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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Oct 04. 2022

엄마는 죄인?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의 동네 바보 역할을 멋지게 열연한 김수현의 연기도 돋보였지만, 내 기억에는 다른 장면이 강하게 남아 있다. 바로 김수현이 열연했던 남파 간첩이 세 들고 있던 주인집의 아들과 엄마의 스토리다. 주인집 아들은 주인공인 김수현과 비슷한 나이 또래이면서 끊임없이 별것 아닌 일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고 짜증을 낸다. 그것을 그의 엄마는 쩔쩔매면서 다 받아준다. 그것을 보면서 주인공인 김수현은 엄마와 가족을 더 그리워하게 된다. 요즘 들어 영화의 이 장면이 더욱 생각나는 건 왜일까?


요즘 막내의 짜증이 극에 달했다. 막내가 투정을 부리고 짜증을 부릴 때마다 나도 위 영화의 엄마처럼 쩔쩔매면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면 막내는 더 신이 나서 엄마를 마구마구 부려먹는다. 그러면 막내의 두 언니들은 눈이 휙휙 돌아가면서 엄마가 저러니 막내가 저 모양이다라고 하면서 노란색 경고장을 날린다. 고1인데 벌써 저러면 고3이 되면 어쩔 거냐면서 혀를 찬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멘트가 생각난다. 고산병보다 더 무섭다는 고삼병을 아들이 앓고 있다고... 며칠 전의 일이다.


"엄마, 이거 왜 안 꿰매 놨어?"

"어... 미안.... 근데 가방을 엄마가 어떻게 꿰매니?"

"그냥 바느질하듯이 하면 돼지!"

"그러다 엄마 손가락 다치면 어떡해?"

"엄마는 해보지도 않고 왜 그래?"

찢어진 책가방을 안 꿰매 놓았다고 막내에게 혼쭐이 났다. 엄마의 손가락보다는 자신의 책가방이 더 중요한 막내에게 혼이 났지만 책망은커녕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못 하는 나 자신이 웃기기도 하고 바보스럽기도 하였다.


많은 어머니들이 듣고 위로받는 말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위로가 되는 말을 발견했다.

위니 코트는 이렇게 썼다. '아동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발견할 수 있으려면 그가 누가 됐든 아동이 도전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관계가 완전히 깨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많은 어머니들이 위니 코트의 이 말을 듣고 위로받는다. 김건종의 <마음의 여섯 얼굴> 중에서


나 역시 이 글을 읽고 안심이 되고 위안이 되었다. 막내가 나에게 짜증을 내고 투정을 부리는 것은 내면의 성장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면의 성장을 위해 '미움'이라는 감정을 마음껏 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그래도 '미움'이라는 감정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엄마라는 만만한 대상을 가지고 있는 막내는 참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지라 마땅히 미워할 대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같이 살았던 친할머니를 만만히 여겼던 것 같다. 엄마 대신 할머니를 마구마구 미워했던 게 떠오른다. 나를 극진히 사랑하시던 할머니였는데 그 지극한 내리사랑을 담보로 나는 할머니를 무척이나 미워하였다. 못된 말도 서슴지 않았고, 학교나 직장이 힘들면 할머니에게 말도 안 되는 짜증을 부리기가 일쑤였다. 고모들이 나의 이런 패악질을 알고 나를 욕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래도 맛난 거를 보면 항상 할머니가 떠오르고 시장에 가면 꼬까옷을 할머니께 사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지가 오래된 지금도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드린다. 막내는 할머니의 세례명을 따서 요세피나로 세례명을 지었다. 이렇게라도 할머니를 잊지 않고 나의 못된 행실을 사죄드리고 싶은 마음이랄까?


마음 한편을 내어 주기

휴일이었던 어제도 막내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일어나지도 않았다. 참다못한 내가 흔들어 깨우자 자기 몸에 손대지 말라고 난리를 친다. 공부하러 가야지하고 말을 걸었다가 자기에게 말 걸지 말라는 날서린 말로 엄마에게 마구 공격을 가한다. 그래도 이제는 상처를 받거나 화가 나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 그래! 성장의 과정이구나. 이렇게 엄마를 미워하면서 너의 내면도 성숙해가는 거겠지? 많이 미워해라! 엄마는 다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엄마가 아니면 누가 받아주겠니?


아이 셋을 키웠지만 사춘기 수험생을 둔 엄마로 사는 것은 매번 힘들다. 특히나 오십을 훌쩍 넘은 나이에 늦둥이의 투정을 받아주는 건 사실 몸에 붙이는 일이기도 하다. 나 혼자 살아가기도 세상은 힘들고 벅찬데 엄마들은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든든한 버팀목까지 되어주어야 한다. 허공에 달린 샌드백처럼 아이들의 짜증과 투정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야 하는 존재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딸의 미움을 받아주면서 엄마의 마음도 너덜너덜해지면서 얇아지고를 반복하면서 밀가루 반죽처럼 숙성된다. 딸도 엄마를 샌드백처럼 이리저리 두들기면서 점점 성숙한 속 깊은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딸과 엄마! 흥부가 제비가 물어다준 박을 켜듯이 딸과 엄마는 미움과 성숙의 톱질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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