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렸던 속옷을 찾았다!

by 세둥맘

긴 추석 연휴에 오랜만에 이불 빨래를 했다. 이불과 침대커버, 베개커버까지 싹싹 벗겨서 시원하게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속이 다 시원해졌다. 그런데 침대커버 밑에 무언가가 있었다. 얼른 들춰보니 내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속옷이 떡 하니 누워있었다.


삼 개월 전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끼던 속옷이 며칠 동안 통 안보였다. 세탁기에 돌리면 쉽게 헤어지는 걸 알기 때문에 아끼는 옷들과 속옷은 손빨래를 해서 욕실에 걸어놓고 마르면 입는다. 속옷은 두 개를 비싼 거금을 들여서 사서 하나는 빨고 마르면 다른 걸 입고 돌아가면서 입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없어진 것이었다. 속옷을 놔두는 바구니를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옛날에 입던 낡은 속옷을 입고 다녔다. 벌써 몇 년째 입고 다녀 색이 바래고 찌든 때가 묻어있었다. 겉옷을 입으면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그 속옷을 입을 때마다 기분이 우울해졌다.


속옷을 샀던 가게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로 주문을 하고 택배로 받았다. 속옷은 정성스럽게 포장되어서 나에게로 전달되었다. 다시 내 몸에 익숙한 새 속옷을 입으니 빛바랜 헌 속옷을 입을 때의 우울함은 없어졌다. 그렇지만 잃어버렸던 속옷을 찾지 못하고 거금을 드려 새 걸로 산 걸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아이들이 손을 댔을 리는 없다. 세탁기에 돌리지도 않고 내가 매일 손빨래를 하였기에 아이들은 엄마의 속옷이 뭔지도 모를 것이다. 어디에 떨어졌나? 방과 욕실, 베란다까지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다 근 삼 개월 만에 이렇게 침대 커버 밑에서 나오다니. 너무 허망하였다. 이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손빨래로 빨아 널어놓았던 것이 덜 마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잘 마르라고 따뜻한 돌침대에 놓아둔 것이었다. 그리고는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삼 개월 동안이나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다니!


젊었을 때부터 나의 건망증은 유명했다. 어딜 가든 뭘 잘 놔두고 와서 아빠는 이런 나를 털팔이라고 불렀다. 인감도장도 몇 개를 잃어버려 인감증명서 뗄 때마다 곤혹을 치르곤 하였다. 통장도 너무 잘 잃어버려 은행 직원에게 싫은 소리도 들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는 건망증이 극에 달했다. 시댁이고 친정이고 어딜 가면 무엇을 놔두고 온다. 한 번은 친정에 지갑을 놔두고 와서 동생네가 지갑을 들고 시댁까지 총출동한 기억도 난다. 지갑을 건네주면서 올케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애 키우면 원래 다 그래요!"


젊었을 때는 건망증으로 무언가를 잃어버려도 이렇게까지 허망하지는 않았다. 도장이야 또 파면 그만이었고, 통장이야 또 재발급받으면 그만이었다. 젊었을 때의 건망증과는 다른 것 같아 섬뜩하다. 나도 이제 늙어가는 것 같아 서럽기까지 하다. 왠지 나의 깊숙한 내면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이 공허하고 허망하다. 나의 기억들이 하나씩 잃어버린 속옷들처럼 증발해버릴 것 같은 불길한 마음이 든다.


며칠 전 영화로 본 '장수 상회'의 남자 주인공 할아버지도 알츠하이머병으로 부인까지 못 알아보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삶! 과연 어떨까?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이 소중한 기억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 사실을 옆에서 지켜보는 주위의 가족들이 더 가슴 아프고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 주인공이 그렇게 모든 걸 망각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웠을까?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렇게 나처럼 잃어버렸던 기억을 얼마 뒤 되찾고는 얼마나 허망하고 허탈할지 이해가 간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도 중간에 자살을 시도한다.


잃어버렸던 속옷을 다시 찾아 나는 이제 속옷이 세벌이 생겼다. 돌아가면서 매일 빨아서 입어도 안 마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욕실 헹거에 나란히 걸려있는 세벌의 속옷을 보며 가슴 한켠이 시려온다. 가을 찬바람은 내 마음속에서도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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