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매일 조금씩 넓어지는 마법

by 세둥맘

집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매주 조금씩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매주 무언가를 자꾸 버리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는 책을 거의 300권 가까이 버렸다. 여름이 오기 전에는 옷장 정리를 하면서 안 입는 옷들을 버렸다. 옷은 버려도 버려도 또 버릴 게 나온다. 한 달 전에는 30년 가까이 데리고 다니던 피아노를 버렸다. 저번 주에는 주인을 잘 못 만나 다 죽어가던 화분을 버렸다. 나의 레이다 망에 걸리는 족족 버림을 받는다. 이번 주는 책꽂이에 몇 년 동안 꽂혀있는 바인더를 다 정리하고 버릴 것이다. 그리고 베란다에 있는 바람 빠진 튜브들도 싹 다 버릴 것이다. 버릴 때의 묘한 쾌감이 있다. 버리고 나서는 텅 빈 공간이 주는 여백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얼마 전 산책길에서 두 아주머니가 하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집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잖아! 어느 구석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아냐, 난 다 알아!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지!"

"........"

"안 쓰는 건 다 버려야 돼! 그래야 집이 정리가 되지!"

뭐든지 똑 부러지게 하게 생긴 두 번째 아주머니는 야무지게 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빠른 걸음으로 내 옆을 휑하게 지나갔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드는 느낌이었다. 우리 집의 정리 안된 신발장과 베란다를 그 아주머니에게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얼른 가서 후다닥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결혼해서 벌써 이십 년을 넘게 살면서 정리를 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는 듯하다. 시간을 내서 차근차근 정리를 하며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건 챙기는 그런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결혼 후 거의 이삼 년에 한 번은 이사를 했다. 다음번에 이사를 가려고 짐을 챙기려면 저번 이삿짐센터에서 싸준 박스를 뜯지도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적도 많았다. 정말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세월이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새댁이 집을 죽 둘러보고는 하는 말이 아직도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혀 있다.

"이 집은 정리가 안 되는 것 같네!"


내가 정리 아니 버리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고 난 이후부터다.

물건의 쓰임새보다 자신의 가치를 알리려는 목적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물건을 자신의 내면을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 물건은 점점 늘어만 간다. 중략.

내가 읽은 책을 버리지 못하거나 읽을 예정도 없는 책을 계속 쌓아둔 이유를 지금은 확실히 안다. 나는 책장을 통해 나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중략.

나는 나의 가치를 책장에 진열된 책의 분량으로 드러내려고 했고, 마침내는 읽지도 않은 책을 나 자신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책은 내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다. 나는 앤티크 소품이나 화려한 식기, 비싼 카메라로 내 가치를 알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쓰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중에서 발췌


작가는 물건을 버리면서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게 되었고 평안함과 위안 그리고 안정을 되찾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오늘 인터넷 뉴스를 읽으면서 인상적인 칼럼을 만났다. 물론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글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8&aid=0004442784

爲學日益 爲道日損
위학일익 위도일손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더해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빼가는 것 -위 칼럼에서 인용-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작가는 하루에 하나씩 빼기를 실천할 것을 권한다. 하루에 하나씩 버리기이다.

옷장을 꽉 채운 낡은 옷가지도 하나 버리고, 냉장고 구석에 처박힌 음식물도 하나 버리고, 자리만 차지하는 세간도 하나 버리고, 서랍에 굴러다니는 볼펜 깍지도 하나 버리고, 하다못해 지갑 속의 영수증 쪼가리라도 한 장 버리고……. 이렇게 온갖 잡동사니를 버리고 버리고 버리다가 마음의 잡동사니도 버리게 되는 것! 그것이 도의 길입니다. 위도일손입니다. -위 칼럼에서 인용-


오늘도 레이다를 가동한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삐리 삐리! 옳거니! 딱 걸렸다! 오늘은 신발장에 박혀있는 잡동사니다! 오늘도 우리 집은 또 넓어지고 있다. 큰일이다. 너무 넓어지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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