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흘러가는 가수입니다!

by 세둥맘

"엄마, 나훈아 좋아해?"

"왜?"

"추석 특집으로 나훈아 특별쇼 한대!"

둘째가 추석특집 나훈아 특별쇼를 귀띔해줬지만 그냥 명절이면 자주 봐왔던 그런 트롯 쇼인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엄마, 어제 나훈아 쇼 너무 재미있었대! 인터넷에 난리야!"

과외를 갔다 오면서 큰 딸은 인터넷 뉴스에 뜬 기사를 흥분해서 전해주었다. 딸의 말에 나도 얼른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과연 29%의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올렸으며 나훈아의 뼈 있는 한마디가 주요 뉴스로 떠있었다. 어제 다시 특별쇼를 한다기에 밤10시 30분까지 기다렸다가 봤다.


KBS와 나훈아가 장장 8개월을 야심 차게 준비한 대작이었다. 단순히 추석 특집으로 하는 트로트 쇼로 얕잡아본 게 후회가 되었다. 거의 새벽 1시가 넘어서 끝났으니 세 시간가량 동안 진행되었다. 긴 시간 동안 가수 나훈아는 관객도 없는 가운데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히트 노래가 자신의 자작곡이었다. 그야말로 싱어송라이터였다. 자신의 노래에 대한 저작권으로만 일 년에 사억에서 오억 가까이 수입을 낸다고 한다. 남편 말대로 그는 트로트 천재였다.


작곡만 할 뿐만 아니라 가사까지 자신이 직접 쓴 것이었다. 홍씨, 갈무리, 18세 순이, 등등 셀 수 없는 히트곡의 가사는 모두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는 가사들이다. 대중가요 가사답게 쉬운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감칠맛 나는 가락에 툭하고 얹어서 간드러지게 맛깔나게 부르는 모습이 70이 넘은 노년이지만 섹시하고 멋있어 보였다.


노래뿐만 아니라 중간중간하는 멘트들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가사를 직접 쓰기 위해 책을 많이 읽는다는 말! 글을 쓰는 내 귀가 솔깃해졌다. 그래 글을 지어내려면 무조건 많이 읽어야 돼! 마구마구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훈장을 거부하셨다고 하던데요? 김동현 아나운서의 말에 나훈아는 이렇게 대답한다. 가수는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인데 훈장까지 타면 내가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딥니까? 그래서 거부했습니다. 음 소신 있는데?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멘트에서는 감동을 받았다.


매일 하는 일을 똑같이 반복하면 세월에게 끌려가는 것이다. 안 끌려가고 내가 세월의 모가지를 확 비틀어 잡고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안 해보던 새로운 것을 해봐야 된다 이겁니다! 내가 해보고 싶은 일도 해보고 안 가본데 여행도 가고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 말을 할 때는 나훈아의 깊은 인생철학이 보여서 그가 새롭게 보였다. 가장 감명 깊었던 멘트는 쇼를 끝내고 관계자와 나누는 대화 중에 나왔다.


어떤 가수로 남고 싶으세요?라는 관계자의 말에 나훈아는 이렇게 대답한다. 유행가는 흘러가는 겁니다. 남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냥 홍씨 부른 가수! 갈무리 부른 가수! 이렇게 남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 앞으로는 하지 마세요!


가수 나훈아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잘하지 못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다른 것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래서 명예를 상징하는 훈장도 거부할 수 있는 베짱이 생겼으리라! 역사에 길이 남는 가수가 되고 싶다! 이렇게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가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그저 유행가처럼 흘러가는 사람으로 비유하였다. 자신의 일과 노래에 대한 진정한 자부심이 있을 때에 이런 답변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남의 인정 따위는 필요 없는 경지이다. 벌써 자타가 인정하는 가왕의 자리에 있으니! 나훈아 쇼를 통해 그의 노래뿐만 아니라 철학과 소신까지 알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정말 확실했다. 가수 나훈아는 정말 소신있고 멋진 사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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