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살리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살림을 사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리다. 식구들의 건강과 영양을 책임지는 거룩한 일인 것이다.
살림살이를 배워본 적이 없다. 직장을 다니고. 남편과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기르면서... 살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았던 것 같다. 엉망진창인 채로... 그냥 하루하루 버텨내기 식이 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삶이었으니까.
그래서 냉장고는 항상 음식들이 섞어나가고 있었고 냉동실에는 검은 봉지에 쌓인 정체모를 음식들이 항상 가득 들어 있곤 했다. 그러다 잘못 냉장고 문을 열면 그 검은 봉지들이 무기로 돌변해 내 발등을 찧을 기세로 달려들 때도 있었다. 와르르~~ 그나마 1년에 한두 번씩 방학을 맞아 냉장고 청소를 하면 버리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나오곤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냉장고 정리 용품을 샀다. 살림은 장비빨이라고 한다. 정리를 하려면 우선 정리도구가 필요하다. 그리곤 냉장고를 다 뒤집어서 정리를 했다. 우선 냉장고 구석구석에 있는 냉동식품들을 각각 보관 용기에 넣고 종이테이프에다 종류와 날짜를 적었다.
이렇게 하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냉장고 문을 열어도 뭐가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볼 수가 있어 찾기가 쉽다. 그러니 우리 집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있어 불필요한 식품을 사는 것을 막을 수 있어 낭비를 줄일 수가 있다. 아~~ 떡볶이 떡이 있지.... 오늘은 떡볶이를 해 먹어야겠다. 이런 식이다. 예전 같으면 냉동실 구석에 짱 박혀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후에야 발견하고는 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요렇게 정리를 해두니 내가 없을 때에도 애들이 요리 재료를 잘 찾아서 자기들끼리 맛있는 요리를 잘해 먹는다.
오늘도 새로 사 온 버섯들을 먹기 좋게 찢어서 보관용기에다 담고 라벨을 붙였다. 그리고 파도 깨끗이 씻은 다음 알맞은 크기로 잘라 용기에 담아서 냉동실에 보관해뒀다. 주말에는 냉장실에 안 먹는 반찬들을 정리했다.
냉동실 정리 모습
드라마를 보면 옛날 할머니들은 온 힘을 다해 장독대를 정갈하게 유지하는데 신경을 썼던 것 같다. 매일 물을 떠서 장독대를 윤이 나게 반질반질하게 닦는 것으로 시집살이를 시작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이렇게 정갈하게 닦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한 그릇 떠다 놓고 남편과 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면 잘 보게 해달라고 조상님들을 비롯한 각종 신들께 비는 장면도 생각난다. 이렇게 정갈하게 반짝반짝 윤이 나게 깨끗이 닦은 장독에는 간장과 고추장, 그리고 씨간장이 들어있다. 특히 이 씨간장은 백 년 넘게 전수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조미료인 간장을 넘어서 그 집안의 혼과 역사가 담긴 유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살림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청소와 밥을 하는 것을 넘어 그 집안의 가풍을 잇고 가족들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거룩한 일인 것이다.
항상 하루의 일과는 싱크대를 닦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가스레인지와 식탁도 깨끗이 닦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 내 안의 사소한 걱정과 스트레스도 함께 버리고 싱크대를 닦으면서 내 마음의 더러운 흠집도 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