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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Jun 11. 2020

나의 소울푸드 닭개장

나의 소울푸드는 닭개장이다. 초등학교 때 외갓집을 가면 항상 외할머니는 닭개장을 끓여주셨다. 뜨끈한 닭개장을 한 술 가득 푸고 거기다 향긋한 김까지 싸서 먹으면 정말이지 나의 뱃속을 지나 명치까지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지금도 우울하거나 왠지 허기질 때(사랑에 목마를 때)는 이 닭개장이 너무 먹고 싶다. 


우리 엄마는 내가 여덟 살 되는 해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아빠는 예쁜 새어머니와 재혼을 하셨다. 그렇지만 우리는 해마다 외할아버지 생신이면 외갓집을 찾아가곤 했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매년 찾아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없는 외갓집이지만 외할머니와 외삼촌들이 항상 정겹게 맞아주곤 했다. 그리고 꼭 이 닭개장을 해주셨다.


지금 나는 돌아가신 엄마 나이를 훌쩍 넘어선 오십 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속이 허하거나 마음이 헛헛할 때는 이 닭개장이 생각난다. 드라마에서 결혼한 딸이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자 지혜로운 새어머니는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 장면이 생각난다. 닭 미역국(좀 특이한 미역국이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을 먹은 딸은 바로 원기를 회복하는 장면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유 모를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닭개장 먹고 싶어요! 해주세요! 하고 어리광 부릴 외할머니도 안 계시고 엄마도 없는 나는 모든 걸 내가 혼자 해결해야 한다. 아니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는다. 어릴 때부터 여물대로 여물어진 나의 마음은 도대체 누구에게 부탁하거나 기대거나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베풀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닭개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우선 토종닭 한 마리를 통째로 큰 냄비에 넣고 푹 삶아야 한다. 이때 양파랑 파 그리고 생강이나 마늘 몇 쪽을 같이 넣고 삶는다. 닭 1마리에 물은 3리터를 넣고 삶는다. 두 번째 단계는 푹 익은 닭의 살을 발라서 가늘게 찢는 과정이다. 이번에는 꽁꽁 언 냉동 닭을 그냥 넣고 삶았더니 1시간 이상을 끓였는데도 닭고기의 안쪽 살 부분이 덜 익은 채로 있었다. 어이구,,, 그렇다고 다시 삶을 수도 없고 칼로 자르고 가위로 자르고 그야말로 생쇼를 했다. 에고.... 힘들어~~


다음으로는 같이 넣을 채소를 준비해준다. 나는 닭개장에 들어가는 고사리와 토란대가 너무 좋다. 그리고 대파도 듬뿍 넣어서 푹 삶아진 걸 뜨끈한 밥 한술과 함께 먹으면 물컹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면서 입에서 살살 녹으며 단맛이 난다. 숙주와 느타리버섯도 빼놓을 수 없다. 욕심껏 내가 좋아하는 나물을 잔뜩 넣었더니 나중에는 국물이 넘쳐난다. 이놈의 욕심은.... 


대파 두 대를 손가락 크기로 잘라 참기름과 식용유를 각각 두 숟가락씩 넣고 같이 볶아 준다. 파가 숨이 죽으면 고춧가루 다섯 숟가락을 넣고 같이 볶아 준다. 한 5분가량 볶다가 조금 전 닭을 삶았던 육수를 같이 부어서 끓인다. 여기다가 찢어놓은 닭고기와 나물, 버섯, 그리고 마지막으로 숙주까지 넣어서 끓여주고 간은 조선간장 4분의 1컵을 넣는다. 다 끓이고 간을 보니 카~~ 외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바로 그 고향의 맛이 난다. 닭개장과 육개장 같은 국 종류는 많이 끓이고 또 오래 끓일수록 깊은 감칠맛이 배가된다. 


이번 주말은 나의 소울푸드인 닭개장을 매 끼니마다 먹었다. 거기다 어제 담가 둔 열무김치를 올려서 입이 터지라고 닭개장을 퍼서 우걱우걱 먹고 나니 뿌듯하고 행복하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지만 닭개장으로 나의 허기를 아직까지 채워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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