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닳은 신발 굽이 나에게 하는 말!

by 세둥맘

얼마 전 다른 교육청으로 심사를 와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집, 학교, 집, 학교,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로 답답하던 참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래도 공식적인 자리에 심사위원으로 가는지라 어떤 옷을 입고 갈지, 신발은 어떤 걸 신고 갈지 신경이 쓰였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는 바람에 작년에 드라이클리닝을 해두었던 겨울 정장을 꺼내 입었다. 그런데 신발이 마땅한 게 없었다. 그냥 뾰족구두를 신기에는 쌀쌀하고 목이 긴 부츠를 신기에는 너무 답답해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옷과 신발을 맞춰보다 롱스커트를 입고 평상시 신고 다니는 워커를 그냥 신기로 했다.


그래도 깨끗하게 닦고는 가야지 싶어 신발을 들어 요리조리 먼지를 쓸어내렸다. 이 워커는 몇 년 전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사서 잘 신고 다니고 있다. 우선 발이 쑥쑥 들어가서 신고 벗기가 편하다. 작년에 비싼 돈을 주고 산 롱부츠는 신으면 따뜻하기는 하지만 신고 벗기가 영 불편했다. 식당에라도 들어갈라치면 나 혼자 귀퉁이에서 신발과 한바탕 씨름을 해야 했다. 그러니 자연히 멀리하게 되고 편한 워커만 신고 다니게 되었다. 평상시는 몰랐는데 신발을 닦으려고 뒤집어보니 뒤창이 다 헤어져 있었다. 구두굽이 다 닳아서 나무로 된 구두 축까지 벗겨질 지경이었다. 편하다고 발이 쑥쑥 들어간다고 무심하게 몇 년을 신고 다녔더니 신발이 이 지경이 되었다.


신발만 만신창이가 된 것은 아니다. 감기 한 번 안 걸린다고 건강하다고 내 몸을 함부로 썼더니 건강도 나빠졌다. 편하다고 거리낌 없다고 성질대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었더니 딸들의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나에게 만약 겨울에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이 워커 한 켤레밖에 없었다면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쓸고 닦고 굽이 닳으면 얼른 갈아서 애지중지 보살폈을 것이다. 내가 평상시에 몸이 약해서 골골거리는 약골이었다면 무리하지 않고 내 몸을 아끼면서 조심조심 살았을 것이다. 자식을 귀하게 얻어 외동을 키우게 되었다면 아마 딸들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풍족한 것이 화근이었다. 신발도 너무 많다. 뾰족구두도 색깔별로 여러 켤레, 롱부츠도 두 켤레, 거기다 워커까지. 그러니 아낄 줄 몰랐다.


밤 새미를 해도 거뜬하고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튼튼한 몸! 그래서 남편이 '땐땐이'라고 불렀던 내 몸! 내 욕심을 꾸역꾸역 채우기 위해 내 몸을 혹사해서 큰 병에 걸렸다. 조금만 내 몸을 보살피고 내 몸이 내는 신호를 알아차렸다면 이 정도로 망신창이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하면서 바로 큰 애를 낳고, 둘째, 셋째까지 수월하게 가지면서 자식을 주신대 대한 감사를 모르고 살았다. 임신을 위해서 휴직까지 하며 배란일을 맞춰 병원에 다니는 고초를 겪으면서 아이를 가졌다면 얼마나 소중하게 아이를 대했을까?


너무 신을 신발이 많았고, 너무 내 몸이 잘 버텨주었고, 자식도 수월하게 셋이나 낳았다. 너무 풍족하고, 너무 건강하고, 자식 또한 쉽게 얻었다. 그러니 감사할 줄을 몰랐다. 아낄 줄을 몰랐다.


뒷 굽이 다 닳은 신발을 보면서 내 삶을 되돌아본다. 다 닳은 신발 굽은 갈면 그만이다.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은 어찌하나? 상처투성이인 딸들의 마음은 어떡하나?


매사에 감사하며 살 일이다. 아끼고 돌보고, 참고, 배려하면서, 그렇게 살라고 말한다. 다 닳은 신발 굽이 나에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