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수업으로 매일 집에만 있는 둘째가 몇 주전부터 외식을 하자고 노래를 불러댔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매일 집에만 있는 둘째가 안쓰럽기도 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애들끼리 이것저것 요리도 해 먹더니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면서 그것도 시들해졌다. 주로 굶거나 배가 고프면 사 먹거나 컵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사 먹는 눈치이다. 보다 못한 내가 아침은 준비를 해준다. 나도 아침에 출근 준비로 바쁘기 때문에 주로 손쉬운 토스트나 유부초밥을 해놓고 간다. 그러면 느지막하게 일어나 먹는 눈치이다.
코로나 때문에 자주 하던 외식도 거의 못했다. 지난주에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돼지 숯불갈비를 먹으러 갔다. 맛집으로 찾아갔더니 벌써 주차장부터 차들로 꽉 차있었다. 개인 룸이 있어 찾아갔지만 이미 손님들로 꽉 차 있었고 빈자리가 났지만 다른 손님들과 합석을 해야 했었다. 코로나 노이로제에 걸린 막내는 자기는 안 먹겠다고 한다. 식당을 나갈 때까지 끝까지 마스크를 안 벗고 있었다. 결국은 다 먹지도 못하고 고기를 포장을 해가지고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지난주의 아픈 기억 때문에 외식 나가기가 망설여졌다. 막내는 외식을 안 간다고 한다. 겨우겨우 합의를 본 것이 사람들이 별로 없고 식당 밖에서 먹을 수 있고 반려견인 순둥이를 데려갈 수 있는 곳으로 조개구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식구가 다섯 명이다 보니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다. 큰딸은 과외를 가야 하고, 막내는 토요일인데 학원을 간단다. 그리고 나는 간헐적 단식으로 저녁을 안 먹는다. 다행히 막내의 학원 스케줄은 취소되고 나는 오늘 하루 간헐적 단식을 포기하기로 한다. 겨우겨우 4시쯤 다섯 식구 모두 외식을 위해 출발했다.
제부도는 한 시간 넘게 걸려 너무 멀다고 평택호로 목적지를 급 변경했다. 평택호 관광지는 뻥 뚫린 호수 뷰를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없었고 왠지 분위기가 스산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번데기만 한 컵 사 먹고 다시 목적지를 삽교천으로 변경하였다.
평택호의 뻥 뚫린 뷰
삽교천은 횟집도 즐비하였고 풀빵과 호박엿 같은 길거리 맛집들이 즐비하였다. 남편이 손님이 없는 식당을 발견했다. 반려견인 순둥이를 데리고 들어가도 된다고 해서 얼씨구나하고 들어갔다. 가을에는 대하와 조개가 제철이라 대하구이와 조개구이를 주문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은 동해바다가 가까운 남쪽이라 어렸을 때는 주로 대게를 먹고 자랐다. 결혼을 하면서 서해바다가 가까운 북쪽 지방으로 오면서 이제 주외식 메뉴는 조개구이와 대하구이로 바뀌었다. 길쭉길쭉한 다리가 10개 달린 대게만 보다가 대왕 집게 발가락에 나머지 발은 뭉툭뭉툭한 꽃게를 처음 봤을 때의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대게를 먹었던 세월보다 꽃게와 조개구이를 먹은 세월이 더 길어졌다.
조개구이는 주로 남편이 구웠는데 이제는 둘째도 제법 잘 굽는다. 첫째는 다 먹은 조개껍질을 버리고 새 조개를 숯불 위에다 올려놓는다. 나와 막내는 아기 새가 먹이 받아먹듯 남편과 둘째가 잘 구워서 껍질을 까주는 조갯살을 날름날름 잘 받아먹는다. 제부도에서 조개구이를 먹을 때와는 달리 식당 아주머니의 서비스가 섬세하다. 손님이 우리뿐이라서 그런지 잘 안까지는 조개껍질도 까주시고 굴은 불에 직접 닿으면 튈 수가 있다고 호일에 잘 싸서 주신다. 마지막으로 서비스의 절정은 대하 머리를 따로 떼서 버터구이를 해주신 것이었다. 친절하게 머리의 껍질을 떼고 먹는 방법까지 시범을 보여주신다. 근 십 년 동안 매년 대하구이와 조개구이를 먹었어도 이런 서비스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버터에 구운 대하 머리는 고소한 것이 새우깡 맛이 났다.
"야, 오랜만에 외식하니까 너무 좋다!"
목장갑을 끼고 집게를 들고 열심히 조개껍질을 벗기면서 둘째가 감탄의 소리를 지른다.
"아, 조개구이랑 칼국수 또 먹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절대로 외식을 안 가겠다고 우겨대던 막내가 돌아오는 차에서 하는 말이다. 오면서 길거리 맛집에 들러 내가 좋아하는 호박엿 두 팩이랑 풀빵 한 봉지를 사들고 어둑해진 밤길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왔다. 가을엔 역시 조개구이와 대하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