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사전점검 날이었다. 삼 년을 기다려온 날이라 기쁘고 설레었다. 다른 식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새 아파트 사전점검 같이 갈래?"
"싫어!"
"궁금하지 않아?"
"별로!"
둘째의 시큰둥한 반응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둘째는 평소에도 별 감흥이 없는 아이라 그러려니 했다. 막내도 큰 애도 모두 달갑지 않아 하는 반응에는 서운하기까지 했다.
세 딸 모두 풍족한 환경에서 모자람 없이 자라서 그러하리라 이해는 되었다. 옛날처럼 단칸방에 온 식구가 모여사는 시대였다면 반응이 이렇게 뜨뜻미지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지만 우리 집이 생긴다는 기쁨에 온 가족이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큰 아파트에 살다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려니 마뜩잖았겠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이 세 개뿐이라 안방을 내가 차지하고 나면 두 개밖에 남지 않는다. 딸이 세명인데 한 방은 한 명이 쓰고 나머지 방은 두 명이 같이 쓸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작은 아씨들'이나 '오만과 편견' 같은 영화를 봐도 두 자매가 한 침대를 나란히 쓰면서 서로의 고민도 나누고 첫사랑의 설렘도 이불속에서 소곤소곤 나누는 장면들이 나온다. 영화에서만이 아니라도 주위를 살펴보면 성별이 같으면 결혼하기 전까지 같은 방에서 지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전점검을 따라간 큰 애는 시무룩하니 힘이 하나도 없다.
"엄마, 이렇게 좁은 집에서 어떻게 살아?"
"나 막내랑 같은 방 못 써!"
큰 딸은 작은 집으로 이사 가는데 대한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다.
마침 다음 날 성당에 갔더니 주보에 우리 집 상황에 딱 맞는 글이 실려 있었다.
'불평 멈추기'의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살보 노에는 불평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며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기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은 '이것만 고쳐지면' 혹은 '이 사람만 바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곧바로 개선을 요구하며 투덜거리지만, 당면한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불평을 멈추지 않습니다. 불평은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일종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담배나 술에 중독된 사람들이 금연과 금주를 위해 고된 수련을 하는 것처럼 '만성적 불평'이라는 습관을 끊어버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고치기도 어렵습니다. 이쯤 되면 불평이라는 습관에 깊이 중독된 '불평 중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출처 : 2020.11.15. 주보, 글: 배기선 영덕 막달레나 수녀-
큰 딸은 어릴 때부터 매사 불평이 많았고 실패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았다. 그래서 나는 큰 애의 끝없는 요구사항을 맞춰주기 위해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그러나 물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아무리 해줘도 또 다른 불만사항이 생기곤 했다. 여기에 대한 해결사항도 수녀님은 제시하고 있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는 어느 회사가 완벽한 복지시설을 갖추었는데도 생산율이 저조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개별 면담을 하고 회사에 대한 불만과 의견을 세세하게 들으며 기록했습니다. 실험을 마친 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음에도 회사의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을 통해 직원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일에 전념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불평들은 내면에 쌓여있던 감정을 표출하는 것만으로도 해소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처 : 2020.11.15. 주보, 글: 배기선 영덕 막달레나 수녀-
큰 딸의 불평불만은 어쩌면 수녀님의 말씀대로 '사람의 힘으로 채울 수 없는 내면 깊은 곳의 결핍감'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큰 딸과 나는 서로 바쁘기 때문에 진실된 대화를 나누어본지도 오래다. 딸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말에 공감해주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그것만으로도 불만은 해소된다고 하니. 불평도 중독이자 버려야 할 나쁜 습관이라는 무서운 사실! 딸에게 어떻게 상처 받지 않게 잘 말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과제가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