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동기 모임을 했을 때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자식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속에서 울화통이 터질 때, 어떻게 하는지가 주제로 떠올랐다.
"아들이 마음에 안 들면, 옆 집 아들이다! 생각하니까, 화가 안 나네! 옆집 아들인데 내가 속 썩을 필요가 없지!"
이렇게 말하면서 친구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당시에는 이 말의 진가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몇 주전에 딸과 한바탕 난리를 치면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후에 어떻게 하면 딸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친구의 말에 바로 그 답이 있었다. 가족을 남처럼 대하자! 딸들을 옆집 딸인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집을 떠나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나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하면서 항상 긴장하면서 살아간다. 조금 기분 나빠도 참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행동은 아예 하지 않으면서 조심한다. 그러나 집에만 들어서면 이런 극도의 긴장감은 다 풀어지고 내 속에 잠들어있던 더러운 성질들이 고삐가 풀리면서 마구 날뛰기 시작한다.
성탄절을 포함한 삼일 동안의 긴 연휴를 코로나로 가족들과 함께 집콕 생활을 하면서 평화롭게 지낼 방법은 바로 이 긴장을 집에서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딸들이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늦잠을 자더라도 쿨하게 모르는 척 하기! 공부는 안 하고 핸드폰만 주야장천 들여다보고 있어도 눈 감아 주기! 방을 도깨비방처럼 난장판을 만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 짓기! 친구의 말처럼 내 딸이 아닌 남의 집 딸 대하듯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 대신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듯이 가족들에게도 서비스 정신을 십분 발휘해서 맛있는 특식을 끼니마다 대접하였다.
이 작전은 대 성공이었다. 삼일 동안의 긴 연휴 동안 딸들과 별 마찰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식구들과는 감정의 거리가 가까워 서로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마음의 상처가 있을 때는 반창고를 붙여줄 수 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서로 너무 가깝기 때문에 쉽게 본심을 드러내고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또 힘들 때에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 가족이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자꾸 화만 낸다고 고해성사를 했을 때 신부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엄마는 집안의 태양이에요!"
나의 한 마디에 집안의 분위기가 밝아지기도 하고 폭풍전야가 되기도 한다. '엄마의 말투가 달라지면 아이들이 달라진다.'는 에세이 제목도 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처럼 식구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는 않는지 살펴가며 조심조심 빛 조절이 필요하다. 가족을 남들처럼 대하기! 가족에게도 예의를 지키기! 새해 목록에 추가할 일이 또 하나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