 일이다.


한 그릇을 떠서 맛을 보았다. 설탕을 넣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러운 깊은 단맛이 스며 나왔다. 햇콩의 아삭아삭 고소하게 씹히는 맛이 심심하지 않아 좋았다. 달콤한 호박죽을 한 숟가락 푹 뜨면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딸려오는 찹쌀의 물컹하게 씹히는 맛도 일품이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가며 한 그릇을 비웠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막내에게 오늘 아침 메뉴는 호박죽이라고 했더니 입이 당나발같이 나왔다.

"나, 호박죽 싫어하는데!"

"일단 한 숟가락만 먹어봐!"

몇 숟가락을 먹더니 안방까지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엄마, 호박죽 생각보다 맛있네!"

그러면서 두 그릇을 뚝딱해치운다. 둘째도 호박죽을 연달아 이틀 동안 질리지도 않고 먹는다. 큰 냄비에 한 솥을 끓였는데 순식간에 바닥이 드러났다. 이번 주도 마트에 가서 호박을 사 와야겠다. 이번에는 늙은 호박 말고 단호박으로 달큼한 호박죽을 끓여봐야겠다. 휘리릭! 호박죽! 오늘은 성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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