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2일 오후 2시! 30여 년 나와 함께 한 피아노가 떠나는 날이다.
30여 년 전 3월 아버지는 나에게 피아노를 사주셨다. 지금도 피아노는 고가의 악기이지만 그 당시도 거의 백오십만 원 가까이하는 악기였다. 아빠는 거금을 들여서 피아노를 사주신 것이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대학교 1학년인 나에게 피아노를 사주신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학력고사를 치르고 어느 대학교를 갈지 이리저리 알아보는 중이었다. 시험운이 좋은지 생각보다 점수가 괜찮게 나왔다. 고3 때 엉덩이에 땀띠가 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그 당시는 학력고사 점수에 따라 대학교를 가던 시절이었다. 내 점수에 맞는 대학을 찾다 보니 서울에 있는 여대를 갈까, 아니면 다른 대학교를 갈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빠가 나를 부르셨다.
"너 교대 가라!"
"........"
"아빠가 가지고 있는 이 많은 교육학 책들 다 어떻게 하노? 네가 교대 가서 이 책으로 공부해라!"
"......."
"교대 가면 아빠가 피아노 사주께!"
"......."
지금은 교대에 가려면 내신 1등급에 전교 1,2등을 다퉈야 할 정도로 교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지만, 내가 교대에 갈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저 중상위권 정도의 대학 수준이었다. 딱히 교대를 나오지 않아도 취직이 잘 되던 시기였다.
"교대 가서 국민학교 선생 찌질하게 어떻게 하냐?"
교대를 간다고 했을 때 남동생이 했던 말이다.
"그 점수로 교대를 간다고? 너무 아깝다!"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이 하는 말이었다.
내가 대학교 가던 해에 갑자기 교대의 인기가 높아져 입학 커트라인 점수가 확 올라가긴 했지만 나는 성적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다. 그리고 아빠는 약속한 대로 멋진 삼익피아노를 사주셨다. 그리고는 시작된 방황의 길! 대학교 1, 2학년 때는 나의 정체성 혼란 때문에 공부를 거의 할 수가 없었다. 계속 좁아터진 학교 캠퍼스를 헤매고 돌아다녔다. 수업도 중간중간 빼먹기도 했다. 나의 화려한 대학시절을 값 비싼 피아노와 맞바꾼 것이었다.
요즘처럼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때에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교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뭔가 초등학교 교사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속상했고 분통이 터졌다. 다른 종합 대학교를 가서 넓고 멋진 캠퍼스를 누비며 취미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만끽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점점 작아졌다. 나는 말만 대학교지 빽빽하게 짜인 시간표대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정을 소화했어야 했다. 심지어 교실도 학교에서 다 정해 주었다.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교 4학년이 된 기분이었다. 대부분의 남학생들도 나처럼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좁아터진 캠퍼스를 미친 듯이 싸돌아다니며 방황했지만 그들은 술집에서 술과 함께 시름을 달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나에게로 온 피아노는 그 이후로 계속 나와 함께 했다. 결혼을 하면서 피아노는 나를 따라 용달차에 몸을 실었다. 그 이후로 아이가 생기면서 다섯 번의 이사를 함께 다녔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덩치 큰 피아노는 애물단지였지만 아버지가 사주신 것이기에, 나의 화려한 대학시절과 바꾼 피아노이기에 애지중지 데리고 다녔다.
내가 항암치료로 휴직 중일 때는 피아노가 나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쉬운 악보를 구해다 피아노로 익숙한 가요를 치다 보면 나의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도 위로가 되었다. 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했을 때 뭘 하면서 지냈냐고 상사가 물어보길래 이렇게 답했다.
"피아노를 치면서 보냈어요!"
"에고. 우리 집 피아노는 팔아버렸는데. 괜히 팔았네!"
나는 내심 피아노를 안 팔고 데리고 다닌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년에 이사 갈 23평 아파트를 위해 오늘 드디어 30여 년 동안 데리고 다니던 피아노를 팔았다. 나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던 피아노다.
방금 피아노를 수거해가시는 분에게 전화가 왔다.
"이거 30년도 더 넘었네요. 상태도 안 좋고, 값은 못 쳐드리겠어요. 그냥 수거해갈게요!"
나의 화려한 대학시절과 맞바꾼 피아노의 현재 값은 '0'원이었다.