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확산으로 원하지 않는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막내는 2학기 시작할 때만 해도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설렘이 있었는데 모두 취소되고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다. 대학생인 둘째도 학교에 갈 수 있다고 기숙사를 신청하고 방까지 배정되었는데 모든 일정이 다 취소되었다. 딸 셋이 모두 원격수업을 한단다. 그나마 격주로라도 가던 학교를 이제는 갈 수 없다. 열심히 다니던 학원도 갈 수가 없다. 영락없이 세 딸이 하루 종일 한 집에 있게 되었다. 각자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말이다. 거기다 나까지 가세했다. 나는 너른 거실을 차지했다.
출근시간에는 원격 업무관리시스템이 폭주되어 접속을 할 수가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업무관리시스템에 접속해 업무보고를 하였다. 그리고 서서히 하루를 시작하였다.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집에서 지내는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중학생인 막내는 8시 반쯤 알람 소리에 일어나자마자 아침 조회로 출석 확인을 한다. 그리고는 잠깐 짬을 내어 아침식사를 한다. 그리고는 9시 10분부터 수업이 시작된다.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12시 30분쯤 점심시간이 되니 꽉 닫힌 방문을 열고 나와서는 점심을 먹는다. 또 3시 40분까지 더운 여름인데도 시끄럽다며 방문을 굳게 닫고 수업에 참여한다. 첫째와 둘째는 대학생이라 그나마 좀 여유가 있다. 수업이 있을 때만 방문을 꽉 닫고 열심히 노트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재택근무로 애들과 같이 집에 있어보니 이건 집콕에 한 술 더 떠서 방콕이다. 모두 방 한 칸씩을 차지하고는 문을 꼭 걸어둔 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겨우 점심 먹을 때나 같이 얼굴을 볼 수 있다. 점심때만 식탁에 잠깐 모였다가 또 뿔뿔이 자기 방으로 흩어져 자기만의 세계로 떠난다. 막내는 학교 수업 후에는 학원까지 온라인으로 수업해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겨우 방에서 빠져나온다.
나도 하루 종일 노트북 앞을 떠날 수가 없다. 간간이 날아오는 메신저를 확인해야 하고 수시로 원격 업무관리시스템에 들어가서 공문을 확인해야 한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붙어있는 건 사무실이나 재택근무나 마찬가지이다. 퇴근시간이 지나서야 업무실적보고를 하고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잠깐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갔다 와서는 나도 온라인으로 이것저것 신청해놓은 수업을 듣는다. 그 사이 둘째는 유튜브를 보면서 홈트레이닝을 한다.
코로나 시대는 자기주도성의 시대이다. 집에서 컴퓨터로 모든 일상을 스스로 진행해 나가야 한다. 학생들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어오지만 수업에 집중하기에는 방해하는 유혹 요인들이 너무 많다. 집이 주는 여유와 노곤함, 직접 나의 행동을 통제하는 사람이 없이 오롯이 내가 주도적으로 수업과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 등등.
교육에서 학생들에게 키워 주워야 할 큰 목표 중의 하나가 자기주도성 함양이다. 코로나로 원격수업이 진행되면서 모든 학생들에게 바로 이 자기주도성을 요구하고 있다. 선생님과 학생이 만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주도성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부모의 성화로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원격수업에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수업을 잘 진행하고 있다. 아니 학교에 나올 때보다 지금이 자기 페이스대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어서 더 좋다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자기주도성이 없거나 아예 학습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가정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부에서 점점 소외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우려하는 학력격차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시대 집콕에서 더 나아가 방콕 하는 딸들을 보며 마음까지 콕 닫아버리는 건 아닌지 노파심이 생긴다. 안 그래도 요즘 코로나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기사를 보았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칼럼에서 코로나 시대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본 것 이 생각난다. 나의 생각이 옳다고 식구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었다. 그래 한쪽 눈은 감고 한쪽 귀는 막고 사는 지혜가 필요한 요즘이다. 늦잠 자는 딸도 못 본 척, 서로 사소한 일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못 들은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