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빨갛게 만든 빨간머리 앤
앤보다는 마릴라!
큰딸이 엄마가 좋아할 거라면서 넷플릭스 빨간머리 앤을 추천해주었다. 딸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주부터 보기 시작한 드라마를 어제 시즌3까지 완독 했다. 어제는 계속 보느라 눈까지 충혈되었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마력이 있는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완독 하느라 브런치 글쓰기도 이틀 동안 빼먹었다^^) 딸이 드라마를 추천해주면서 하는 말.
"드라마에 나오는 배경이 너무 예뻐!"
딸의 말대로 매 순간마다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과 아름다운 숲, 그리고 바다까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가슴 뭉클한 스토리가 펼쳐졌다.
연예계 소식통인 큰딸의 말에 의하면 넷플릭스에서 아줌마들이 가장 열광하는 드라마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의 모든 요소가 다 들어간 한 그릇의 푸짐하고 맛있는 비빔밥을 대접받은 느낌이다. 로맨스, 휴먼, 가족, 정의, 인종차별, 동성애, 아동학대, 페미니즘까지! 거기다 주인공 빨간 머리 앤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정의의 투사가 되는 장면은 통쾌하였으며, 앤과 마릴라, 매튜의 서로 조금씩 갈등과 오해를 풀어가면서 끈끈한 가족이 되는 과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이 핑 돌게 하였다. 동성애, 유색인종, 모든 것에 차별과 편견 없이 포용하는 앤의 모습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길버트와 숀도 이런 앤의 매력에 빠져들어 그녀를 사랑하고 아끼게 되었을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소통과 대화의 중요성이었다. 다이애나의 아버지가 금광 사기꾼들에게 큰돈을 날렸을 때, 남편은 부인의 말을 무시하고 혼자 독단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돈이 필요한 다른 마을 사람들의 몫까지 대신 내주었다. 무슨 일이든지 부인인 린다와 상의해서 결정하는 린다의 남편과는 대조적이다. 이것이 다이애나 엄마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결과는 끝내 사기꾼에게 막대한 재산을 날리는 것으로 끝났다. 이때부터 부부간의 냉전이 시작되고 다이애나 엄마의 히스테리는 극에 달해 그것을 두 딸들에게 과도한 훈육을 시키는 것으로 해소한다. 집안의 냉랭한 분위기에 못 이긴 막내가 야뇨증을 보이고 이렇게 말한다. "왜 우리 가족들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다이애나의 엄마는 남편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왜 혼자서만 괴로워하세요? 괴로움을 나와 나눠요!" 이 말 한마디로 남편과 다시 하나가 된다.
서로 피 한 방울 안 썩인 빨간머리 앤과 마릴라와 메튜가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도 바로 대화와 소통이다. 갈등이 있을 때마다 솔직하고 당당한 앤은 자신의 마음속 생각을 모두 이야기했다. 창의성과 상상력이 지나쳐 사고를 칠 때마다 앤은 항상 마릴라와 매튜에게 먼저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처음에는 마릴라와 메튜가 화를 내고 갈등을 겪었지만 진심 어린 앤의 말에 모두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시간들을 앤과 마릴라, 매튜는 함께 견뎌내었다. 그래서 감정 표현이 서툰 마릴라와 매튜도 앤에게 마음을 열고 진솔해질 수 있었다. 이런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뎌내면서 앤은 마릴라와 매튜와 진정한 가족이 되어간다.
앤, 마릴라, 매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앤보다 내 마음을 끄는 인물은 마릴라였다. 그녀는 큰 오빠를 잃은 슬픔에 우울증에 걸린 엄마와 어린 남동생 매튜를 돌보느라 사랑하는 사람의 청혼도 거절한 채 독신으로 한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항상 당당했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으며 현명했다. 한평생 농촌에서 독신으로 지내다 보면 자기 아집이 강할법한데 마릴라는 항상 자기 고집을 내세우기보다는 모든 정황을 살펴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원하던 남자아이가 아닌 앤을 처음에는 단호하게 거부했지만 이내 자신의 결정을 바꿔 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여선생님인 매시 선생님을 마을 이사회에서 반대했을 때에도 마릴라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 그녀를 변호했다. 길버트가 흑인 친구를 데려왔을 때도 그를 편견 없이 받아들였으며, 흑인 친구의 부인인 메리와 그들의 딸까지 돌봐주었다. 또 앤이 페미니즘을 위한 정의의 투사가 되었을 때도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였고 지원자였다. 친구인 린다 부인과 함께 편견에 찌든 마을 이사회 남자 노인네들을 구워삶아 이사회에 여자들도 동등한 의석수를 확보하는데도 큰 공을 세운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이 그 여자 이사 중 한 명이 된다. 앤이 인디언 친구를 도울 때에도 처음에는 자신이 배운 대로 야만인을 도와서는 안된다고 반대하지만 앤의 설득에 자신의 뜻을 굽힌다.
앤과 마릴라마릴라는 50 중반을 향해가는 나에게 잘 나이 들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명확하게 제시해주었다. 자신의 아집도 꺾을 줄 알고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생각도 언제든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점! 나이가 들어도 항상 부지런하게 집안을 안락하고 편안하게 깔끔하게 지키는 안주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나도 이제 어쩔 수 없는 아줌마인가 보다. 여주인공보다 그 엄마 격인 마릴라에게 더 마음이 가는걸 보니!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