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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Sep 26. 2020

집에서도 마스크 끼는 아이

우리 집 막내는 북한도 무서워한다는 중2이다. 그렇게 착하고 말 잘 듣던 늦둥이에다가 막둥이인 막내는 중2가 되더니 갑자기 반항아로 돌변하였다. 말끝마다 '뭐?', '에이, 씨'가 자연스럽게 붙는다. 내가 뭘 시키면 '그걸 내가 왜 해야 되는데?' 일단 반항부터 하고 본다. 


그러면서도 꼰대 기질이 있어 소소한 규칙들은 아주 잘 지킨다. 코로나 시대인 요즘에는 외출해서 돌아오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서 손을 30초 동안 씻는다. 에레베이터를 타면 반드시 비치된 손소독제를 사용해 손 소독을 한다. 핸드폰도 외출 후에는 꼭 손소독제로 소독해준다. 그리고는 바로 외출복을 벗는다.


막내는 자기만 열심히 방역수칙을 지킬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당당하게 요구한다. 내가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오면 막내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대뜸 이렇게 말한다.

"빨리 손 씻어! 옷도 갈아 입고!"

손을 안 씻으면 나를 반기는 반려견 순둥이도 못 만지게 한다.


며칠 전 2.5단계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2단계로 하향 조정되면서 부쩍 가족들의 외출이 잦아졌다. 큰 애는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줌을 통해 화상회의를 하고 매번 열심히 전화 통화를 하더니 이제는 강남에서 회의를 진행한다. 나도 중단되었던 성당의 미사가 재개되어 다녀왔다. 남편도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온다. 


이런 모든 일들이 규칙을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막내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아, 좀 나돌아 다니지 좀 말라고!"

식구들이 외출 준비를 할 때마다 볼 멘 소리를 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며칠 전에는 집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다닌다. 나는 그런 막내가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이렇게 말했다.

"KF94 끼고 다녀야지. 그거는 비말 차단밖에 못 하는데!"

"ㅋㅋ 맞아! KF 94 껴!"

옆에 있던 둘째도 웃으면서 한마디 거든다.

"나 코로나 걸리기 싫다고!"

막내는 마스크를 낀 채 짜증 썩인 목소리로 한소리 한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막내를 보면서 웃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짠한 생각이 든다. 나는 벌써 살만큼 살았고 결혼도 해봤고 애도 셋이나 낳았으며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다 겪어 봤다. 그래서 언제 죽든 별로 억울한 생각은 안 들 것 같다. 그러나 막내는 다르다. 이제 겨우 열다섯 해를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 어른들의 잘못으로 미세먼지 때문에 날씨 좋은 봄 날에도 바깥나들이를 못하더니 이제는 더 강력한 코로나 시국을 견뎌내고 있다. 올여름에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극의 빙하가 해빙되어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되는 태풍도 3번이나 지나갔다. 태풍이 올 때마다 막내는 안절부절못하고 베란다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이고 난리를 쳤다. 


앞으로 막내가 살아갈 날에는 어떤 이상기후와 이로 인한 또 다른 무서운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교육부에서도 지속발전가능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환경교육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배달음식의 증가로 플라스틱을 이용한 일회용기의 소비는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어떠한 홍보나 반성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지구를 잠시 빌려서 살고 있을 뿐인데.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가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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