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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Jul 06. 2020

가지 반찬이 가지가지

어릴 때부터 가지 반찬을 좋아했다. 가지의 물컹하게 씹히는 맛이 좋았다. 어릴 때는 가지 반찬을 좋아한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다가 내가 가지 반찬을 많이 먹는 걸보고 친구들이 물어본다.

"너 가지 반찬 좋아하니?"

"응, 가지 반찬 엄청 좋아해!"

"아무 맛도 안 나는데 맛있어?"

"응, 맛있는데!"

"야, 할머니 같아!"

"......."

내 입맛이 할머니 입맛인가? 가지 엄청 맛있는데. 내 입맛이 좀 구린가?


그러나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내 입맛이 진리임이 밝혀졌다. 사람들이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웰빙 음식으로 가지의 효과가 부각된 것이다. 보라색 가지에는 폴리페놀, 안토시아닌 등 항산화물질이 풍부하고 소염, 항암 작용을 하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찾아서 먹는 반찬이 되었다. 내 입맛이 좀 선견지명이 있는 건가? 다른 집 애들은 가지를 안 먹는다고 하는데 우리 집 애들은 나를 닮아서 가지 반찬을 아주 좋아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자주 해줘서 그럴 것이다.


오늘도 가지 반찬을 했다. 가장 좋아하는 가지 무침이다. 옛날에는 밥할 때 가지를 밥 위에 올려놓고 익으면 쭉쭉 찢어서 조물조물 무쳐냈는데 요즘은 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니 패스! 찜기를 사용하기로 한다. 우선 가지를 찜기에 올려놓고 한 10분 정도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찐다. 젓가락으로 찔러보았을 때 푹 들어가면 다 익은 것이다. 그런 다음 볼에다 옮겨놓고 성질껏 쭉쭉 찢으면 된다. 오늘은 가지가 너무 뜨거워서 젓가락으로 대충 찢었다. 가지무침은 이렇게 대충 찢어야 제 맛이다. 어떤 놈은 가늘고 어떤 놈은 퉁퉁하고, 제각각 울퉁불퉁 대충 찢겨 양념들과 함께 비벼지면서 구수한 시골 맛을 내어준다. 양념은 조선간장, 설탕, 참기름 약간 그리고 마지막에 볶은 깨를 뿌려주고 조물조물 무쳐내면 된다. 오늘은 식당에서 사 온 맛간장과 참기름만 넣었는데도 환상의 맛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쭉쭉 찢은 가지 무침을 한 숟갈 가득 밥과 함께 먹으면 물컹물컹 씹히면서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일품이다.

입에서 살살 녹는 가지 무침

다음으로는 가지 볶음! 마땅히 반찬이 없을 때 냉장고에서 굴러다니는 가지와 양파만 있으면 근사한 밥도둑 반찬을 만들 수 있다. 가지를 예쁘게 먹기 좋을 크기로 썬 다음 채 썬 양파와 함께 식용유를 두른 팬에 볶는다. 양념은 진간장과 설탕으로 간을 하고 마지막에 참기름을 한 스푼 둘러 주면 끝이다. 가지볶음을 할 때는 양파와 가지가 숨이 죽을 정도까지 푹 볶아주는 것이 포인트다. 가지볶음은 가지무침과 달리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양파의 달콤한 맛까지! 으흠, 우리 집 밥도둑이다. 가지볶음 하나만 있으면 모두들 밥 한 그릇 뚝뚝이다.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일품인 가지 볶음

마지막으로 가지전이다. 가지를 어슷어슷하게 떡국 썰듯이 썬 다음 밀가루 옷을 살짝 입히고 계란을 푼 물에 묻혀서 프라이팬에 구워내면 된다. 가지에 밀가루 옷을 입힐 때는 사진처럼 비닐 팩에 가지 썬 것과 밀가루(혹은 부침가루)를 넣고 요리조리 한 열 번 정도 흔들면 요렇게 예쁘게 옷이 입혀진다. 계란 푼 물에는 소금을 반 숟가락 정도 넣고 푼다. 통통한 가지 두 개에 계란은 네 개를 풀었다. 다른 반찬에 비해 가지전은 손이 많이 가고 설거지거리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잘해 먹지 않지만 요렇게 한 번씩 해 먹으면 별미이다. 물이 잘 생기지 않기 때문에 도시락 반찬으로도 그만이다.

손이 많이 가지만 고소한 맛이 일품인 가지전

이외에도 가지는 활용도가 높다. 여름철 별미인 냉국을 할 때도 오이 채 썬 것과 가지를 쪄서 쭉쭉 찢어 같이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다음 얼음물을 부어서 먹으면 더위가 싹 달아난다. 또 가지 밥을 해서 양념장에 쓱쓱 비벼먹는 방법도 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그래서 다른 양념과 채소와 잘 어울리는 가지! 특유의 물컹하면서도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을 가진 가지! 여름철이 제철이다. 가지가 있어 여름이 즐겁다. 오늘도 가지 반찬 가지가지 해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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